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 가을빛 20230922
가을빛이 아름답게 물들어 가는 산골에서, 아침이 찾아왔습니다. 찬바람이 부드럽게 얼굴을 스칩니다. 아침빛으로 물드는 산기슭은 한 장의 수채화입니다. 나뭇잎들은 노란, 붉은, 갈색의 다양한 색을 꿈꾸고, 열매들은 자신의 색깔을 찾아갑니다. 나는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마치 동화 속의 길 앞에 선 느낌입니다.
눈앞에 펼쳐진 가을 풍경은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나의 시선은 높은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어 오는 모습에 멈추었습니다. 나뭇가지들이 끝없이 펼쳐진 가을 하늘과 어우러져 마치 미술 작품을 감상하듯 합니다. 햇살을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노란 바람이 나의 머리카락을 감싸주었습니다. 나무들의 그림자가 속삭이는 듯 아름다움에 빠져들었습니다. 나뭇잎들이 어울려 내는 소리, 갈색 나뭇가지들의 어느 것은 바람에 흔들리며 마치 안녕이라고 아침 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시선은 점차 아래로 내려가 가을 잎의 아름다움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노란색, 붉은색, 주황색 등 아직은 흐린 색깔이 눈앞으로 다가섭니다. 각 나뭇잎은 그만의 아름다움을 만드는 가운데, 햇볕을 받으면서 빛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오묘한 색채들에 마음이 따뜻해지며, 가을의 아름다움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이번에는 가을의 열매들이 모여 있는 나무 아래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가을의 풍요로움을 상징하며, 상큼한 공기와 어우러져 싱그러운 느낌을 전해줍니다. 밤이 보입니다. 가시 속에 몸을 빠끔히 내밀고 있습니다. 금방 바닥으로 떨어졌는지 싱싱합니다. 두 발로 벌어진 밤송이를 양옆으로 밀었습니다. 내 마음을 알아차린 듯 자연스레 온몸을 보여줍니다. 살포시 밤알을 집어 올렸습니다. 토종밤입니다. 한 알밖에 들어있지 않았지만, 시중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유독 크기는 작습니다. 작아도 밤이라는 생각에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손으로 잡고 오독 깨물었습니다. 껍질이 갈라졌습니다. 이빨로 겉껍질을 벗겨내자, 속껍질이 나타났습니다. 역시 같은 방법으로 벗겨냅니다. 텁텁함이 입안에 감돕니다. ‘퉤퉤’하고 침을 뱉었습니다. 하얀 속살을 깨뭅니다. 아작아작 깨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뒷맛이 고소합니다.
“멸치가 작아도 생선.”
한동안 작은 것을 입에 넣고 입맛을 다시며 이와 같은 말을 한 때가 여러 번 있습니다. 비록 작은 한 알이지만 밤 맛은 살아있습니다. 무슨 맛이냐고 물으면 그냥 밤 맛이라고 하겠습니다. 서툰 나의 표현으로는 정확한 감각을 불러낼 수가 없습니다. 궁금하면 먹어봐 하는 마음이라면 맞겠습니다. 밤나무 주위를 둘러보다가 아쉬운 마음으로 발을 내디뎠습니다.
좁은 산길을 한 그루의 도토리 가지가 가로막았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도토리가 발에 밟힙니다. 어지럽게 널려있습니다. 가을이면 나무 밑에서 도토리를 한보 자기씩 주웠습니다. 식재료나 음식이 귀하던 시절 묵은 부족한 식사량을 메워 주었습니다. 약간 떫고 별맛이 없지만 해마다 즐겨 먹었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맛이 없습니다. 양념해서 그 맛으로 먹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영양가도 그리 높지 않았으니 별 인기는 없었지만 지금은 참살이 식품의 하나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도토리는 음식 재료로 쓰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장난감입니다. 공기놀이, 구슬치기, 학교에서는 미술 시간에 만들기 재료가 되기도 했습니다. 가을은 각종 열매의 계절이고 색깔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가을이 점차 익어갑니다. 사과나 감이 붉게 물드는 것처럼 겨울을 찾아가는 동안 점점 짙어질 것입니다. 산책하며 느끼는 가을의 아름다움은 작은 것들 속에도 큰 행복을 발견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나는 그 아름다움을 마음 깊이 간직하며 자연과 조화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이런 순간들이 나에게는 가을의 아름다움을 깊이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임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올여름은 유난히 더위가 심했습니다. 폭우가 시도 때도 없이 퍼부었습니다. 태풍은 많은 비를 몰고 왔습니다. 강둑이 무너지고 지하차도가 물에 잠겨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고 이곳저곳 산사태를 비롯하여 많은 지역이 물에 잠겨 농작물 피해도 심했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과일값이 예년에 비해 대폭 올랐습니다. 수해의 영향입니다.
하지만 올해의 단풍은 어느 해보다 곱지 않을까 합니다. 심하게 더웠기에 그만큼 아름다움을 뽐내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여름을 힘들게 버틴 만큼 가을은 우리에게 푸근함을 선사하리라 믿습니다. 어느덧 밤과 낮의 길이가 같다는 추분을 맞았습니다. 점차 가을밤은 길어질 것입니다. 추석이 돌아옵니다. 오늘부터는 아침처럼 가을밤도 사랑해야겠습니다. 산책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나에게 좋은 모습이 보이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