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 작은 변화 20231026
빨간 옷을 입었습니다. 이 가을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내 옷을 따라 밖의 풍경이 울긋불긋합니다.
한 달 전 붉은 셔츠를 샀습니다. 전철에서 샛노란 등산복을 입은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이 역에서 내리기까지 한동안 눈이 갔습니다. 노란 꽃이 피어있다고나 해야 할까요. 대부분 사람이 칙칙한 옷 사이에서 활짝 웃고 있는 장미를 보는 듯합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샛노란 점퍼 하나 사면 어떨까?”
“제 옷을 말이에요?”
“아니, 내 옷.”
“생뚱맞게, 안 하던 짓을 하려고.”
그렇습니다. 그동안 나는 화려한 원색의 옷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옷이 검정, 흰색, 재색 등 무채색이거나 색이 있어도 파스텔 느낌이 납니다. 어려서는 색깔을 이나 옷매무새를 따질 정도의 삶은 아니었습니다. 직업을 가졌을 때는 분위기상 잘 눈에 띄지 않는 옷을 입었습니다.
옷장을 열었습니다. 보통 때와 달라진 점이 없습니다. 일손을 놓은 지도 어느덧 10여 년을 넘기고 있지만 크게 변한 게 없습니다. 새로 장만한 몇 가지의 옷도 무채색입니다.
하루는 친구가 말했습니다.
“나 안경테 바꿨다.”
빨간 테입니다. 함께 있던 동료가 말했습니다.
“어린애도 아니고 장난감도 아닌데, 남사스럽게 무슨 빨간 안경이야.”
몇 사람이 놀림 반 진담 반으로 말했지만 내가 보는 눈은 달랐습니다. 그동안 원색을 싫어했는데 이번만큼은 멋져 보입니다. 응원이라도 청하는 표정입니다. 좋아 보인다고 했더니만 친구는 슬그머니 안경을 벗어 건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나에게도 어울리겠다 싶어 받아 써보았습니다. 내 얼굴에 어울리나 봅니다. 친구들이 주지 말라고 부추깁니다. 안경을 건네주며 물었습니다.
“어디서 샀어?”
“비밀.”
어느 안경점에나 있겠다 싶지만 친구는 장난 삼아 말을 건넵니다. 나도 안경테를 빨간 것으로 바꿔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다 안경원에 들렸습니다. 친구들의 말과는 달리 이것저것 써보았지만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입니다. 안경사의 듣기 좋은 말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가로수의 단풍이 곱게 물들어갑니다. 단풍을 보니 갑자기 옷 생각이 납니다. 이 짙어지는 가을에 원색의 옷을 한번 입어보면 어떨까? 전철 안에서 보았던 노란 옷, 빨간 옷, 알록달록한 옷, 단풍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이 저녁놀이 주변을 물들입니다. 단풍이 붉게 타오릅니다.
호수 건너편 하늘이 붉게 물들었습니다. 내 눈도 붉어지는 느낌입니다.
“옷은 사놓고 안 입어요?”
“입어야지.”
말은 그렇게 했으면서 정작 입으려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몇 차례 입고 거울을 보았지만, 그때마다 너무 튄다는 생각에 정작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주책이지 어린애도 아니면서 무슨 새빨간 것에 홀렸단 말인가. 두고두고 아내의 말을 듣게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슬며시 물었습니다.
“색이 고운데 입을 생각이 없어요.”
“남성복을 내가 왜 입어요.”
아직도 저녁 노을빛은 창가에 머물고 있습니다. 다시 옷을 입었습니다. 노을에 물든 옷자락은 더 고와 보입니다. 첫발이 중요합니다. 무작정 밖으로 나왔습니다. 콧노래를 흥얼거립니다.
“얼굴이 사네, 뭐 좋은 일이라도.”
이웃집 사람이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말했습니다. 오늘은 왠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