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 죽 20230924
“죽집이 어디더라, 전화번호는?”
밖에서 돌아오자, 아내가 말합니다. 아들이 코로나에 걸렸답니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했더니만 몸 상태가 이상하다고 해서 편의점에 검사 도구를 사 왔다고 합니다. 넷째 일요일이라 우리 집 주변의 약국이 영업하지 않습니다. 자가 진단 검사를 했다는군요. 아내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사할 준비를 하는 중입니다.
“글씨가 이렇게 작아서야 원.”
처음이라 설명서를 읽어야 하는데 마음 갖지 않습니다. 내가 설명서를 빼앗아 돋보기로 보았습니다. 요양원에 계시는 삼촌을 뵙기 전 코로나 검사를 했지만, 간호사가 도와줬기 때문에 확인차 설명서를 더 보기로 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입니다. 아내의 코로나 진단 결과는 음성입니다.
안심되는 눈치입니다. 죽집의 전화번호를 알아보려고 했지만, 전에 적어둔 것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휴대전화를 검색했는데 역시 번호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화면이 작아 알아볼 수 없다는 생각에 컴퓨터를 켰습니다. 익숙함이 시간을 단축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죽집이 쉬는 날인가 봅니다. 전화했지만 신호만 갈 뿐 받는 사람이 없습니다.
죽집의 홈페이지에 접속했습니다. 웬 메뉴가 이렇게 많은지 놀랐습니다. 옛날의 죽집이 아닙니다. 죽, 비빔밥, 도시락, 설렁탕, 반상, 멘지가 있습니다. 죽 종류만 해도 보양죽, 영양죽, 별미죽, 전통 죽이 있고 죽마다 가지가 있어 합치면 50여 가지나 됩니다. 그밖에 메뉴까지 합치면 얼마나 되겠습니까. 죽만 파는 줄 알았는데 음식의 종류가 다양합니다. 마치 백화점을 연상시킵니다.
몇 년 전입니다. 아내와 내가 목감기에 걸려 여러 날 고생했습니다. 목이 불편하니 음식을 마음대로 넘기기가 불편합니다. 생각 끝에 죽을 먹기로 했습니다. 집 건너편에 보이는 죽집입니다. 죽의 종류가 이렇게 많은 줄은 모르고 생각나는 대로 주문을 했습니다. 흰죽, 팥죽, 잣죽 중 하나입니다. 목이 불편했지만, 다른 음식에 비해 넘기기가 수월했습니다. 경험상 아들에게도 죽이 맞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아내는 죽 맛을 보더니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쌀을 불려 믹서기로 갈았습니다. 깨를 갈았습니다. 죽을 끓여보고 싶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양이 많이 불어나요.”
한주먹을 갈았는데 둘이 먹고도 남는다고 했습니다. 죽 장사하면 금방 부자가 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생각과 현실은 다릅니다. 임차료, 관리비, 인건비, 재료비……. 내가 해본 것은 아니지만 남의 이야기를 자주 듣다 보니 겉보기와는 다름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죽을 업신여겼습니다. 죽이라면 쳐다보기도 싫었습니다. 병이 심해 음식을 먹기가 싫을 때 아내는 죽을 먹으면 좋겠다고 몇 번 말했지만, 그때마다 거절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어릴 때 죽을 많이 먹었습니다. 죽이라고 해야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변변찮은 것입니다. 맛이 아니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먹는 것입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겪은 일입니다. 일제강점기, 전후 세대가 그렇습니다. 춘궁기, 보릿고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양식이 턱없이 부족하니 죽을 먹는 일이 많았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죽을 먹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겨야 했습니다. 깨죽, 잣죽은 죽 중에도 고급입니다. 쌀죽, 팥죽, 녹두죽도 빠지지 않습니다. 허기를 면하기 위해 멀건 된장국의 시래기나 채소를 넣고 곡식이라고는 넣는 둥 마는 둥 그렇게 먹었습니다. 이것마저도 부족할 때가 여러 번입니다.
우리 할머니는 몸이 약하셔서 늘 편찮으시다는 말씀하셨습니다. 식사를 잘 못하실 때는 쌀이 귀할 때에도 어디서 구했는지 흰죽을 쑤어 드렸습니다. 깨소금을 곁들였습니다. 죽의 향기가 코를 간질입니다. 나는 드시는 모습을 옆에서 보면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곤 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몸이 불편할 때도 먹지만 한때 건강식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곳저곳에 우후죽순처럼 죽집이 생겨난 때가 있습니다. 유행이란 영원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기호가 변하면서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나 봅니다. 꾸준히 영업하는 곳들이 눈에 뜨입니다.
다시 전화했습니다. 홈페이지를 확인하니 영업시간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죽집이 큰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밖으로 나가 바라보았습니다. 불이 꺼져 있습니다. 주위의 건물이 암흑에 싸여있습니다. 오늘이 우리 동네 상가의 쉬는 날인가 봅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오늘은 냉장고에 있는 물만두로 하고, 내일은 죽을 먹도록 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