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242. 마음이란 게 20231017

by 지금은

선생님이 글쓰기 주제를 내주셨습니다. ‘자신의 흑 역사’입니다. 하지만 주제에 맞는 글을 쉽사리 쓸 수 없습니다. 예상치 않았고 갑작스러운 일이라 생각을 떠올리기가 어렵습니다. 다른 때는 이 정도는 아니고 잠시 생각을 하면 실마리가 풀리곤 했는데 앞뒤가 콱 막혀버렸습니다.

‘이를 어쩌지.’

생각할수록 마음만 조급해집니다.

‘원인이 뭐야.’

나의 치부를 드러내기가 싫어서, 아니면 글을 쓰기 싫어서, 그것도 아닌데 그냥 시간만 흘러갑니다. 어느새 주어진 시간의 반이 흘렀습니다. 시계를 보니 8시 정각을 가리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다른 나라와 국가대표의 축구가 시작되지.’

축구광은 아니어도 어느 운동경기보다 관심이 있습니다.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혼자 종종 공을 가지고 놉니다. 이제는 누구도 나와 함께 공을 차자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린이도 아니고 젊은이도 아니니 그들에게서 점차 멀어지고 있습니다. 단지 유아기의 아이들만 놀이터에서 놀다가 내 공에 관심을 보입니다. 하지만 마음만은 늘 젊은이 못지않습니다. 운동장의 선수들이 내 말을 들을 수는 없지만 그들이 실수를 하면 혼잣말로 훈수를 두기도 합니다.

주제와 관련이 되지 않는 글을 나열하면서도 내 마음은 축구 경기에 가 있습니다. 원인이 여기에 있었군요. 글도 쓰고 싶고 운동경기도 보고 싶습니다. 글을 쓰려다 텔레비전을 힐끗 쳐다봅니다. 다시 손가락을 움직입니다. 오늘 이 시간은 이렇게 흘려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글쓰기를 그만둘까, 텔레비전을 꺼버릴까. 모두가 소중한 시간입니다.

중학교 때입니다. 오늘과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역사 시간입니다. 공부를 하는 동안 어제까지도 다 읽지 못한 무협 소설이 나를 그대로 두지 않았습니다. 슬그머니 책을 펼친 채 책상 속에 넣었습니다. 시험이 며칠 남지 않았으니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눈치를 보며 책으로 칠판으로 눈이 오갑니다. 선생님이 말씀을 끝내고 중요사항을 칠판에 적으셨습니다. 칠판의 내용은 나중에 친구의 공책을 빌려 적으면 됩니다. 이때다 싶어 책을 무릎에 놓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딩동’하는 순간 현관문이 열리며 아들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좀 늦은 퇴근입니다.

“어디가 이기고 있어요?”

“우리나라, 두 골.”

“누가 골을 넣었어요.”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머뭇거리자, 주방에 있던 아내가 대신 선수의 이름을 말해주었습니다. 확실히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는 아직도 글을 쓰겠다고 노트북을 텔레비전 앞의 탁자에 놓고 손가락으로 자판을 누르고 있습니다. 글의 내용이 보통 때 삼분의 일이나 될까 말까입니다. 나중의 생각이지만 남이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무슨 말을 했을까 반문해 보았습니다.

‘아직도 버릇을 못 고친 거야.’

역사 선생님으로부터 심한 꾸지람을 들은 기억이 살아납니다.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이었는지 며칠씩이나 교무실에 불려 가 시달림을 받았습니다. 그보다도 내 시험 성적이…….

지금 강의하는 강사 선생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이 나이에도 축구냐 강의냐를 두고 결단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어릴 적 버릇 여든 간다고 하더니만.’

삶이란 선택의 연속입니다. 길은 늘 하나만 있는 게 아닙니다. 걷다 보면 갈래 길이 나옵니다.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 하루에도 수십 번, 한 시간에도 여러 차례 마음을 정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늘 오른 결정을 내렸을까. 여러 가지 상황을 두고 망설였던 때가 많습니다. 우유부단함이 삶의 일부를 힘들게 했던 일이 한둘이 아닙니다.

어느 경우에 두세 가지를 동시에 해낼 수 있는 것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할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살다 보면 그릇됨을 알면서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일이 있습니다.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의 차이는 크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남에 비해 나약한 존재일까요? 아직도 어쩌지 못하는 습관이 가끔 발목을 잡습니다.

‘죽도 밥도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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