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253. 물 한 잔 마시고 20231102

by 지금은

새벽에 주방으로 나왔습니다. 탁자에 놓인 잔을 들었습니다.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따릅니다. 목마름이 해결되었습니다. 텁텁하던 입안이 상쾌해지고 코가 뻥 뚫리는 느낌입니다. 아침 일찍 한 잔의 물은 내장은 물론 머리를 시원하게 해 줍니다. 이런 느낌 때문에 잠에서 깨면 우선 찬물부터 찾게 됩니다.

잔으로 불리고, 컵으로도 불리는 그릇은 내가 담고 싶어 하는 액체를 받아들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고체도 받아들입니다. 요즘은 내가 좋아하는 뻥튀기가 가끔 물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늘 분주하고 쉴 틈이 없습니다. 특히 음식점의 컵들이 그렇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을 거칩니다. 나는 음식점에 들리면 우선 컵을 집어 듭니다.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들에 비해 물을 많이 마시기 때문입니다. 무심코 들기도 하지만 가끔은 안을 세심하게 살펴보기도 합니다.

오늘 새벽에도 다른 날처럼 주방으로 나와 물을 따랐습니다. 물을 마시고 식탁에 놓으려다 무심코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마시다 만 커피 물이 바닥에 얼룩진 채 누르스름한 색을 띱니다. 벽에도 보입니다. 커피를 말끔히 마시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저녁 컵을 헹구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사용하고 나면 닦거나 슬쩍 헹구기라도 하는 습성이 있는데 무슨 일인지 그냥 잊었나 봅니다.

물을 담아 돌려가며 손가락으로 컵 안을 닦았습니다. 물을 버리고 들여다보니 아직도 얼룩이 말끔히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물을 받아 닦았지만, 바닥의 가장자리는 손가락이 닿지 않았는지 갈색의 동그란 원이 남았습니다. 수세미를 들었습니다. 그제야 가장자리와 벽의 얼룩이 사라졌습니다.

‘새벽부터 깔끔 떠는 거야.’

예전에는 컵 하나를 온 가족이 사용했구먼, 때에 따라서는 입술이 떨어지거나 금이 간 것도 사용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컵뿐입니까. 음식을 담는 그릇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기그릇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무엇이든 귀하고 소중했던 시절, 음식을 담는 그릇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지금이야 그릇이 깨질 것을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되지만 예전의 그릇은 깨지는 일이 흔했습니다. 재료의 성질 때문입니다. 사기그릇이나 질그릇은 바닥에 떨어뜨리거나 부딪칠 때 잘 깨졌습니다.

‘쨍그랑’

부엌에서 소리가 들리면 보지 않아도 그릇이 깨졌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소리를 듣고 가보면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졌습니다.

“가까이 오면 안 돼.”

실수했거나 부끄러워하는 말이 아닙니다. 혹시라도 날카로운 파편을 밟아서 다칠까 염려돼서 하는 소리입니다. 깨진 조각은 정말 날카롭습니다. 도와주겠다고 고사리손으로 집었다가 손가락을 찔린 일이 있습니다.

“뭐라고 했어, 오지 말라고 했잖아.”

어머니는 부족한 그릇이 깨져서 속이 상한데, 아이의 손에서 피가 나나 더더욱 속이 상하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나마 대행인 것은 할머니가 출타하셔서 다행입니다.

“살림살이를 어떻게 하는 거야.”

지청구를 들을 뻔했습니다.

아내의 컵도 속이 얼룩져 있습니다. 물을 담아 닦아보니 수세미 없이도 잘 닦입니다. 컵 사용이 늦었나 봅니다. 아니 내용물이 조금 남아 있었습니다. 사용 후에는 물을 조금 담아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긴 한데 나는 습관상 그렇지 못합니다. 한 방울이라도 남기지 않고 마셔야 합니다.


식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받은 음식은 모두 비워야 직성이 풀립니다. 구내식당을 이용할 경우 식판에 각자의 음식을 담거나 받습니다. 나는 배가 부른 듯해도 밥, 국, 반찬을 남김없이 먹습니다. 음식이 귀하던 지난날의 습성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음식을 남겨 식판을 반납하는 것을 보면 괜히 미워 보입니다.

‘음식 귀한 줄 모르고.’

사용하지 않은 그릇은 깨끗이 비워야 마음이 풀립니다.

갑자기 계영배를 떠올립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계영배 하나 사려다 그만두었습니다. 값이 생각 외로 비쌉니다. 분수를 알아야 하기 때문일까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오늘은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