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운동회
전날부터 날이 흐리더니 점심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이 근심스러운 듯 말씀하셨습니다.
“내일 아침에도 비가 오면 책보자기를 가지고 온다.”
올해는 운동회를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연습하던 날부터입니다. 잘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1학년 때부터 매년 하는 운동회지만 올해는 더욱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추워질 때까지 매일매일 비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왠지 알겠지요?’
달리기 때문입니다. 1학년 때도 2학년 때도 달리기 하면 꼴찌를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호야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꾸미기 체조입니다. 공부를 끝내고 운동장으로 나왔습니다. 형들이 줄을 지어 꾸미기 체조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야, 우리 구경하고 가자.”
“그럴까?”
동석이의 말에 호야는 선생님 옆에 가서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형들이 힘을 합쳐서 모양을 꾸미는데 멋있습니다.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부채를 만들고 피라미드도 만들었습니다. 움직일 때마다 모양이 달라집니다.
“멋있지?”
“그래, 아주 멋있다.”
호야가 동석이와 소곤거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너희 조 이리 나와.”
선생님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피라미드를 만들던 맨 뒤의 형들이 재빨리 뛰어나와 선생님 앞에 섰습니다.
“이 녀석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 마음은 어디에다 두고 낄낄거리다 무너지는 거야. 엎드려뻗쳐.”
선생님의 지휘봉이 형들의 엉덩이를 향해 움직였습니다. 형들은 일어나 엉덩이를 비비며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차려, 열중쉬어, 차려.”
손가락 신호가 나고 호각 소리가 들렸습니다. 형들은 군인 아저씨들처럼 빠른 동작으로 움직입니다. 한동안 재미있게 구경하는 중입니다. 형들이 원을 그리고 빙 둘러섰습니다. 제일 큰형들이 어깨동무하고 바닥에 앉았습니다. 다음 형들이 위로 올라가 어깨동무했습니다. 다음 형들이 올라가 어깨동무를 하며 오 층이나 쌓았습니다. 맨 아래층이 엉덩이를 들며 일어나고 이층, 삼 층, 차례로 일어납니다. 그런데 삼 층 형들이 일어나지를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삼 층 형들에게 혼을 내고 다시 했습니다. 이번에는 사 층 형들이 일어나지를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선생님이 또 벌을 주었습니다.
“힘이 빠져서 못 하겠어요, 좀 쉬었다 하면 좋겠어요.”
“그럼, 지금부터 십 분만 쉬었다 한다.”
하지만 다시 했을 때도 무너졌습니다.
“위층이 형들이 무거워서 그런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형들을 가벼운 사람으로 바꿨습니다. 오 층에 올라갈 사람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옆에 있는 동석이와 호야를 보시고는 물으셨습니다.
“몇 학년이지?”
“이 학년입니다.”
“됐어, 너 올라가 봐.”
호야가 걸리고 말았습니다.
“일 층 일어서, 이층, 삼 층, 사 층.”
형들이 일어날수록 마음이 떨립니다. 자꾸만 운동장이 아래로 가라앉습니다. 다리가 떨리고 몸이 흔들립니다.
“호야 일어서.”
바들바들 몸을 떨며 겨우 일어섰습니다.
“손 옆으로, 위로, 다시 옆으로, 내려, 앉아.”
탑 쌓기가 끝나자, 선생님은 호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일부터 매일 여기로 오는 거야, 몸무게가 가볍고 작아서 대장 시켜 주겠어.”
‘좀 무섭기는 해도 대장을 시켜 준다니.’
다음날부터 집에 도착하면 매일 어두워졌습니다. 연습하다 보니 해가 산을 넘어갈 때쯤 끝이 납니다. 5일째 되던 날 호야는 중심을 잃고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일어서려는데 아래층이 흔들리고 어깨를 밟았던 발이 미끄러진 것입니다. 다행히 선생님이 떨어지는 호야를 받아서 다치지는 않았지만, 옆구리가 결립니다. 겁도 납니다. 올라갈 마음이 달아나 버렸습니다.
‘대장을 안 해도 좋아.’
다음날 공부가 끝나자, 책보자기를 둘러메고 눈치를 보았습니다. 뒤쪽 나무 울타리 사이를 빠져서 집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붙들리면 꼼짝없이 올라가야 합니다. 다음날도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반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오늘은 꼭 와야 한다고 하셨지만, 또 도망을 치고 말았습니다.
“이 녀석이 오늘도 몰래 사라질래?”
체조 담당 선생님이 교실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호야의 소매를 끌고 운동장으로 갔습니다.
“이 녀석들 잘해야 한다. 먼저처럼 동생을 떨어뜨리면 단체 기합이다.”
이렇게 해서 사일이나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 운동회 날 한 번만 더 올라가면 됩니다. 하지만 달리기 생각만 하면 운동회가 없으면 좋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언제 비가 왔느냐는 듯 날이 활짝 갰습니다. 집안 식구들이 구경을 안 왔으면 좋겠습니다. 꼴찌를 하는 달리기를 보여주기가 싫습니다. 아침을 먹자마자 준비물을 가지고 몰래 사립문을 나왔습니다. 곧장 학교로 향했습니다. 혹시라도 구경을 안 갈지도 모릅니다.
동구 밖 개울 징검다리를 막 건너려 할 때입니다. 할머니가 밭둑에서 언제 보셨는지 큰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밭일 빨리 마치고 점심 전에 학교에 갈게, 달리기 잘해.”
“예.”
학교로 달렸습니다. 집안 식구들이 점심때 학교에 도착하면 좋겠습니다. 뒤로 지나가는 코스모스 꽃잎들이 서늘한 바람에 하늘거립니다. 벌써 아이들이 많이 모여 떠들고 있습니다. 운동장 선을 따라 달리기 연습을 하기도 합니다. 만국기가 펄럭입니다. 운동장이 흰 띠를 겹겹이 두르고 있었습니다. 애국가가 끝나고 총소리가 울리자, 운동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빨리 우리 학년의 달리기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집안 식구들이 오기 전에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학년의 달리기는 1학년 동생들의 바구니 터뜨리기 바로 전입니다.
오전 운동회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어서 우물가로 가려고 하는데 누가 부르는 소리가 났습니다. 뒤돌아보니 할머니를 비롯한 식구들이 모두 모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달리기 잘하던데.”
“작년에는 꼴찌를 하더니 올해는 오등을 했어.”
호야는 할머니와 삼촌의 말을 듣고 말없이 김밥만 먹었습니다.
‘늦게 왔으면 했는데 어느새 일찍 와서 내가 달리기 하는 것을 보았지?’
“점심 먹었으니, 집에 가자, 오후에는 2학년 경기도 없는 것 같던데.”
“얘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호야가 하늘 꼭대기로 올라가는데 잘 봐야지.”
할머니는 경기의 이름은 모르시지만 전에 말한 것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하늘 꼭대기에 올라간다고? 사다리가 있어야지. 비행기를 타고 올라갈까, 새를 타고 올라갈까.”
운동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는 이미 어두워졌습니다. 식구들은 이미 돌아와 식사 준비를 마쳤습니다. 할머니와 호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얘들아, 집에 일찍 오지 말고 운동회 구경이나 하는 건데 그랬구나. 아 글쎄 호야가 어깨동무 대장을 했단다. 하늘 꼭대기에 올라가 태극기를 높이 들고 만세를 불렀잖니.”
“어깨동무 대장이 뭔데요?”
“아니, 그것도 몰라? 학교 다닌 애들이.”
삼촌과 고모는 이해가 가지 않는지 호야의 옆구리를 꾹 찔렀습니다.
“응, 꾸미기 체조. 탑 쌓기.”
“그럼, 네가 맨 꼭대기에 올라갔단 말이지?”
“응.”
“그런 줄 알았으면 구경하고 오는 건데, 진작 말하지, 그랬어.”
호야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계면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호야가 맨 꼭대기에 올라갔다는 것을 알고 만나는 사람마다 말을 걸었습니다. 특히 태극기를 들고 흔들 때는 모두 운동장이 떠나가도록 손뼉을 쳐주었습니다. 삼촌이나 고모가 몰라서 그렇지, 사실은 앉을 때 몸이 기우뚱했습니다. 아래층이 무너질 것 같아서 밑으로 무작정 뛰어내렸습니다. 그 순간 선생님들은 무척 긴장하셨나 봅니다. 일순간 선생님들의 표정이 변했습니다. 주위에 둘러서 있던 선생님이 호야를 받아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본부석을 향해 인사를 하자 어른들과 학생들은 모두 손뼉을 쳐주었습니다. 못 보길 다행이었지, 봤더라면 가슴이 덜컥했을 것입니다.
호야의 손은 마음보다 먼저 하늘을 찍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