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 생각지 않은 일 20230831
“그럴 수도 있나.”
“그렇다니까요. 바로 내 눈앞에서 인걸.”
집으로 돌아오는 중 친구가 한 말입니다.
배움터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며칠 있으면 학기 말 작품 전시회를 열 예정입니다. 수강생들이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선보이는 장입니다. 배우는 분야가 서로 다르니 다양한 작품을 선보일 것입니다.
친구는 서예 작품을 나는 에세이 작품을 준비하는 중입니다. 서예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각자 구상한 작품을 써서 강사 앞으로 늘어섰습니다. 긴 줄이 생겼습니다. 늦게 작품 구상을 마친 사람이 강사 옆으로 다가섰습니다.
“선생님, 제 것 먼저 봐주세요.”
“앞에 있는 사람 먼저…….”
“바쁜데요.”
“바쁜 사람 많아요, 빨리 가서 애들을 봐줘야 하는데.”
줄을 선 사람들 몇몇이 이구동성으로 바쁘다고 말했습니다.
강사 옆에서 잠시 노려보던 사람은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갑자기 강사의 팔을 건드렸습니다. 곧 자신이 쓴 글씨의 종이를 몇 겹으로 접더니 눈앞에 대고 발기발기 찢었습니다. 찢긴 종이를 허공에 뿌렸습니다. 곧 출입문을 향해 발길을 돌렸습니다. 강사의 눈이 흔들렸습니다. 잠시 눈이 경직되었습니다.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나는 그 사람이 성미가 급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평소에 그의 행동을 보면서 생각보다 말이 앞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나와는 가까이 지내는 사이가 아닙니다. 처음 얼굴을 마주쳤을 때 눈인사 정도였는데 그마저도 멀어졌습니다. 어느 날입니다. 내가 휴게실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있을 때입니다. 옆으로 다가와 내 어깨를 치며 뜬금없이 말했습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입니다. 깜짝 놀라 옆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얼굴을 가까이하고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느낌으로 보아 일본말입니다. 그와 함께 다니는 사람의 대화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일본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내가 일본어에 익숙할 수는 없습니다. 아는 거라고는 ‘히라가나’, ‘가다가나’의 낱자 정도입니다. 몇몇 단어도 알고 있습니다. 잊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어렸을 때의 귀에 익숙한 낱말입니다.
‘벤또, 와리바시, 도라꾸, 덴뿌라…….’
알아들을 수 없어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 후 며칠이 지나자 똑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 다른 시대의 사람이 만난 느낌이 듭니다. 갑자기 영어가 떠올랐습니다.
“뭐라고요? 무슨 말인지…….”
익숙하지 못한 영어이지만 나름대로 몇 문장을 쏟아냈습니다. 당황하는 눈치입니다. 말없이 돌아섰습니다. 그 후로는 그가 내 옆으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작품 전시회 날이 다가왔습니다. 생각지 못한 일입니다. 그 사람이 작품 전시회 모임에 수강생 대표로 축사했습니다.
“나의 큰 행복은 이곳 배움터에 오는 일입니다. 여러 사람과 어울리며 배우는 것으로 낙을 삼습니다. 직원 여러분, 강사 선생님, 함께 배우는 분들에게 늘 감사합니다.”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들은 그의 이력입니다. 군에서 높은 지위에 있다가 퇴직했다고 합니다. 군대 문화에 젖어 있었기 때문일까. 선입감인지 모르겠습니다. 당당해 보이는 모습이 보이지만 뭔가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다음 학기 수강 신청이 있었습니다. 궁금합니다. 강사 앞에서 화선지를 발기발기 찢어 흩어버리고 또 배우겠다고 신청했을까? 명단에 없습니다. 확인해 보니 초보 서예반에 신청했습니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다시 신청하지 못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 사람이 잘못을 깨달았다니 다행입니다. 욱하는 성질이 문제입니다.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린 강사에게 잘못을 빌었답니다. 전후 사정을 듣고 나서 나도 이런 일이 없었는지 곰곰이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꼭대기 층인 우리 집이 비가 오면 지붕으로 물이 스며들었습니다. 수리해 달라고 관리사무실 직원에게 요청했지만, 차일피일 미루고 이년이 지났습니다. 또 장마철이 시작됩니다. 사무실에 전화했습니다. 화가 난 나는 결말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에 부드러운 말을 숨긴 채 앞뒤 가리지 않고 목청을 돋우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그의 목소리에 울먹임이 들렸습니다. 곧 담당자가 집을 방문했습니다. 낯선 사람입니다.
“어르신, 아무리 화가 나도 닷새밖에 안 된 사람에게 심한 말씀을 하십니까.”
“전임자와 인계인수가 되지 않았습니까?”
“아직 파악 중입니다. 곧 대책을 강구하겠습니다.”
이런 줄 알았으면 사무실로 찾아갈 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전번 담당자인 줄 알고 심한 말을 했다고 사과했습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실수를 저지르는 일은 없어야하는데, 나는 꼰대 짓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잠시 되돌아봅니다. 전후좌우를 살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