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 매를 먼저 맞다 20230915
옛날부터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매를 먼저 맞는 게 뭐 낫겠는가 하는 말이 처음 듣는 순간 어리둥절하게 느껴졌습니다. 나중에 맞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여러 사람이 맞다 보면 때리는 힘이 빠져 나중에는 힘의 세기가 줄어들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야단을 치는 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여러 사람을 차례로 혼내다 보면 욱했던 감정이 가라앉을 거라는 예감이 듭니다. 말하는 힘도 빠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전주부터 독서 프로그램으로 편지 쓰기 에세이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주 1회씩 10회의 수업을 들으며 한 편의 작품을 제출, 책으로 엮는 과정입니다. 편지의 내용 속에는 누구에겐가 책을 소개하는 내용을 넣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책을 소개하는 편지 에세이라고 하면 정확한 표현입니다.
“편지를 먼저 제출하실 분.”
순간 수강생 모두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강사가 다음 주까지는 제출 날짜를 생각해 오라고 했습니다. 수강생이 많으니 몇 명씩 묶어 주마다 발표하는 시간을 갖겠답니다. 모두가 말이 없자 다음 주 강의를 한 번 더 하고 편지쓰기 실습을 하겠다고 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중 갑자기 중학교 때의 친구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잊기 전에 곧 편지를 써야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달아나 다시 고민하게 합니다. 곧 책상에 앉아 한 편의 편지를 작성했습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곧바로 강사에게 편지의 내용을 메일로 보냈습니다. 원고를 제출하라는 말은 없었지만 보내보는 겁니다.
이웃 도서관에서 에세이 강의를 들었을 때입니다. 이때도 원고를 제일 먼저 냈습니다. 강의실을 나올 때 강사 옆으로 다가가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매를 먼저 맞겠습니다. 세세하게 꼬집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정말요?”
정말 세세하게 꼬집혔습니다. 젊은이들 앞에서 첫 줄부터 끝줄까지의 내용을 이야기했습니다. 맞춤법, 띄어쓰기, 단어의 조합, 문장의 구성 및 배열…….
꼬집힘을 많이 당했지만 부끄러움은 없습니다. 내 작품을 두고 한 시간 내내 모인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대여섯 명의 작품을 두고 서로의 의견을 교환했으니 내 글을 평하는 것처럼 세세하지는 못했습니다. 이제는 부끄럽게 들리는 말에도 이해하고 넘어갈 나이입니다. 나는 청일점입니다. 여기에 모인 사람은 모두가 젊은 여자입니다. 딸이라면 맞을 나이입니다. 경쟁하는 것도 아니고 진정한 배움이 목적이라면 크게 마음이 상할 일은 아닙니다.
내가 직장에 근무할 때입니다. 해마다 겨울 방학이 되면 새 학년도의 교육과정을 짜기 위해 머리를 씁니다. 그해에는 교육과정의 담임 재량시간이라는 항목이 추가되었습니다.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그 학년, 학급만의 특색을 마련하여 주에 한 시간씩 지도해야 합니다. 교육부의 지침입니다.
“교장 교장선생님, 다 됐습니다. 검토해 주십시오.”
“뭐 하시는 겁니까.”
교장 선생님이 버럭 화를 냈습니다. 아직 학교의 방침이 서지 않았다며 천천히 해도 늦지 않는다며 계획서를 대충 보고 일그러진 표정으로 내밀었습니다. 방학 내내 고심해서 만들었는데 섭섭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이 가라앉아 생각을 해보니 교장선생님의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 아직 학교 교육 과정계획서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니 학년, 학급 특색까지 말할 여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학교 교육과정 계획이 확정된 후 내가 마련한 학년, 학급 특색이 학교 교육과정위원회에서 좋다는 평과 함께 학년의 모델로 인정받았습니다.
다음 주에는 내가 제일 먼저 발표하도록 순서가 짜여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처음이라서 긴장될 것이라며 순서를 뒤로 미루었지만, 어찌 보면 앞이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슷한 내용이라도 처음 발표이고 보면 식상함이 덜 할 것 같고, 원고 마감 시간까지 생각할 시간을 버는 셈입니다.
먼저 발표하느냐 나중에 발표하느냐는 서로의 장단점이 있습니다. 나같이 원고의 교정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가 하면, 나중 발표자는 앞선 사람의 작품이나 분위기를 참고할 수 있습니다. 발표까지는 한 주의 시간이 있습니다. 제출은 했지만 미진하다고 여기는 부분은 수정의 기회가 있습니다. 원고를 다시 살펴보아야겠습니다. 함께 배우는 사람들의 평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