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 엄마의 발견 20231027.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이 있습니다. 세상이 발전할수록 직업의 종류는 많아지고 있습니다. 수렵 채취에서 농업이 생겨나고 다시 직업은 새끼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아지고 세상이 발전하면서부터 하는 일은 다양해졌습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 종류만 해도 수만이나 됩니다.
하지만 세상이 변해도 하나 달라지지 않은 게 있습니다. 엄마라는 직업입니다. 꼭 직업이라고 이름을 붙여야 할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살아보니 신체적, 정신적인 면에서 어느 누구보다 힘들고 고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남자라서 엄마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삶을 가까이에서 늘 눈여겨보게 됩니다. 가까이 있는 두 여자, 물론 다른 사람도 있지만 늘 곁에 붙어있었던 어머니 그리고 아내.
어제 노인복지관에서 자서전 그림책을 만드는 공부를 했습니다. 벌써 수강생과의 만남이 일곱 번째입니다. 처음에는 낯설어 인사나 나누고 데면데면 지냈습니다. 모인 사람들 가운데 청일점이고 보니 편안한 마음이 아닙니다. 혹시 실수나 하지 않을까 말조심, 몸조심합니다.
삶의 일대기를 떠올리고 그림으로 표현하는 중, 오늘은 결혼 및 육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옆에 있던 노인이 말했습니다. 할머니입니다.
“어휴, 힘들어요.”
이제는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자식의 아이 돌보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답니다. 딸이 직장을 나가니 혼자서 육아를 담당했다고 합니다. 이제는 아이가 좀 커서 유치원에 가니 이 틈을 이용해서 탈출했다며, 수업이 끝나면 곧 손주를 데리러 가야 한답니다. 이 여인의 말문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그림 그리기를 멈춘 채 한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젊어서는 자식 낳아 키우며 농사일하느라 힘든 세월을 보냈고, 자식 분가시켜 한시름 놓겠다 싶었는데 다시 혹을 붙이게 되었답니다. 아직 하나 남은 아들 걱정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무슨 일인지 결혼을 할 생각을 안 해요. 아이 낳는 것도 그렇고.”
우리 때만 해도 이일 저일 하며 아이를 서넛은 낳아 기르고 시부모까지 모시는 것도 당연시했는데, 지금은 완전히 세상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광주가 집이라는 여인이 말했습니다. 자식 출가시키고 부부끼리만 살고 있는데 딸이 자기를 불러올렸습니다. 육아휴직을 쓰고 직장에 나가야 하니 와서 아이를 봐달라고 했습니다. 자식이 뭔지, 거절할 수 없어 왔는데 감옥이 따로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바깥바람이 쏘이고 싶어서 남편에게 잠시 아이를 맡기고 나왔습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만큼은 자유인이 되고 싶답니다.
나에게 자식이 몇이냐고 묻기에 하나라고 했더니만 엄지 척합니다. 사정도 모르고 하는 표현입니다. 말을 안 하니 남은 다 마음 편안하게 지내는 줄 압니다. 혼기를 넘긴 자식은 결혼하려고 마음이나 먹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동안 침을 놓았지만, 이제는 눈치나 보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육아며 살림을 그렇게도 어려워하는지 모르겠다는 한 할머니의 말에 몇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말을 쏟아냈습니다. 내가 입을 닫고 잠자코 듣고만 있으니까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고 묻습니다.
“부모의 책임이 커요, 우리들 말입니다.”
가난한 나라, 가난한 집안에 사는지 보니 억척스레 산 것은 좋은데 자식을 금쪽이로 만든 게 죄인입니다. 힘들게 살면서도 자식은 편안한 삶을 가져야 한다는 마음에 기본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공부에만 맘을 쏟도록 한 게 문제입니다. 지식은 차고 넘치지만, 삶의 공부는 소홀히 했습니다.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아이들은 힘든 일은 물론 협동심이나 개척 정신이 부족합니다.
쉽게 말하면 생활의 기본이 되는 의식주 생활의 기본이 부족합니다. 집안에서 소소하게 해야 할 일을 모르고 지냈습니다. 청소, 식생활, 육아 등의 체험이 없었습니다. 이 많은 것을 터득하기에는 모든 것이 생소합니다. 막상 앞에 부딪히고 보니 힘에 부칩니다. 새로운 가정을 꾸미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앞섭니다. 남의 이야기도 한몫합니다.
‘결혼의 감옥이야.’
많은 젊은이가 결혼을 기피하고, 결혼 후에도 자식을 갖기를 망설입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자유인이 되고 싶습니다. 육아 전쟁이라는 말도 젊은이의 마음을 불안하게 합니다.
노인 세대는 예전에 비해 경제적으로는 여유로운 삶인지 몰라도 젊은이들은 이와 반대로 경제적 빈곤을 느낍니다. 젊은이들이 부모의 그늘 마음고생을 덜 하고 살았기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그만큼 어려움이나 고생을 모르고 자랐다는 증거입니다. 작은 일에도 힘들어하는 젊은이가 많습니다.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낀 세대입니다. 젊어서는 부모님 모시느라 고생했고 지금은 자식 뒷배 봐주느라 고생입니다. 효도받는 것은 이미 생각 밖이랍니다. 나 또한 그렇습니다. 자식에게서 효도를 바라지 않습니다. 결혼이라도 해서 제 살림 꾸려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앞의 사람들은 복 받았다 생각됩니다. 힘들다 바쁘다 해도 손자 손녀 재롱을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나의 경우는 자식이 아들딸을 낳는다 해도 보살펴 줄 힘이 없겠다 싶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몸이 여기저기 쑤시고 저립니다.
하지만 아내는 생각이 다른 듯 보입니다. 남 얘기를 빗대어 잘할 것처럼 말합니다. 아침마다 출근 인사하는 아들 뒤에 서서 머리를 빗질해 주며 아이에게 하듯 등을 도닥입니다.
“차 조심하고 잘 다녀와.”
나는 가끔 내쫓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