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 어떤 죽음 20231006
‘사는 게 뭔지.’
어렸을 때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을 가끔 들었습니다. 어느 순간 말뜻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구나, 삶이 어려워서 그러시는구나.’
내가 성장하는 동안 우리의 경제는 점차 나아지고 어느덧 3만 불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의식주에 대한 부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습니다. 많은 사람이 문화생활의 여유도 생겼습니다. 사는 게 뭔지 하는 물음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지만 이에 못지않게 우리의 마음을 파고드는 게 있습니다.
‘죽는다는 게 뭔지.’
삶의 질 못지않게 죽음의 질에 관한 생각이 점차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나타나는 물음입니다. 학자들은 100세 시대를 말하고 또 다른 이는 조심스레 120세를 들먹입니다. 인간의 수명이 늘어났습니다. 이는 경제와 의료기술의 발전에 따른 결과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평균 수명을 따져볼 때 예전에 살던 사람의 두 곱을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이 길어지면 그만큼의 아픔도 늘어납니다. 생로병사에서 병을 앓는 기간이 늘어남을 알 수 있습니다. 의료기술이 나날이 발전하지만, 모든 질병을 해방해 줄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원하지만,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게 대부분입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있지만 죽음의 질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은 어떤 죽음을 원할까, 최근 통계에 의하면 10명 중 6명은 집에서 임종을 원하지만, 실제와는 다릅니다. 8명은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사망한다고 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병원에서 사망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다른 나라는 대부분 임종을 집에서 맞이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데 우리는 반대로 병원에서의 임종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예를 알 수 있는 게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의 증가입니다. 내가 젊은 시절만 해도 이 낱말이 낯설었습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몰려오듯 어느새 곳곳에 요양원 간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나는 가끔 문병을 갑니다. 문병한다고 하기보다는 안부를 묻기 위해서라고 하면 맞을 것 같습니다. 삼촌이, 형님이 내일의 건강을 기약하지 못한 채 자리에 누워있습니다. 또 다른 삼촌과 숙모님이 같은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눈은 뜨고 있지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습니다. 오직 침대가 행동반경입니다.
남의 나라 사정이야 어떤지 알 수 없지만 우리의 현실은 참담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죽음의 질이 점점 낮아집니다. 대부분 사람이 암이나 심장병 같은 만성질환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회생 가능성이 없어도 인공호흡기와 혈액투석기 같은 의료기기의 힘을 빌려 수명을 연장합니다.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있는 사람들도 건강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병을 적극적으로 치료하기보다는 안정된 상태에서 고통 없이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겨우 수명 연장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본인도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안타깝기만 합니다.
어찌하다 보니 나이 듦에 따라 건강이 나빠져 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장소는 이들만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중증 환자들의 집합소가 되었습니다. 요양원을 찾을 때마다 과거와 다른 점을 떠올립니다. 병들고 노쇠하면 가는 곳, 가족과 떨어져야 하는 곳, 나의 온몸을 남에게 의지해야 하는 곳, 보여주어야 할 것과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까지 보여 줘야 하는 곳, 눈뜬 송장, 별별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힙니다.
죽음에 이르는 길은 과거와 현대인의 또 다른 점이 있습니다. 죽음이 확정된 순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장례식장으로 향합니다. 식구와 친지들과 떨어져 냉동실로 갑니다. 다음은 화장장으로 옮겨집니다. 현대인의 죽음에는 이렇게 세 가지 요소가 추가되었습니다. 죽음 후에는 아픔이나 고통을 느끼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하늘로 가는 길에 새로 생긴 세 번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립니다. 병들고 늙으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자의든 타의든 요양원 신세를 져야 합니다. 죽은 후에는 냉동고에서 차가운 맛을 보아야 하고, 화장장에서 불맛도 보아야 합니다. 다음에는 가는 길이 조금은 다릅니다. 대부분 한 줌의 재가 되어 땅으로 또는 납골당으로 가기도 하고 자연에 뿌려지기도 합니다.
죽음이라는 자체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죽음이라고 할까. 편안한 죽음입니다.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건강한 삶과 의미 있는 죽음이 서로 연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죽는 게 뭔지.’
노인복지관에서는 존엄사 프로그램 신청자를 모집 중입니다. 어떻게 할까? 망설여집니다.
오늘은 생각의 깊이가 깊어지는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