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243. ‘책모이의 책’을 받고 나서 20231018

by 지금은

집을 나서려고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웬 택배야, 혹시 아들의 물건?”

자그마한 물건을 집어 들었습니다. 떨어뜨리면 안 될 것 같은 외양입니다. 부드럽고 두툼한 포장입니다. 집어 드는 순간 말랑말랑한 감촉이 느껴집니다. 혹시 화장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 전 화장품이 떨어졌다는 아들의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물건을 받아 들었습니다. 겉면을 살펴보더니만 말했습니다.

“당신 것이구먼.”

내가 물건을 집으로 시킨 일은 없습니다. 뜬금없이 누군가 내게 물건을 보내올 게 없다는 생각입니다. 다시 물건을 받아 들고 보낸 사람을 확인했습니다.

‘아, 맞아 책이지!’

두 달 전 평생학습관에 ‘책모이’라는 모임에 참가한 일이 있습니다. 밤새워 글쓰기 행사입니다. 학습관에서 원하는 사람의 신청을 받았습니다. 12명이 저녁이 되자 도서실에 모여 밤을 새웁니다. 각자의 원하는 주제를 가지고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시간입니다.

글을 쓰기 전에 잠시 인사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색함을 풀기 위해 이곳에 오게 동기며 자신을 간략하게 소개했습니다. 글자를 이용한 퀴즈 문제와 문장 만들기도 했습니다.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내 마음이 잠시 위축되는 느낌이 듭니다. 모두가 글쓰기를 좋아해서 찾아왔고 이미 전부터 틈틈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개중에는 작가의 호칭을 얻은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 가지고 온 노트북을 펼쳤습니다. 좀 전의 다소 시끄러움과는 달리 실내는 침묵입니다.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와 손가락의 놀림이 공간을 채웁니다. 나도 넓은 책상의 한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손놀림과는 달리 석고상처럼 흰 벽만 바라보았습니다. 생각이 막혀버렸기 때문입니다. 깊은 호흡을 하며 눈을 감았습니다. 떠오르지 않을 때는 주변의 소소한 것에서 찾으라고 했지, 어느 작가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오늘’이라는 주제로 정했습니다. 잠시 후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쉽게 써질 것과 같은 마음과는 달리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집을 떠날 때는 밤을 새울 생각이 없었습니다. 적어도 한 시 정도까지만 있으면 한 편의 글을 완성할 것 같았습니다. 마음과는 달리 새벽 다섯 시가 지나서야 매듭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포장지를 뜯었습니다. 마치 깨지면 안 될 것만 같은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잘 싸인 상자를 펼치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테이프로 겉을 단단히 둘렀습니다. 손으로 뜯으려다 마음대로 되지 않아 가위를 이용했습니다.

책장을 폈습니다. 목차를 확인합니다. 내 이름이 마지막 부분에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처럼 출석부에 이름이 뒷자리를 차지했듯, 가나다순으로 배열할 때마다 비슷한 자리에 위치했습니다. 내가 쓴 글이기에 내용을 이미 알고 있지만 우선 눈이 갑니다. 천천히 음미하며 처음 읽을 때처럼 시간을 들여가며 읽었습니다. 내 글이 한 꼭지 실린 것만으로도 새 책을 받아 들면 가슴이 벅찬 감동을 느낍니다.

읽고 나면 어느새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나타납니다. 조금만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한번 내뱉은 말은 도로 주워 담을 수 없는 것과 같이 한 번 인쇄된 내용은 고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원한다면 폐기하고 새 책을 만들어 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외출복을 벗은 후 책의 첫 장부터 살폈습니다. 읽는 내내 글의 제목과 내용에 따라 새로운 감정이 생깁니다. 각자의 개성 있는 특유의 글입니다. 모든 주제가 제각각 특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문가라도 되는 양, 의료, 과학, 예술, 일상의 이야기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전문적이고 세세한 내용을 짧은 시간 안에 찾아내고 생각하고 조리 있게 정리할 수 있었는지 놀랍습니다. 평범한 이야기는 그 나름대로 세밀한 관찰력을 발휘하여 생각지 못한 내용을 재미있게 표현했습니다.

뒷장을 덮고 나니 미련이 남습니다. 10여 년 책을 읽고 글 쓰는데 몰두했지만, 이 글을 남긴 사람들과 견주어 나은 것이라고는 내세울 게 없습니다. 한심하다고 생각하면서 곰곰이 따져보았습니다. 그들과 나와 다른 점은 무엇이었을까.

나와는 달리 이들은 ‘책모이’에 참가하기 위해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한 것 같습니다. 다시 살펴보니 전문용어나 참고도서 또는 각주가 표기되어 있습니다. 밤새워 썼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양도 많습니다. 나는 즉흥적인 글을 쓴다기에 마음의 준비가 덜 된 상태로 참가했습니다. 모든 것들이 한정된 시간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짐작했습니다. 생각까지도 말입니다. 쓰는 것이야 홍보문구에 의하면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서 써야 하는 게 맞지만, 생각까지도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이를 기회로 큰 경험을 얻었습니다. 삶 속에는 늘 혼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나를 둘러싼 많은 사람이 함께합니다. 나의 장점을 살려야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남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라고 해서 별거 있겠어, 다 같은 사람인데 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공통점도 있지만 각각 별거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다음번에도 비슷한 일이 있다면 보다 철저한 사전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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