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 또 다른 추석 20231005
추석의 긴 연휴가 지났습니다. 예전과는 달리 여러 날을 어떻게 지낼지 고민했습니다. 젊었을 때까지만 해도 쉬는 날이 무조건 많았으면 했습니다. 직업을 가졌을 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겠지만 시간에 얽매여 생활한다는 게 영 곤욕스러운 게 아닙니다. 돈과 연관이 없다면, 의식주가 해결될 수만 있다면, 가끔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탈출하고 싶었던 때도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학생 시절도 있지만 심각하게 생각한 것은 그 이후의 일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기관차 승무원이 되었습니다. 마음먹은 대로는 아니지만 매일 어디론가 떠납니다. 승무원이 되어 생활해 보니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한 곳에 머물고 싶은 생각이 앞섰습니다. 특히 명절 때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고향을 찾거나 집에서 친지들과 쉬고 있는데 나는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야 합니다.
추석 전날입니다. 긴 거리를 배정받았습니다. 저녁에 차에 올랐습니다. 화물기관차입니다. 목적지를 향해 밤을 새워 달립니다. 기관실에는 달랑 두 사람입니다. 몇 달이나 함께 하다 보니 할 말이 떨어졌습니다. 묵묵히 앞만 보며 달리며 주위를 살펴봅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봅니다. 둥근달이 두둥실 떠올라 우리를 쫓아옵니다. 도시를 지나고, 산마루 타고, 들판을 지나고, 강을 건너기도 합니다. 내 눈이 달을 따라갑니다. 모퉁이를 돌자, 달이 나를 따라옵니다. 방향에 따라 서로 쫓기도 하고 달아나기도 합니다.
열두 시가 지났나 봅니다. 수탉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달리는 동안 적막이 시작되었습니다. 동네를 지날 때 가끔 개 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하지만 기차의 소음에 의해 곧 묻혀버리고 맙니다. 식식거리며 기차는 달립니다. 증기 기관차는 가끔 숨이 차는 모양입니다. 긴 숨을 토해내기도 하고 가쁜 숨을 쉬기도 합니다.
“에이, 남들은 다 쉬고 있는데, 이게 뭐람.”
혼잣말했습니다.
나는 결국 승무원의 일을 놓았습니다. 기대와는 달리 밤낮없이 바뀌는 출퇴근 시간에 적응하기가 어렵기도 했지만 배움의 끈을 버리기가 싫었습니다.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처음과는 방향이 다른 교직의 길을 걸었습니다. 한동안 잠잠하던 이탈의 생각이 되살아났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이 답답할 때가 있었습니다. 특히 아이들의 이탈이 나를 괴롭게 했습니다. 이럴 때는 두어 달 동안 어디론가 훌쩍 떠났다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두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때로는 떠나고 싶은 마음이, 한 곳에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서로 대립하기도 합니다. 한 곳에 머무르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직업을 바꾸었는데,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가장이 되다 보니 직업을 바꾼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일자리를 바꾸었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여행안내자, 여행가, 탐험가, 아니면 원래의 승무원으로 돌아갔을까요.
정년퇴직을 한 후에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이루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의 자유가 있다 보니 떠나고 싶을 때 떠나고 머무르고 싶을 때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있고 공간이 있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늙어감에 따라 젊음을 잃었다는 것에 대해 가끔은 실망이 되기는 하지만 꼭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젊음이 좋은 것이고 늙음이 꼭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건강만 허락한다면 늙음이 뭐 큰일은 아닙니다. 삶에서 죽음에 이르는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단지 내가 아프다는 데 있습니다. 마음은 젊은 데 몸이 말을 잘 듣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쑤시고 아픕니다. 얼마 동안 몸을 이리 둥글 저리 둥글, 팔다리를 이리저리 흔들고 비틀기를 해야 몸을 추스를 수 있습니다. 스트레칭이라는 말을 하면 맞을까요.
인생은 여행의 연속이라는 데, 나는 제대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버린 오늘을 빼고는 한 번도 오지 않은 오늘을 맞이하고 새로운 오늘을 또 맞이합니다. 내가 가는 길은 낯익은 곳도 있고, 처음 맞이하는 길도 있습니다. 점차 축적된 경험이 나를 이끌지만 그렇지 못한 일도 많습니다. 나는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것도 하나의 여행이며 탈출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석 연휴, 일주일이나 되는 긴 날입니다. 사람들은 고향을 찾고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집이나 한적한 곳에 머물러 휴식을 취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이 긴 연휴를 어떻게 지낼지 고민했는데 지나고 보니 연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정해진 시간에 뭔가 해야 할 일이 없고 규칙적으로 갈 곳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긴 연휴가 내 앞에 머물고 있습니다. 떠남과 머무름, 나는 아직도 고민에 싸여있습니다. 집에만 갇혀 있었으니, 이제는 잠시 떠나야 할 시간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채웁니다. 작년 올해는 명절이면 찾아가던 형님 댁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형님이 요양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하다 보니 차례도 생략되었고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올해의 추석 보름달은 기관차 창밖으로 보이던 하늘을 상상했습니다. 하늘에 손가락을 대면 곧 얼어붙을 것만 같던 파란 하늘을 생각하며 동산에서 달맞이했습니다. 크기가 작아 보이고 토끼의 방아 찧는 모습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올해의 슈퍼 문이라는 뉴스가 있었는데, 내 눈이 침침해졌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내일은 잠시 서울 바람이라도 쏘여야 할까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