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 낙엽을 보며 20231106
잠자리에 들 무렵 빗방울이 세차게 유리벽을 때렸습니다. 11 월 치고는 제법 강한 비입니다. 거센 바람을 동반했습니다. 밖을 내다보니 보안등 주위로 바람머리가 세찹니다. 나뭇가지가 요동을 치며 나뭇잎들을 떨쳐냅니다. 일기예보가 요렇게 정확할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찬 비와 함께 강풍을 동반할 것이라고 하더니만 일기를 예측하는 사람들은 이미 하느님의 생각을 꿰뚫었나 봅니다. 유리창에 그렁그렁 맺혀있는 물방울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주히 방안을 엿보고 있었습니다.
배움터를 가기 위해 셔틀버스를 타려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강풍이 놀다간 자리는 어지럽습니다. 작은 나뭇가지며 낙엽이 물기를 먹은 채 바닥을 덮었습니다. 보도블록 위를 빈틈없이 채웠습니다. 정류장으로 가는 동안 나는 카펫을 밟고 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류장 가까이 다가가자, 아내는 갑자기 몸을 구부리고 바닥에 손을 짚었습니다. 안 하던 짓을 하니 이상합니다. 제자리에 멈춰서 모습을 주시했습니다.
“공기놀이해야지, 다섯 개.”
아내는 어느새 다섯 개의 열매를 주워 들었습니다. 작지만 통통한 것들입니다. 말을 듣고는 나도 엎드려 열매를 주웠습니다. 많이 주웠습니다. 낙엽과 함께 떨어진 것들은 가을의 풍성함을 알리기라고 하려는 듯 알몸을 드러냈습니다. 하나, 하나, 또 하나. 눈 깜짝할 사이에 한 움큼 주웠습니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전에 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누가 치웠을까 바람이 장난했을까. 텅 빈자리, 열매를 화단의 낮은 벽 위에 가지런히 열을 맞추어 놓았습니다. 전에 놓았던 자리입니다. 잠시 후 셔틀버스가 다가왔지만, 주운 열매들이 벽 위를 가득 채웠습니다. 가을의 또 다른 풍성함입니다. 잠시 후면 낙엽과 함께 마대에 담겨 사라질 것들이 햇볕에 몸을 말릴 시간을 벌었습니다.
사람들의 편리함만 생각하다 보니 많은 자연 공간이 훼손되고 있습니다. 길이 만들어지고, 건물들이 늘어납니다. 이에 따라 나무와 풀들이 사라집니다. 동물들도 사라집니다. 자연미가 없는 도시는 썰렁하기만 합니다. 깨끗함과 정리 정돈된 모습을 생각하다 보니 빈 곳은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채워지는 일이 흔합니다. 나는 공간을 볼 때마다 가끔 이곳을 나무나 풀로 채운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사는 곳은 원래 넓은 갯벌이었습니다. 간척사업으로 도시가 만들어졌고 크고 넓은 길과 고층 건물들이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편리한 생활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게 아닌데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갯벌 그대로 두었다면 생산물은 생산물대로 거두고 답답한 마음이 들 때 찾아와 넓은 곳을 보며 쾌적한 공기를 마실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도시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종종 찾아왔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른 도시에 비해 넓은 녹지 공간을 마련한 일입니다. 곳곳에 공원을 만들고 많은 나무를 심었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산책하는 재미가 있지만 자연미가 없다는 점에서 옛 모습이 그리워집니다.
사람들이 도시에 몰려들면서 그동안 삭막하기만 했던 모습이 점차 바뀌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녹지대와 숲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일까요. 도시마다 숲을 만들고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봅니다. 서울의 모습은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습니다. 허전하기만 했던 공간이 푸름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숲의 띠를 만들어 공원화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집니다. 쉼터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닙니다. 세계 곳곳에는 아름다운 공원이 있습니다. 나는 유럽을 몇 차례 여행했지만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 공원을 좋아합니다. 물과 산이 어우러져 탄성을 자아냅니다. 이 밖에도 여러 도시에는 크고 작은 숲과 공원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이맘때면 타잔 놀이를 하던 일이 기억납니다. 봄부터 여름까지는 나뭇가지에서 뛰어내릴 엄두 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맘때가 되면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바닥에 깔린 낙엽이 방석 역할을 한다고 할까요. 친구들과 나뭇잎을 한 길이나 되도록 모아놓고 나뭇가지에 매달려 그네를 탔습니다. 좌우로 흔들다 힘에 부치면 그대로 바닥으로 내렸습니다. 털썩 떨어지는 순간 몸은 낙엽 속으로 묻힙니다. 일부러 나뭇잎 속으로 파고들기도 합니다.
추억 때문일까요. 몇 년 전에는 시골 학교의 비탈진 진입로에서 아이들과 함께 썰매를 탄 일이 있습니다. 길 양편으로 은행나무 가로수가 촘촘히 줄지어 있습니다. 잎이 떨어지자, 황금 길이 되었습니다. 비료부대를 하나씩 가져와 바닥에 깔고 눈에서 미끄럼을 타듯 아래로 향했습니다. 동심이 살아났을까요. 저절로 ‘야호’하는 외침이 튀어나왔습니다.
우리 아파트의 빈 터에도 나무를 많이 심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