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258. 편지 쓰기 20231107

by 지금은

지금은 평생학습관 글쓰기 시간입니다. 두 달 전에 시작한 수업이 끝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강사가 정해주는 주제에 따라 시간마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합니다. 갑자기 주어진 주제임에도 수강생들은 내용을 잘 구성했습니다. 잠시 낭독의 시간을 가졌는데 그때마다 감동하였습니다. 발표 내용을 들으면서도 짧은 시간에 어떻게 한 편의 글을 써내냐고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초심자들은 아니구먼.’

그동안 각자 꾸준한 노력을 했음이 틀림없습니다.

이번 시간에도 변함없이 하나의 글감을 주었습니다. 주제는 편지 쓰기입니다. 편지를 써본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동안 부치지 못한 편지를 몇 차례 써보았지만 보통 글쓰기에 비해 편수가 부족합니다. 비율을 생각해 볼 때 수필, 동화, 시 등 백여 편의 글을 썼다면 한두 편 정도의 편지를 썼다는 생각이 듭니다.

막상 편지를 쓰려고 하니 누구에게 써야 좋을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며칠 전 어머니께, 친구에게 부치지 못하는 편지를 썼기에 당장 떠오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궁리하다가 편지를 쓴 일에 대해 기억을 더듬기로 했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편지를 쓴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입니다. 멀리 떨어져 지내는 어머니께 안부를 전했습니다. 내 의지에 의한 것은 아닙니다. 고모가 하루는 나에게 편지를 쓸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어머니께 쓰려고 하는 데 너도 써서 보내자고 했습니다. 보고 싶고 궁금한 마음이지만 선뜻 연필을 들지 못했습니다. 책을 더듬거리며 읽고 글씨도 엉망입니다. 맞춤법 띄어쓰기에 자신이 없습니다. 머뭇거리는 나에게 고모는 제안했습니다.

“내가 말할 테니 받아써 봐.”

쓰기는 썼지만 내가 썼다고 말하기보다는 고모의 편지나 마찬가지입니다. 생각도 고모의 생각이나 다름없습니다. 결과는 내용도 글씨도 내 것이 아닙니다.

다음으로 쓴 것은 위문편지입니다. 이마저도 고모의 힘을 빌렸습니다. 내 힘으로 쓴 것은 중학년이 되면서부터입니다. 초등학교 내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일선에서 근무하는 국군 장병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얼굴도 모르고 어디에서 근무하는지, 어느 곳에 살았는지 모든 게 의문입니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해마다 형식적인 글을 쓰고 위문금을 모아 함께 보냈습니다. 어린 마음에 답장을 기다렸지만, 받아보는 아이들은 몇 명 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예쁜 누나가 있다고 해야 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답장을 받은 애들은 정말 누나나 언니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나도 누나가 있다고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정직함 때문이었을까요, 4학년 때 한 번 답장을 받았습니다. 편지의 내용 중 아저씨의 어린 시절의 환경이 비슷하다는 이유입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다고 합니다. 내년 봄에 제대하게 되는데 집으로 가는 길에 찾아오겠다고 했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약속을 지켰습니다.

사월 초입니다. 교실에서 청소하고 있는데 청년 한 사람이 복도에서 내 이름을 불렀습니다. 대학에 다니다 군대에 갔었다면 곧 복학할 거라고 했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렵지만 스스로 노력을 해서 졸업을 할 거라며 나에게도 용기로 열심히 공부하라고 했습니다. 앞으로의 일이 잘되면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며 작은 물건을 내밀었습니다. 포장지 안에는 공책 두 권, 연필 두 자루가 담겨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 삼촌이 물었습니다.

“진천에 산다는 그 아저씨 만났니?”

그분은 미리 우리 집에 들렀다가 학교에 찾아온 것입니다. 마음씨가 착한 분이라며 나의 앞길에 대해 많은 걱정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후로는 연락이 두절되고 말았습니다. 그분의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중학교 때의 편지라고 하면 펜팔입니다. 그 시기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했습니다. 일 년 이상 먼 곳에 있는 여학생과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았지만, 공부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로 끝을 내고 말았습니다.

이후로 긴 기간 동안 잊고 있었다가 다시 편지를 많이 쓰게 되었습니다. 교직에 있는 동안 방학이면 반 아이들에게 숙제하기라도 하는 양, 해마다 여름과 겨울 방학 동안 엽서를 보냈습니다. 40여 년이니 양도 꽤 많아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은 어머니입니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뜨시자 슬픔은 한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마음을 달래고 싶어 생각이 날 때마다 편지를 썼습니다. 부치지 못하고 간직한 편지는 20통이 됩니다.

이제는 손 편지를 쓰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통신의 발달은 손 편지쓰기를 낭만이나 추억거리로 생각하게 합니다. 모르는 사이에 말과 문자가 이 자리를 점령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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