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 입김 20231023
‘호 호오’
젊은 할머니의 입김이 이마에 닿았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할머니의 입이 아이의 볼에 닿았습니다. 볼과 입이 눌렸습니다. 할머니의 미소가 방긋하자 울음을 터뜨릴 것 같던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집에서 나왔습니다. 놀이터가 보이자 뒤뚱뒤뚱 달립니다. 할머니의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혹시나 넘어질까 염려됩니다. 아이가 미끄럼틀에 이르렀습니다. 마음이 급했나 봅니다. 계단을 오르지 않고 미끄럼틀을 거슬러 오르려고 발을 내딛습니다. 두 손으로 가장자리를 잡았지만, 발과 손이 균형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발이 미끄러지고 이마가 살짝 바닥에 부딪혔습니다.
할머니가 아기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얼굴이 일그러집니다.
“댔기 놈”
순간 할머니의 손이 미끄럼틀의 바닥을 '탁' 쳤습니다. 곧 아이를 품 안으로 끌어들여 꼭 안았습니다.
나는 놀이터 옆에서 벽에 공을 차다가 우연히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공을 멈췄습니다. 혹시나 그들이 내 눈과 마주칠까 봐 나뭇가지에 슬며시 얼굴을 가리고 바라봅니다. 아이 할머니가 옆으로 돌아서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눈이 마주쳤다면 어색할 게 분명합니다.
이 전에도 가끔 비슷한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가끔 바닥에 넘어지기도 하고 무엇엔가 부딪치기도 합니다.
‘호 호오’
오랜 옛날부터 마음을 다스리는 만병통치약인가 봅니다.
어려서도 이런 모습을 여러 차례 보았습니다. 상처가 나든 나지 않았던 ‘호오’입니다. 넘어지거나 부딪쳤을 때뿐만 아닙니다.
뜨거운 것과 만났을 때도 있습니다.
아이가 먹을 밥이나 국은 어머니나 할머니의 손이나 얼굴을 거쳐야 합니다. 얼마나 뜨거운지, 얼마나 찬가 가늠합니다. 뜨겁다 싶으면 칭얼대는 순간에도 여지없이 입김이 다가갑니다. 한술 떴습니다. 뜨거운 김이 오릅니다.
‘후 호오’
할머니는 겨울철이 되면 가끔 고구마를 화로에 구워주셨습니다. ‘군고구마’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학창 시절 서울에서 군고구마를 사 먹던 느낌과는 전혀 다릅니다. 맛이야 같다고 해도 할머니의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갓 꺼낸 뜨거운 고구마를 손에 쥐고 번갈아 가며 이리저리 재빠르게 움직입니다. 화로 가장자리에 ‘탁탁’ 몇 차례 두드렸습니다. 재를 떨어냅니다.
‘호’ 껍질을 벗기면서도 고구마를 입에 넣을 것처럼 가까이하고 입김을 불어냅니다. 찬바람이 뜨거운 열기를 쫓아버립니다. 할머니가 양손으로 고구마에 힘을 주자 누르스름한 껍질 사이를 뚫고 샛노란 고구마의 속살이 드러났습니다. 다시 입김을 불어넣었습니다.
“‘호’ 뜨거워.”
할머니의 손에서 고구마를 받아서 들었습니다. 아직은 뜨거운 열기가 남아있습니다. 놓칠 뻔했습니다. 두 손을 반쯤 오므리고 아래위로 흔들었습니다. 할머니처럼 바람을 불어넣습니다. 마음이 급합니다. 고구마를 입으로 가져가 살며시 한 입 베어 물었습니다. 아직도 뜨겁습니다. 입을 벌린 채 좌우상하로 움직입니다. ‘후’ 입김을 쏟아냅니다. 뜨거운 고구마가 좌우로 요동칩니다.
뜨거운 고구마가 입안에서 식을 때까지 바람이 안팎으로 드나듭니다.
“조심해, 입천장 데겠다.”
먹는 동안 서서히 열기가 식어갑니다. 할머니는 고구마를 먹는 모습이 마음에 걸리시나 봅니다. ‘호’도 모자라 손부채질을 해주십니다.
다음 날 아침입니다. 국을 한 술 입에 넣는 순간 다른 때와는 달리 입 안이 얼얼하고 따갑습니다. 눈을 찡그렸습니다. 식사하시던 할머니가 찬 동치미 국물을 한 숟갈 떠서 내 입을 향해 내미셨습니다. 찬기가 입안에 돌자 쓰라림이 수그러드는 듯합니다.
“국이 왜 이리 뜨거운 거야.”
“뜨거운 게 아니라 좀 매운 거지.”
군고구마의 뜨거움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이 아침에 국과 밥이 뜨겁게만 느껴집니다. 가끔 뜨거운 것을 먹을 때면 할머니 생각이 날 때가 있습니다.
“아이 시원하다.”
할머니의 말씀에 국물을 꿀꺽 삼켰다가 혼난 일이 있습니다. 입안은 물론 목구멍까지 얼얼했습니다.
‘호, 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