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 내게도 간식이 있었나? 20231024
‘간식(주전부리, 군것질)’ 사전적 의미를 알아보고 싶어 사전을 열었습니다.
1. 끼니 외에 떡이나 과일, 과자 따위의 군음식을 먹음
2. 맛이나 재미, 또는 심심풀이로 먹는 음식
글쓰기 공부를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간식을 준비하고 학습을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글을 쓰는 재미도 있지만 먹는 즐거움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간식이 무엇일까? 문득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간식을 좋아하지 않는 습성 때문인지 모릅니다. 아니 모르고 지냈다는 말이 맞습니다. 삼시 세끼 밥을 먹기도 어려운 시절 군것질이란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6·25 전쟁이 끝난 후의 사정은 일부 계층을 제외하고는 삼시 세끼 밥을 굶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지금의 사정은 다릅니다. 간식을 입에 달고 살며 맛, 집을 찾아다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어느새 최빈국에서 경제 대국으로 발전했습니다. 봄이 되면 주변에 먹을 게 없어 굶어 죽었다는 사람들의 이름이 이 동네 저 동네 떠돌았는데, 언제인가부터 너무 먹어 성인병에 걸려 고생하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과체중을 고민합니다.
어렸을 때의 간식,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더구나 음식이라니 말입니다. 그 시대에도 분명히 간식이란 게 있었습니다. 먼 기억이기에 꽉 막혀버렸는지 모릅니다. 간식이란 말 대신에 주전부리, 군것질을 생각합니다. 같은 용어이지만 왠지 마음에 와닿는 느낌이 다릅니다.
주전부리라? 산촌에 살았기에 음식은 아니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입에 넣던 것을 떠올립니다. 버찌, 앵두, 찔레순, 식영, 삘기, 보리수, 머루, 다래, 으름, 감, 밤……. 어린 시절이고 보니 어른들은 계절과 관계없이 늘 바쁘지만, 철부지 아이들은 산으로 들로 냇가로 쏘다녔습니다. 맛이 있어도 맛보고, 맛이 없어도 맛을 봅니다. 이 맛 저 맛 자연의 맛입니다. 떫은맛, 신맛, 쓴맛, 단맛, 고소한 맛 등. 색색의 맛이 이미 내 몸속에 머뭅니다.
어느 늦은 가을날입니다. 동네에 뻥튀기 기계를 짊어진 어른이 나타났습니다. 동네의 큰 마당에 지게를 내려놓고 ‘뻥튀기요, 뻥튀기’ 몇 차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아이들이 달려왔습니다. 아낙네들이 곡식을 가지고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들었습니다. 장날의 한 장면 같습니다. 첫소리는 늘 새로움이 담겨있습니다.
‘뻥’ 소리에 놀라 재빨리 할머니 품에 숨었습니다. 눈을 떠보니 옆집 아주머니의 치마폭입니다.
‘와! 세상에나.’
한 됫박의 곡식이 몇 분 사이에 한 자루가 되었습니다. 농사도 이렇게 쉽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즐거울까. 처음으로 입에 든 맛은 고소하고 달콤합니다. 색으로 말하라면 노랑과 빨강입니다. 부풀린 쌀알이 씹을 새도 없이 입안에서 눈처럼 사르르 녹습니다.
“할머니, 매일 뻥튀기만 먹으면 좋겠어요. 맛도 있고 양도 많고, 일 년 내내 배고프지 않고 살 수 있겠지요?”
“그러면 얼마나 좋겠니.”
대부분의 사람처럼 나도 할머니도 뻥튀기를 좋아합니다.
벚꽃 피는 어느 봄날입니다. 아내와 석촌 호수로 나들이했습니다. 벚꽃이 호수를 하얗게 물들였습니다. 벚꽃을 구경하는 건지, 사람들을 구경하는 건지 구별이 안 됩니다. 벚꽃에 물든 사람들의 물결에 휩싸여 내 걸음이 아니라 남의 걸음으로 움직입니다. 중간쯤에서 각종 뻥튀기를 발견했습니다. 국민 주전부리라면 맞을까요. 의자에 앉은 사람들의 손에도 있습니다. 내 손에도 아내의 손에도 있습니다. 우리는 호숫가를 걷은 동안 눈은 벚꽃의 하양을, 하늘의 푸름을, 몇 개의 흰 구름을 담았습니다. 발은 뒷사람의 발을 따르고, 손에 든 노란 팝콘은 걸음걸이에 맞추어 입으로 직행합니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내는 아직도 맛이 입안에 남았나 봅니다. 밤 아홉 시가 넘었을 무렵입니다.
“허전하지 않아요?”
“심심풀이 땅콩.”
“그게 아니고 뻥튀기.”
이 늦은 밤에 사러 가기에는 귀찮습니다. 더구나 파는 곳이 어딘지 짐작할 수도 없습니다.
며칠 후입니다. 아내가 뻥튀기를 큰 그릇 가득 내놓았습니다. 떡국을 하려고 저며 놓은 모양입니다. 부피가 몇 배나 부풀었습니다. ‘흰떡 뻥튀기’입니다. 눈이 텔레비전에 고정된 순간에도 손은 로봇처럼 아래위로 움직입니다. 성이 차지 않는 것 같아 인터넷 쇼핑으로 한 상자 샀답니다. 심심풀이 땅콩 대신 뻥튀기입니다.
오늘은 아내가 외출한 사이에 상자를 열었습니다. 어느새 바닥을 드러냅니다. 한 그릇 퍼 담았습니다. 광고지를 보니 종류가 다양합니다. 떨어지기 전에 다른 뻥튀기를 주문해야 할까 봅니다.
다양한 맛도 있지만 고르는 재미도 있겠다 싶습니다.
“쌀, 보리쌀, 밀쌀, 콩, 귀리, 떡…….” 뭐로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