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 여행의 맛 20231024
여행의 맛은 낯섦이라고 합니다. 친구가 말했습니다.
“집 나가면 개고생.”
이 친구는 웬만큼 중요한 일이 아니면 낯선 곳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먹는 것, 입는 것, 잠자는 것 등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랍니다.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여행이라는 말이 나오면 나는 토끼라도 된 양 귀를 쫑긋 세웁니다.
퇴직을 한 후 여행을 많이 했습니다. 전에는 직장 일이 늘 바쁘다는 핑계로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아이의 방학을 맞아 국내 여행을 몇 차례 한 게 전부입니다. 굳이 여행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이고 보니 아무래도 살림 형편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여행을 좋아하는 것처럼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준비하는 과정, 목적지에 이르는 길, 되돌아왔을 때의 다소간이 피곤함은 하나의 추억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나는 푸름이 짙은 바닷가를 좋아합니다. 당연히 동해안을 동경했습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여행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곳만큼 내 마음을 뻥 뚫리게 하는 곳은 없습니다. 산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 저 멀리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 그 수평선을 지우면 하늘이 바다고 바다가 하늘입니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하늘과 지평선이 만나는 곳, 그 선을 지우면 바다가 땅인지 하늘이 바다인지 모르겠습니다. 바다 한가운데 이르렀을 때입니다. 한 번은 배에서 뛰어내려 헤엄을 치다가 하늘을 향해 누웠습니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곳, 잔잔한 물결은 나를 그대로 받아주었습니다. 침대에 누운 것만큼 편안했습니다. 양팔을 벌리고 양다리를 좌우로 움직입니다. 시냇가 웅덩이에 떠 있는 나뭇잎처럼 서서히 물결을 탑니다. 마음 같아서는 온종일, 아니 한 달이라도 견딜 것만 같습니다. 파란 하늘에 떠 있는 하얀 구름을 따라 한없이 어디론가 갈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나는 바다를 동경하여 한 때 섬에서 생활한 일이 있습니다. 50의 나이가 될 때까지 섬이라고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곳에 첫발을 발을 디뎠습니다. 4년의 생활은 상상만큼이나 내 마음을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산촌, 농촌, 도시와는 또 다른 감정을 불러왔습니다. 환경이 다르고, 하는 일이 다르다 보니 일 년 동안은 신기한 자체였습니다. 계절의 변화가 다소 무디기는 해도 낯선 것들을 보여주었습니다. 강한 바람에 견디는 나무와 풀, 농사철 수확을 위해 일하는 것처럼 매일 조류 간만의 차를 따라 갯벌을 드나드는 사람들, 봄가을 기온의 차이로 섬을 뒤덮는 안개, 깊은 산골에서 방향을 잃은 것처럼 갯벌에 갇혔다가 소리에 의해 탈출하는 일, 농악놀이나 사물놀이에나 쓰이는 줄 알았던 꽹과리가 이들의 발길은 인도하는 소중한 물건임도 알았습니다.
나는 일과가 끝나는 시간이나 휴일에는 집에 갈 생각을 접어두고 동네 사람들과 수시로 어울렸습니다. 섬의 곳곳을 홀로 헤매고, 갯벌을 함께 나가기도 했습니다. 밤에 나아가 그물에 걸린 고기를 내 것이라도 되는 양손에 쥐고 입맞춤하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달구경도 재미있습니다. 거칠 것 없는 달은 느긋하게 하늘을 독차지하고 서서히 내 창문 앞으로 다가와 밤새 떠날 줄을 모릅니다. 눈을 맞추고 침묵 속에 각자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고 보니 나는 행운아입니다. 산촌, 농촌, 어촌, 도시를 가릴 것 없이 경험한 삶이었습니다.
퇴직 후에는 다른 나라가 궁금했습니다. 비행기요, 늘 궁금했지만, 이때 처음으로 타봤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탈 것 중 제일 먼저 본 것은 비행기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산촌에 살았기 때문입니다. 차가 다닐 수 없는 산길이기에 차를 구경한 것은 초등학교 입학 무렵이었습니다. 산에서 벤 나무를 실어 나르는 트럭입니다. 시내를 나갔다가 무섭게 보이는 기차를 보았습니다. 증기기관차입니다. 내 키보다 훨씬 큰 쇠바퀴와 산골의 겨울 새벽, 무쇠 솥뚜껑을 들썩이며 뿜어 대내는 새하얀 증기, 화가 난 듯 소리를 지르는 기적소리는 나의 마음을 쪼그라들게 했습니다. 이런 기차를 타보았습니다.
무섭게만 느껴지던 증기기관차를 움직일 줄이야 알았겠습니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동안 기관차 승무원으로 일했습니다. 여행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모든 계절을 안고 밤낮 움직이는 차 차례로 기관사, 교사, 도서관 사서라는 직업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게 외국의 여행을 했습니다. 비행기를 최초로 타본 것은 예순이 넘은 나이였습니다. 첫 번의 비행기 탑승은 마음을 설레게 했습니다. 하늘을 나는 기쁨, 바다 한가운데 누워 하늘을 보는 것만큼이나 희열을 느꼈습니다. 발아래 펼쳐진 구름 위를 날 때는 그 포근함에 뛰어내려 보고 싶은 유혹을 억지로 참아야 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달라진 이국 풍경에 눈이 손가락만큼 많다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습니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까지 해마다 나의 마음을 설레게 했습니다.
집에 도착해서는 한동안 시차에 여행의 피곤함을 견뎌야 했지만, 낯선 곳을 벗어나 안락한 곳으로 무사히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견딜 만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여행의 모든 순간이 즐거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불편함에도 떠나야 하는 이유는 안 보면 보고 싶은 감정이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늘 오늘이 처음인 것처럼 크게 보든 작게 보든 삶은 여행입니다.
코로나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또 다른 무서운 놈이 나타나기 전에 다시 여행의 계획을 세워야 할까 봅니다.
안에서 남다른 여행의 맛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