오늘은 2023

169. 밤을 새우다 20230830

by 지금은

“어서 오세요.”

김밥 한 줄 먹었습니다. 블랙커피도 한 잔 마셨습니다.

낯선 곳에서 하룻밤을 새우게 되었습니다. 여행지에서도 아니고, 친지나 친구들과의 모임도 아닙니다. 낯선 사람들과의 모임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입니다.

밤을 새워 글을 썼습니다. 평생학습관입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책을 한 권 만들어 준다기에 참가했습니다. 이유를 덧붙이라고 한다면 책을 읽고 글쓰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기 위해 밤을 새워 본 일이 몇 번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숙제하기 위해서이고, 성인이 되어서는 쓰다 보니 본의 아니게 밤을 지냈습니다. 쓰고 보니 밤을 새우지 않아도 될 일이지만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고 문맥이 매끄럽지 않아 이 생각 저 생각에 시간이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오늘의 글쓰기 주제는 특별히 정해진 게 없습니다. 주제를 줄 거라고 했는데 예측이 어긋났습니다. 부담을 갖지 말라고 했습니다. 생각이 나지 않으면 딱 한 줄만으로도 된다고 합니다. 길면 오십 장, 백 장을 써도 좋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야 많이 쓸 수 있겠어요.”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모인 사람들을 보니 한 줄만 쓰겠다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표정이 진지합니다. 글쓰기를 좋아해서 모인 사람들이고 보면 적어도 원고지 열 장 이상은 채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내 평소의 글쓰기와 견주어 본 때문입니다. 그들은 나보다 책을 많이 읽고 글도 꾸준히 쓰지 않았을까 예측합니다. 잠시 어색한 분위기를 깨뜨리기 위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알아차렸습니다. 나는 지금 젊은이들 속에 포위되어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이런 행사가 있을 때 찾아가면 자식들 정도의 나이를 먹은 사람들에 섞여야 하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행사 자체가 젊은이들 위주로 짜여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노트북을 펼치고 책상 한편을 차지했습니다. 바로 앞에 여성분이 자리했습니다. 고개를 들면 눈이 마주치게 생겼습니다. 주방에서 식탁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앉은 상태라면 설명이 맞습니다.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손이 금방 좌판으로 옮겨갈 수가 없습니다. 글쓰기의 주제가 없고 자신이 정해서 하라고 했지만, 평소에 들끓던 그 많던 생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앞에 사람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좌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없습니다.

잠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순간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이심전심이었을까, 어색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잠시 허공을 응시하다가 눈을 노트북 화면으로 가져갔습니다. ‘투두둑’ 키보드를 눌렀는데 처음부터 오타입니다. ‘스르르’ 지웠습니다. 뭐로 하지? 좀 전의 주제를 버렸습니다.

‘오늘의 이야기.’

이번에는 키보드에 닿은 손가락이 무리 없이 지나갑니다. 글을 쓰기 위해 집에서 학습관에 이르는 동안의 내 발길에 관해 쓰기로 했습니다. 앞의 사람은 아직도 고민에 빠졌습니다. 좀 전에 이야기를 나눌 때는 거침없이 글을 쓰리라 생각했는데 말과 글이 따로 노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봅니다.

조용한 실내는 키보드를 누르는 손가락에 따라 짧은 음이 다닥다닥 붙어 서로 뒤섞입니다. 조용한 밤에는 빗소리가 들리고, 눈이 내리는 소리도 가끔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절만큼이나 조용한 시골 동네에 살았으니 그렇습니다. 바람이 죽은 섬마을 외딴집도 마찬가지입니다.

두어 시간 지났을 무렵입니다. 잘 이어지던 문맥이 잠시 끊겼습니다. 골똘히 생각을 떠올리지만 절벽입니다.

‘커피나 한잔 마시고 나서…….’

구석에 가서 기지개를 켰습니다. 몸을 상하좌우로 흔들었습니다. 몸을 부르르 털었습니다. 긴장을 푸는 셈입니다. 출입구 가까이에 있는 블랙커피와 과자 하나를 들었습니다. 자리로 돌아오는 동안 조심스레 글 쓰는 사람들의 뒤로 한 바퀴 돌았습니다. 얼마나 진행이 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빈 화면을 꾸준히 채우고 있습니다. 한 줄의 문장을 지나친 지 오래입니다. 모두가 나름의 실력을 갖추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의 모임의 목적은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한 편의 글을 완성해 보는 의미입니다. 이를 계기로 글을 쓰는 습관을 길러보고 좋아하는 길로 접어들기 위한 입문이라고 하면 좋겠습니다. 몇 사람은 이미 책을 냈고, 준비 중인 사람도 있습니다. 나처럼 책을 내보지 못한 사람도 여러 명입니다. 이 중에는 각종 크고 작은 대회에 입상한 사람도 있습니다. 표는 내지 않았지만 나도 있습니다.

동이 트면서 한 편의 글을 완성했습니다. 퇴고까지 마쳤습니다. 잘된 글인가 아닌가를 떠나서 오랜만에 글 한 편을 밤에 썼다는 게 마음을 뿌듯하게 합니다. 그것도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라니 새롭습니다. 초등학교 때 백일장에 참가했던 기분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잠시 눈을 붙였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쓴 글을 다시 확인해 보아야겠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어딘가 부족한 부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한 글자.’

작년에, 도서관에 모인 수강생끼리 글을 한 편씩 써서 책을 출간했는데 내 글에 ‘오’ 자가 하나 발견되었습니다. 이 잡듯이 여러 차례 읽으며 확인했지만 놓쳤습니다. 이번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되는 데 하는 마음입니다. 밤을 새우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일까요. 집중력이 자꾸 흩어졌습니다. 우려하던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번에는 ‘낱자’ 하나가 빠졌습니다. 글자 하나가 문맥을 좌우합니다. 있고 없고의 차이에 따라 내용이 다릅니다.

어쩌겠습니까. 담당자에게 전화했습니다. 한 번 제출한 글은 수정이 불가능하답니다. 내용을 고치려는 게 아니라 실수로 낱자 하나가 빠졌으니 넣어달라고 했습니다. 승낙받았습니다.

밤을 새운 후유증이 며칠은 가겠다 싶습니다.

“식사 시간이 돼도 깨우지 말아요.”

다시 잠에 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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