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 휴강 20231019
‘자가 휴강.’
창밖을 보니 아파트의 외벽이 젖었습니다. 새벽부터 시작되었을까, 아니면 늦은 밤부터 시작되었을까. 언제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아침입니다. 버스 정류장 쪽을 보니 우산을 쓴 사람들이 보입니다. 출근하는 모양입니다. 잠시 후 학생들이 건널목을 건너는 모습도 보입니다. 지금 밖을 살피는 이유는 비가 오나 오지 않나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자빠진 김에 쉰다’는 말이 있듯 꾀를 부리고 싶습니다. 아이도 아니고, 누구의 눈치를 볼 나이도 아닌데 말입니다. 내가 내 눈치를 보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병원에 갈 일이 있어서 오늘은 참석 못하고 다음 주에 갈게요.”
스마트 폰에 알림 문자가 떴습니다. 평생학습 수강생 중 나보다 먼저 결석을 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갈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에 선수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담당 직원의 답이 달렸습니다.
“비가 오니 조심하시고 곧 건강을 회복하셔요.”
오늘은 비가 쉽게 그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찌푸린 하늘 아래로 가랑가랑 내리는 빗줄기가 보일 듯 말 듯합니다.
“오늘은 자가 휴강입니다.”
강의실을 향해 손을 흔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대학교에 다닐 때입니다. 이 친구는 종종 같은 말을 하면 손을 내저었습니다. 교수가 잔디밭에 주저앉아 있는 학생을 향해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이번에는 학생이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좌우로 흔듭니다.
이 친구는 7년 동안이나 학교에 다녔지만,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출석 일수 미달입니다. 어려서부터의 삶이 순탄하지 않았고 마음 또한 괴팍했습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아나 다름없이 자랐습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괴롭히는 일은 없었지만, 자신의 장래에 대해 깊은 성찰이 부족했다고 할까요. 하지만 성격이 무던하고 의리가 있어서 학생들과 교수의 호감을 샀습니다. 그의 정신세계를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림과 문학을 좋아했던 친구’
나보다 몇 살 위이고 학번이 앞섰음에도 스스럼없이 친구를 대하듯 했습니다. 한 마디로 모두를 친구로 여겼습니다.
그는 소설가가 되었습니다. 작품을 읽었습니다. 성격이나 행동이 크게 변한 것은 없지만 그의 지나온 삶이 소설 속에 투영되어 있습니다.
나의 지나온 삶은 큰 굴곡이 없는 게 평탄합니다. 부지런하지는 못하지만, 규칙을 잘 지키고 약속 또한 어기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딱 한 번 의미 없는 결석을 했습니다. 가을철이라 여겨집니다. 매일 학교에 가는 게 지루하다는 생각에 등교 길을 벗어났습니다. 책보자기를 논의 짚가리 사이에 감추고 학교와 반대 길로 향했습니다. 산으로 올라가 밤을 줍고 감을 따먹었지만 그때뿐 나머지 홀로 있는 시간은 심심하고 지루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결석을 했다고 동네 친구들이 부모님께 이야기를 하지 않을지 하는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이후 크게 아프지 않으면 결석을 하지 않았습니다. 40여 년의 직장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이 불편하다고 결근한 일이 없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며칠뿐입니다. 성묘를 다녀오던 중 고속버스끼리의 충돌로 인한 결과입니다. 건강이 좋아서일까요. 아닙니다. 약한 체질입니다. 오기로 버텼습니다. 건강에 대한 염려를 놓은 것은 퇴직 후입니다. 마음이 안정되고 규칙적인 식생활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자가 휴강’을 해야겠습니다. 왠지 어제부터 무작정 빈둥거리고 싶었습니다. 퇴직 후에도 배움은 놓지 않았습니다. 평생학습관, 도서관, 노인복지관, 문화관 등을 찾아다니며 문학, 음악, 미술, 운동, 컴퓨터 등 필요하다 싶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학생 때 요즘처럼 공부했으면 명문대에 충분히 입학했을 텐데 하고 자문하고, 농담 삼아 아내에게 말하기도 합니다.
정말로 강의를 빼먹었습니다. 이유 없이 결석하겠다고 말할 수는 없고, 거짓말을 하기도 싫습니다.
‘오늘은 둘이 빗속을 걸어야 할까요. 날씨가 좋아 마음이 꼼지락거립니다. 익어가는 단풍이 곱다 곱다고 공원이 손짓합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전화가 올까 봐 미리 강사와 수강생들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공원이나 길을 걷습니다. 화창한 날과는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질척이는 속에서도 풍경과 우산을 때리는 빗소리가 좋습니다.
속된 말로 오랜만에 땡땡이를 쳤습니다. 하지만 습관은 버릴 수가 없나 봅니다. 아침 강의는 빠졌지만, 비가 그치자, 밤 강의에 참석했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소개하는 편지글 쓰기입니다. 이마저도 빠질까, 했지만 이 시간과 다음 시간에 끝맺음해야 하기에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공원에는 흐린 날인데도 불구하고 큰 별들이 내렸습니다. 신호등보다도 큽니다. 가까이 다가가는데도 장미 숲속에 몸을 의지한 채 별은 빨강, 노랑, 파랑, 하양, 연두, 초록으로 화장을 바꿉니다. 조금 지나면 천사가 찾아올지 모릅니다. 슬며시 우산이라도 가려줘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