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 언제나 특별한 날 20201001
올해도 어느새 가을의 중턱으로 다가서고 있습니다. 덥다 더워하는 가운데 장마와 폭우가 지나가고 태풍도 우리 곁을 스쳐 갔습니다. 언제까지 계속될 것만 같던 습한 무더위는 한풀 꺾이고 새벽에는 잠결에 얇은 이불을 배에 걸칩니다.
우산을 들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양산은 어떨까. 날씨 때문에 바깥나들이에 종종 신경을 쓰곤 했는데 이것 하나만큼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지루한 여름을 보상이라도 해주려는 듯 요즘은 날씨가 좋습니다. 미세먼지까지 없어 눈이며 코며 머리까지 상큼한 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집에만 있으면 죄라도 지은 것 같은 기분에 틈틈이 밖으로 나갑니다. 공원을 걷고 강가를 따라 맑은 물을 기웃거립니다. 뭐라도 있는 거야, 낚싯대를 드리운 머리 허연 사람이 등을 지고 망부석이 되었습니다. 한껏 물에 비치는 뭉게구름을 낚아 올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일 년 열두 달 기분 좋은 날은 얼마나 될지 생각을 해봅니다. 나름의 기준이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많지 않습니다. 봄과 가을처럼 화창하고 맑은 날이어야 하고, 미세먼지도 없어야 만족할 수 있습니다. 직장인들이라면 무조건 주말은 이런 날씨여야 합니다. 이런 조건을 만족하는 날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여행의 8할은 날씨라는 말이 있듯이 날씨는 매우 중요합니다.
“갑자기 웬 폭우야.”
이탈리아 피사의 탑을 구경할 때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하늘을 덮었습니다. 맑던 하늘이 갑자기 어둠 속에 싸였습니다. 한밤중을 연상할 정도의 먹장구름은 바닥의 틈을 완전히 가릴 정도의 폭우를 만들었습니다. 준비가 되어있지 않던 나는 옷이며 배낭이 비에 흠뻑 젖었고 신발은 물속에 잠겨 걸을 때마다 물이 들어갔다 나갔다 반복했습니다. 한 시간 이상을 퍼붓던 비는 사라지고 어느새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하늘이 맑은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하필이면 피사의 사탑 관람을 할 수 없는 휴무이니 겉모습을 돌아보며 날씨 변화에 따라 보이는 모습도 다르다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 년 내내 맑은 날만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맑고 흐리고, 비가 오고, 춥고, 덥고. 이런 날이 알맞게 어우러져야 합니다. 맑은 날만 계속된다면 가뭄이 들 것은 뻔한 이치입니다. 추운 날이 계속된다면 생물이 자랄 수 없고 무더위만 계속된다 해도 삶에 지장을 초래합니다.
나는 맑고 투명한 날을 좋아하지만, 비 오는 날이나 눈 오는 날도 좋아합니다. 지루한 장마철에는 집안에만 갇혀 있을 때가 많습니다. 가끔 밖으로 탈출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아내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합니다.
“소나기가 쏟아지는데 나가시려고요.”
“답답해서요.”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때로는 우의를 입고 나가기도 합니다. 거침없이 빗속으로 뛰어듭니다. 오늘은 젖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우산을 썼지만, 비바람을 온전히 막아낼 수가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빗방울은 내 마음을 알아차렸다는 듯 한꺼번에 덤벼듭니다.
‘우두둑, 후둑, 후드득’
거침없이 우산을 때립니다. 귀가 시끄럽습니다. 마치 회초리로 나를 때리려는 듯 우산으로 달려듭니다. 빗방울이 부서지며 파편들이 튀어 오릅니다. 멍하던 귀가 점차 평온을 찾았습니다.
‘북소리, 장구 소리, 작은 소리, 소고 소리…….’
어느 집 앞을 지날 때입니다. 지붕 위로 쏟아지는 비가 다른 여운을 불러옵니다. 함석을 때리는 빗방울이 둔탁하면서도 날카로운 음을 쏟아냅니다. 우산 속의 울림과 서로 어울려 색다른 음색을 토해냅니다. 유리창을 때리는 소리, 호박잎을 두드리는 소리……. 모든 자연의 모든 타악기가 어울려 어긋난 음을 표현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울림으로 내 귀를 찾아옵니다.
잠시 비가 그쳤습니다. 하늘은 아직도 미련을 남아있나 봅니다. 비구름을 몰아가며 나를 따릅니다. 우산을 접은 채 걸으며 하늘을 바라봅니다. 철퍽하는 소리와 함께 발이 물웅덩이에 빠졌습니다. 구름 감상을 하다가 일어난 일입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구름을 바라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넘어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그늘막에 앉아 신발을 벗었습니다. 뒤집어 물을 토해냅니다. 양말을 벗어 참기름을 짜듯 쥐어짰습니다. 바짓가랑이도 짜야겠지요.
비를 맞아서일까요. 선뜻한 느낌이 듭니다. 갑자기 겨울이라도 찾아오는 게야, 눈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갑자기 눈앞에 눈이 보이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흘러가는 물이 눈처럼 희게 내 눈을 비춥니다. 서둘러 집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오늘도 특별한 날이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