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 문병 20231002
전날 잠자리에 들 때 일찍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각 때문인지 너무 일찍 잠에서 깨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입니다. 화장실에 들렀습니다. 다시 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습니다. 거실에 나와 그동안 보지 못한 책을 들었습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읽다가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어, 7시’
이 시간에 길을 나서기로 마음먹었는데 늦었습니다. 식탁에는 이미 아침이 차려져 있습니다. 모처럼 아들이 역전까지 차를 태워졌습니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무를 보는 사람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오셨어요.”
“삼촌을 뵈러 왔습니다.”
곁에 앉아있던 사람이 내 목소리가 낯이 익었는지 일어나 인사를 합니다. 코로나 검사를 하고 왔느냐 묻기에 검사 도구를 내밀었습니다. 할 줄 아느냐기에 고개를 끄덕이자, 나에게 맡길 줄 알았는데 다가와 검사를 도와주었습니다. 전에도 그가 삼촌의 사정을 묻기에 대가 말해주었더니 불쌍하다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삼촌은 결혼하지 않았고 물론 자식이 없습니다. 어려서 사고로 불구가 되었고 회복까지는 수십 년이 걸리다 보니 거동에는 무리가 없지만 혼기를 놓치고 그렇게 홀몸이 되었습니다. 올해로 100세입니다. 생활 능력이 없다 보니 한동안 양로원 신세를 져야 했고 지금은 요양병원에 있습니다. 막내 삼촌의 금전적인 보살핌을 받고 있습니다.
메고 간 배낭을 풀었습니다. 요양보호사가 요청한 환자의 물품을 꺼냈습니다. 얇게 쓴 과일을 꺼내 주저로 입으로 들어가기에 알맞게 몇 등분한 것들을 입에 넣어드렸습니다. 부드러운 것이라 싫다는 표정을 짓지 않으셨습니다. 남은 것은 점심 식사 후식으로 마저 드렸습니다.
손톱깎이를 꺼냈습니다. 전에 갔을 때 손톱과 발톱이 길어 보기가 흉하다는 생각에 챙겨갔습니다. 발톱을 자르려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습니다. 너무 두꺼워 가져간 큰 손톱깎이도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가위를 주었습니다. 역시 잘되지 않습니다.
“조금씩 긁어내듯 깎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의 말대로 되지 않습니다. 미끄러지기만 할 뿐 가루만 날립니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손톱만 잘라주기로 했습니다.
‘어쩌지요.’
손톱을 자르는 순간 삼촌이 움찔하며 불편한 표정을 짓습니다. 조금만 자르려고 했는데 살을 집었습니다. 약간의 핏빛이 보이는 듯했는데 핏방울이 맺힙니다. 열 개의 손톱을 깎고 보호사가 주는 일회용 밴드를 붙였습니다. 잘해드리고 싶었는데 마음 갖지 않았습니다. 내 손톱을 깎을 때와는 전혀 다릅니다. 내가 내 손톱을 깎을 때는 손톱깎이가 닿는 느낌을 알 수 있어 나름대로 조절할 수 있는데 남의 손은 느낌을 알 수가 없습니다. 굳이 이유를 붙인다면 상대의 부자연스러운 손의 움직임도 영향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좀 더 신중해야 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병상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분이 3분이나 됩니다. 고령화에 따른 현상입니다. 수명이 늘다 보니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전에 비해 점차 늘어나는 현상을 보입니다. 그를 증명하는 것이 요양병원이라든가 요양원, 양로원의 증가입니다. 그들을 볼 때 죽기를 기다리는 대기 장소가 아닐지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형님과 작은어머니, 삼촌 두 분이 거동하기가 어려운 상태로 침대에 누워있습니다. 이 밖에도 친구의 부모, 아는 사람의 부모들이 같은 이유로 요양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형수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화장실 출입이라도 할 수 있으면 집에서 모시면 좋겠는데.”
“그러게, 말이에요. 모시려고 집안의 문턱을 다 없애지 않으셨어요.”
형님이 병원에서 어떻게 하든 회복되어 집으로 오겠다는 말에 희망을 안고 식구들은 집수리했습니다. 이제는 단지 희망 사항이 되고 말았습니다.
형님은 고집이 셉니다. 마음만 먹으면 음식을 전폐하고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이를 걱정한 형수가 남편에게 신신당부했습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더 낫대요.”
면회 때마다 간곡한 부탁이 통했는지 식사를 잘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희망을 품고 재활치료에 전념하고 있지만 망가진 신경은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몇 년이 지나자, 의사도, 가족도, 환자도 포기한 상태입니다. 몸이 약해지고 마음도 약해졌습니다. 늙으면 아이가 된다는 말이 실감 납니다. 자존심 강한 사람이 ‘보여줄 것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 가릴 새도 없이 보이고 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남에게 몸을 전부 내맡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처지에 있습니다.
추석 연휴라며 아내는 삼촌이 좋아할 만한 음식을 몇 가지 정성껏 마련하여 싸주었습니다. 하지만 과일 외에는 내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점심이 나오는데 가져온 음식을 많이 드시면 건강이 염려된다는 간호사의 말입니다. 식단 조절 중이랍니다. 듣고 보니 당이 많은 것들입니다. 요양보호사에게 주고 싶었지만, 한사코 손사래를 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풀지도 못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주위를 돌아보는 여유도 없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이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나의 남은 시간을 불러들입니다. 가족이나 남에게 나의 모든 것을 맡겨서는 안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