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219. 시간 죽이기 20230929

by 지금은

이번 추석 연휴에는 무엇을 할까, 하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보기로 했습니다.

‘아무것도…….’

퇴직을 한 후부터는 특별히 어떤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것은 아니지만 바쁘게 시간을 보냅니다. 남과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직장을 다닐 때처럼 규칙을 꼭 지켜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나름의 약속되지 않은 과정이 있습니다. 꼭 해야겠다고 정한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책 읽기와 글쓰기에 하루의 대부분을 보냅니다. 벌써 10여 년이 되었습니다. 틈틈이 그림을 그려보거나 음악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합니다. 발전이 없지만 어쩌다 악기를 만지기도 하고 때로는 음악 감상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나름대로 줄거리를 만들어 그림을 완성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시간에 쫓긴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배우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오라는 곳은 없어도 이곳저곳 기웃거립니다. 노인복지관에서 글쓰기를 합니다. 도서관, 평생학습관에서도 합니다. 또 다른 복지관에서는 그림책 만들기를 합니다. 대학에서는 고전인 문학 강의를 듣습니다. 집에서 하는 Zoom 교육도 있습니다. 올해는 바쁜 한 해입니다. 내 글이 실리는 책을 다섯 권 받기로 했습니다. 그림책이 각각 한 권씩, 수필이 각각 세 권입니다. 한 번은 교육청 주최로 실시하는 밤새워 글쓰기에도 참가했습니다. 가보니 모두가 젊은이들입니다.

“연세가 많으신데 밤을 새워도 되겠습니까?”

“염려되지만, 해보겠습니다.”

생각이 잘 풀려서 다른 사람들은 한 꼭지를 쓰는데 나는 두 꼭지를 썼습니다. 스스로 교정까지 맞춰야 하니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띄어쓰기, 맞춤법, 탈자, 오자를 점검하느라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먼동이 튼 후에야 원고를 제출했습니다.

피곤한 줄을 몰랐는데 집에 오니 피로가 밀려옵니다. 이틀이나 여독이 가시지 않아 잠으로 피로를 풀어야 했습니다. 밤낮없이 잠에 취했습니다. 병이 날까 염려되어 은근히 걱정했지만, 서서히 회복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어쩌지요.


원고를 다시 점검해 보니 한 글자를 빼먹었습니다. 그냥 두면 문맥이 맞지 않습니다. 규칙상 한번 제출한 원고는 문장을 수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잠시 고민하다가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한 글자를 빠뜨렸습니다.’

처음에는 어렵다는 말을 비추더니 탈자가 있어 문맥이 통하지 않는다고 했더니만 문장을 고치는 것이 아니니 고려하겠다는 답을 얻었습니다. 다행입니다. 빠뜨린 글자를 메우지 못한 채 책이 발간되었다면 열심히 쓴 보람이 반감된다는 생각에 은근히 걱정했습니다. 어찌 보면 주최 측에서도 빠진 글자를 알려준 것에 대해 싫어할 이유가 없습니다. 누군가는 교정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며칠 전에 소식이 왔습니다. 돌아오는 토요일에 전시회를 열 예정이니 참가해 달라고 합니다. 두 권이 완성되었습니다. 세 권은 준비 중입니다.

도서관에서 늘 떨어지기 전에 빌리던 책을 대출받지 않았습니다. 서너 권은 늘 곁에 두고 읽었는데 모두 반납을 한 상태입니다. 책을 읽지 않고 있으니, 시간의 틈이 많이 벌어집니다. 글을 쓰고 음악을 감상하고 생각나면 스케치도 해보지만, 여유가 있습니다. 빈틈을 메우지 않으니, 뭔가 허전한 마음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두 권이라도 빌려놓을 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친구들에게 추석을 맞이하여 안부의 메시지를 보낼까, 하고 휴대전화를 집었다가 그만두었습니다. 며칠 전에 만나 식사를 하고 잡담했습니다. 추석을 잘 지내라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형님 댁에 들릴까, 하다가 그도 그만두었습니다. 병원에 있으니 가야 얼굴을 볼 수가 없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대부분 자기들만의 시간을 갖기를 바라는데 삼촌이 찾아가는 것을 반가워할지도 모릅니다. 혹시 여행이라도 떠났는지 모릅니다. 추석 연휴에 형님 문병을 가게 되면 함께 가겠다고 형수에게 말했지만, 대답이 시원치 않습니다.

아침부터 컴퓨터와 씨름을 하고, 텔레비전을 멀리하는 내가 아시안게임을 시청했습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의 경기입니다. 수영, 농구, 탁구, 배드민턴……. 선수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겠지만 마음으로 응원했습니다.

저녁때가 되자 공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어린이 놀이터 옆에서 낮은 벽을 마주 보고 공을 찼습니다. 벽을 맞고 되돌아옵니다. 꼬마 아이가 신기한 듯 우두커니 서서 나를 바라봅니다. 모습이 귀여워 공을 보이며 함께 놀자고 손짓했습니다. 수줍은가 봅니다. 재빨리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오늘은 추석날이기도 하지만 새로 만든 놀이터를 개장하자 아이와 부모가 제법 많이 모였습니다.

‘아차 달 구경하기로 했지.’

어느새 주위가 어둠에 싸입니다. 공을 집어 들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공원의 동산으로 달구경을 가야 합니다. 어젯밤에도 보았지만, 오늘은 달이 더 밝고 클 거라고 했습니다. 지난밤에는 절구와 절굿공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 밤은 달 속의 계수나무, 토끼, 절구와 절굿공이를 오로지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는 고향마을의 달 속에 분명 담겨 있었는데…… 남은 시간을 죽이기는 아깝습니다. 달과 함께 놀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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