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 전날 20230928
전날입니다. 늘 전날은 마음이 설렙니다. 해마다 별일이 없으면서도 내일이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닌걸, 특별한 일도 없는걸.’
저녁을 먹고 중국에서 개최된 아시안 게임 중계를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추석을 맞아 외국에 있는 선수들이 송편이나 먹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같은 나라의 선수라는 이유만으로 마음이 움직여 잠시 응원했습니다. 내 응원을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지만 내 기운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우승을 한 것의 만족입니다.
밖으로 나갔습니다. 공원이라도 걸어야 합니다. 온종일 방에만 있었더니 몸과 마음이 어쩔 줄을 모릅니다. 한 마디로 갑갑하다고 하면 맞는 말입니다. 아침에 달구경을 하기로 했는데 낮 동안 잊고 지냈습니다. 달을 볼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왜 깜빡했느냐고 하는 엉뚱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파트의 모퉁이를 돌자 둥근달이 모서리에 반쯤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오늘이 바로 추석 전날입니다. 해마다 돌아오는 날이지만 늘 설렘 반, 허전함 반입니다. 내가 명절이라는 것을 안 이후부터입니다. 어린 마음에도 웬일인지 명절은 반갑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다른 사람들은 명절이 돌아오면 들뜬 마음으로 지냈고 명절날은 보름달만큼이나 웃음을 가득 담았습니다. 나는 명절날 웃어본 일이 있을까요. 잠시 미소를 짓고 웃음을 보였지만, 깔깔대고 즐거움이나 기쁨을 한껏 토해볼 때는 기억에 없습니다.
이번 추석도 같을 것만 같습니다. 아직 집안은 침묵입니다. 아들이 엊그제 독감에 걸렸는데 심한 상태입니다. 병원을 두 번이나 다녀왔지만 차도를 보이지 않습니다. 감염이 염려되어 우리는 식사를 따로 하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연휴 기간 식구끼리 어디에라도 잠시 여행할까, 했는데 이마저도 그만두어야 합니다. 외국 여행도 생각했지만 속내로는 남해안의 순천과 보길도를 비롯한 몇 곳을 둘러보고 싶었습니다. 대부분의 지방을 두루 다녔어도 전라도 쪽에 가보지 못한 곳이 있습니다.
삼사 년 전까지만 해도 추석날이면 으레 형님 댁을 찾았습니다. 차례를 지내고 음식을 함께 먹습니다. 맛있는 커피도 한잔 마십니다. 카페를 하는 관계로 술보다는 당연히 커피에 마음이 갑니다. 형님이 병으로 쓰러진 후로는 차례와 제사가 생략되어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일도 없습니다. 일 년에 여섯 번의 참석은 고정되고 그 밖의 행사도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생략되었습니다.
명절 때면 으레 모이는 것으로 생각되던 우리나라의 전통이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서서히 퇴색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가족의 모임이나 행사보다 각자의 취미나 여행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긴 휴일을 맞아 올해도 해외로 떠나는 사람이 많습니다. 뉴스를 보니 공항이 북적입니다.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동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보름달을 온전히 보고 싶었습니다. 낮은 곳에서는 나무와 건물에 가려 달만을 바라보기가 불편합니다. 동산에 오르자 달은 하늘을 독차지한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휴대전화를 꺼내 모습을 담았습니다. 파란 하늘의 오로지 둥근 얼굴입니다. 오늘은 거치적거리던 구름이 한 점도 보이지 않습니다. 사진에 담긴 달은 허전하고 외로워 보입니다. 의자에 앉아 천천히 달을 뜯어봅니다. 어렴풋이 계수나무가 보이고 토끼도 보입니다. 절구와 절굿공이는 보이지 않는군요. 폭우와 태풍으로 흉년이 들어서, 아니면 사람들이 송편보다는 다른 음식을 좋아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올해는 나누어 줄 떡이 필요 없나 봅니다. 우리는 며칠 전에 송편을 사서 먹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예전 명절이나 계절과 관계되는 음식이 이제는 더 이상 텃세를 부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떡국을 먹었습니다. 아들이 목감기로 음식을 넘기기 불편하다는 말에 죽을 먹고, 국수도 먹었습니다.
올해는 연휴가 깁니다. 해마다 추석의 계획은 없었지만 무엇을 하고 지낼지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잠시 시끄럽습니다. 내가 의자에 앉자 골몰하고 있는 사이 두 청춘 남녀가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옥신각신합니다. 연애하고 있습니다. 다정한 듯, 아니 다정한 듯, 다정합니다. 예쁘다 아니다, 매력 있다. 느낌은 같은 말이면서 서로 다른 표현을 합니다.
‘나도 연애할까?’
좋은 시절 연애다운 연애를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상대가 없습니다. 싸우는 듯 목청이 높아지고, 사랑스러운 듯 목소리가 낮아집니다. 주책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여, 달 한 번 그들 한 번 훔쳐보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20여 분이나 됩니다.
어릴 때부터 나를, 수없이 눈여겨보던 달은 지루하지도 않은가 봅니다. 고개를 들 때마다 어김없이 눈 맞춤을 합니다. 섬에 있을 때는 밤새워 함께 이야기를 주고받은 일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게 잘 사는 거야.’
너는 잘살고 있느니 나에게 한 수 가르쳐 줄 수 있지 않니?
내일은 슬그머니 서울 광화문 광장에라도 가야 할까 봅니다. 민속놀이 체험을 할 수 있답니다. 제기차기, 윷놀이, 투호,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굴렁쇠 굴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