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 도토리 한 알 20230914
‘도토리 한 알.’
며칠 전 초등학교 동창생들과 수목원에 갔습니다. 도심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규모가 작을 거라고 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넓습니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내부를 대강 돌아보아도 2시간은 걸릴 거라고 합니다.
‘향기 나는 수목원’ 나는 이미 이곳을 다녀간 때가 있습니다. 정확한 햇수는 알 수 없으나 퍽 오래되었습니다. 나무들의 굵기로 오래됨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찾아간 것은 개장을 막 앞둔 날입니다. 앞으로 어린 풀과 어린나무들이 몸집을 불려야 합니다.
“누가 밤을 다 따갔네.”
숲 속의 밤나무 밑에는 아직 누렇게 물들지 않은 밤송이들이 입을 벌린 채 널려있습니다. 친구는 발로 이리저리 밤송이들을 헤쳐 봅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인가 봅니다.
“벌써 아람을 벌기 시작했는데 뭘.”
시골에 사는 친구가 찌는 듯한 더위에도 가을이 왔음을 알립니다. 나는 ‘아니 벌써’ 놀라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도토리나무 밑에 이르렀습니다. 도토리가 수북하게 떨어졌습니다. 열매를 주워 들고 위를 올려보았습니다. 도토리나무가 아닙니다. 친구들이 보며 도토리나무가 아니라고 같은 말을 했습니다. 도토리나무의 종류가 많으니 분명 도토리가 맞는데, 외래종인지도 모릅니다. 한 친구가 나무 주위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나무의 이름이 어렵습니다. 외래종인 게 분명합니다. 추측을 잘하는 친구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프랑스의 부피에와 친구잖아.”
능청맞게 도토리를 심어 황폐했던 숲을 가꾼 사람의 이야기를 들먹입니다. 책에서 도토리를 줍는 노인의 흉내를 냅니다.
열매는 가을의 상징입니다. 단풍과 하늘이 가을을 상징한다고 하지만 나는 이보다 열매들을 앞세우고 싶습니다. 풍요의 계절입니다. 가을이 있기에 사람들은 안심하고 겨울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밖에도 가을에 올려놓을 것은 많겠지만 내 마음에 우선순위를 두기로 했습니다.
‘도토리 한 알’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어제 벚나무 가지에 달린 솔방울이 생각났습니다. 누군가 솔방울 모빌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장난인지 예술인지 모르겠습니다. 생각 자체에 큰 점수를 주었습니다. 가까이 이르자 도토리 열매들이 푸른 잎 사이로 얼굴을 드러낸 채 햇살을 받고 있습니다. 수줍어 보인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심코 지나치려 했는데 옅은 밤색을 지닌 도토리가 눈에 띕니다. 한 알을 주웠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은 떨어질 마음이 없어 보입니다. 빛깔이 여름입니다. 조생종이 아니라 만생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 전에는 건너편 학교 근처에서 다섯 알을 주웠습니다. 해마다 보는 것이고 시골에서는 흔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해의 첫 번에 발견하는 도토리는 새로운 마음을 안깁니다.
‘솔방울 모빌은 잘 있을까요.’
혹시라도 장난꾸러기들이 망가뜨리지는 않았을까, 안심입니다. 그 모습 그대로 다섯 개의 솔방울이 편안하게 매달려 잔바람에 하늘거립니다.
나도 도토리 모빌을 만들어 볼까. 잠시 고민 아닌 고민에 빠집니다. 솔방울은 끈을 맬 곳이 있는데 도토리는 겉면이 매끄러워서 끈을 맬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양파 망을 잘라 주머니를 만들어 넣어볼까. 아니 딱풀로 붙여볼까. 풀로는 어림도 없겠다는 느낌입니다. 접착제로 붙이는 게 좋겠지.’
궁리하는 사이 시간이 꽤 흘러갔나 봅니다.
“어디예요, 점심 먹어야지.”
아내는 어느새 점심 준비를 해놓고 나를 기다립니다.
발길을 서두릅니다. 집으로 향하는 중에도 도토리 생각입니다. 나는 무엇인가 꼬투리가 있으면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편입니다.
‘여섯 알.’
부피에가 되어볼까? 빈 화분이 몇 개더라, 여섯 개가 필요하겠지. 뭐야 큰 화분 하나로도 족하지 뭐. 싹을 틔워봐야겠습니다. 또 생각이 앞섰습니다. 심기도 전입니다. 집에서 키운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뭐, 키우는 게 문제입니까. 싹이 나는 게 우선입니다. 앞산이 있고 공원도 있습니다.
‘도토리 한 알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