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 우리 아파트 분리수거장 20230924
나는 새 학기의 분리수거장을 좋아합니다. 세대수가 많기도 하지만 이만큼 크고 깨끗한 실내는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쥐와 고양이 등 동물과 벌레들이 드나들 수 없습니다. 벽을 의지하여 늘어놓은 큰 마대에 표시된 글자대로 물건을 담으면 됩니다. 온갖 잡동사니를 가져와 늘어놓는 게 마음에 들 수는 없지만 가끔 생각지 않은 물건을 손에 넣을 때가 있습니다. 유독 눈이 가는 곳은 종이를 모으는 곳입니다. 어쩌다 책이 들어있는 상자가 보이면 어김없이 다가갑니다.
‘횡재’
유아용 도서부터 성인의 것까지 내용도 다양합니다. 나는 특히 소설, 수필, 동화, 그림책 등을 좋아합니다.
오늘은 책 상자가 보이기에 다가갔더니 고등학생이 사용하던 책이 가득 쌓여있습니다. 몇 권을 들추니 주로 학교의 교과서와 입시를 준비하는 참고서가 보입니다. 돌아설까 하다가 손을 더 깊숙이 넣어 책을 꺼냈습니다. 색이 바랜 어린이용 책입니다. 동화책이군요. 책을 하나하나 꺼내자, 밑으로 내려갈수록 점차 낮은 나이 어린이가 볼 수 있는 것들이 나옵니다. 동화책, 만화책, 동시 책, 그림책, 얇고 화려한 영어책도 보입니다. 영어책은 내용이 동화적이며 그림책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어린이책에 관심이 갑니다. 마지막으로 엽서 크기의 10장 내외의 공책이 무더기로 보입니다. 몇 권을 들춰보니 한두 장에 낙서처럼 글과 그림이 있을 뿐 나머지는 말 그대로 공백입니다. 영어책, 그림책과 여러 권의 공책을 챙겼습니다.
“지저분하게 뭘 들고 와요.”
“내 보물.”
아내는 분리수거장에서 물건을 들고 오는 것을 싫어합니다. 불결하다는 생각도 하지만 집안에 늘어놓는 것이 못마땅합니다.
“보고서 다시 가져다 놓을게요.”
우선 입막음부터 했습니다.
뉴스를 시청하고 가져온 물건을 차근차근 들여다봅니다. 그림책 합격, 영어책 합격, 동화책 불합격, 공책 반은 합격입니다. 동화책은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공책은 내용을 살피니 버린 아이 소유의 창작 만화입니다. 몇 장면은 아니지만 초등학교 때 누구에겐가 배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중에 있는 만화를 흉내 냈지만 비교적 장면이나 내용이 짜임새가 있습니다. 한동안 만화를 그려볼까 하는 생각을 한 일도 있었는데, 그때의 몇 개월이 기억에 새롭습니다. 어려서부터 의도적으로 만화책 읽기 멀리했던 내가 그런 일이 있었다니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만화책을 피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시절 만화책은 무조건 나쁘다는 사회적 편견 때문입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만화가 과학을 선도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만화를 그리겠다는 공상에 빠졌습니다.
그림책을 몇 번이나 들여다보았습니다. 유아들이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림과 내용이 맘에 들었습니다. 나는 동화나 수필에 늘 관심을 기울이지만 여유가 있을 때는 그림책에 눈을 돌리기도 합니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그림책 공부를 하면 책을 한 권 제작해 준다기에 겁도 없이 덤볐습니다. 기초지식도 없으면서, 그림 재주도 부족하면서 강사의 가르침을 따라 했습니다. 엉성하다는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내 이름의 책을 한 권 손에 쥐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시중에 팔리는 서적은 아니지만 내 이름의 책이 있다니.’
어찌하다 보니 내 저작물인 그림책을 다섯 권이나 가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점차 과정을 익히다 보니 주제만 설정되면 무난하게 그림과 내용을 엮어갈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동화에 관심을 두고 책을 펴내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아직 한 권도 없습니다. 그동안 쓴 것이 많지만 가치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 망설임이 계속되었습니다. 다음으로 도전한 것이 수필입니다. 역시 많은 원고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글쓰기 강좌가 있으면 부지런히 참가합니다. 글을 써내면 평가가 나쁘지는 않지만, 동화를 생각하는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아 망설이고 있습니다.
강사들은 말합니다. 쓴 것이 있으면 쌓아두지 말고 여러 사람 앞에 펼쳐야 한다고 합니다. 보여주지 않으면 누가 압니까. 잘 쓰였다든가 못 쓰였다는 것은 독자의 생각이니 펼쳐놓고 평가를 받아보라고 합니다. 내가 좋아서 쓰는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펼치는 방법을 잘 몰라서…….’
지나가는 말이고 구체적이 아니라서 아리송합니다. 펼치는 방법이야 대략 알고 있지만 머뭇대는 성격이 나를 어렵게 합니다. 하고 싶다면 물어보고 찾아보고 덤벼야 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직은 쓰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서서히 남 앞에 내 글을 서서히 내보여야 할까 봅니다.
분리수거장에는 가끔 내가 좋아하는 책이 선을 보입니다. 벼려지는 책 속에서 내 글에 도움이 될 보물을 캐내기도 합니다. 손때 묻은 책이 나를 어루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