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273. 라면이 어느새 60세 20231121

by 지금은

아나운서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립니다. 올해 우리나라의 라면 수출액이 1조 원을 달성했다고 합니다. 가는 면발이 모이고 모인 결과입니다. 이어 붙인다면 지구를 몇 바퀴나 돌 수 있을까. 하늘로 이어지는 연줄처럼 지구에서 어느 별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화성, 목성, 아니 토성……. 라면 시장이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갖가지 좋지 않은 말들이 기업가들의 사기를 떨어뜨린 일입니다. 2008년 미국산 수입소고기를 둘러싼 광우병에 대한 헛된 소문으로 나라의 민심이 흉흉할 때만큼이나 혼란스러웠습니다.

1989년 11월 '공업용 쇠기름'으로 면을 튀겼다는 익명의 투서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비식용 쇠기름을 수입한 업체들이 적발되어 대표 및 실무 책임자 등 10명을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따라 라면은 물론, 쇼트닝이나 마가린을 쓰는 과자, 튀김류, 통닭에까지 영향을 미쳐 관련 상품들의 매출이 줄었습니다. 소비자 단체들 역시 성명 발표와 불매운동으로 인해, 라면의 반품과 생산 중단 사태가 이어졌습니다. 대다수 국민들과 전문가들은 '공업용 쇠기름'을 썼다고 분노했습니다. 이는 한국 라면이 강세였던 미국에까지 영향을 미쳐 매상이 줄어드는 한편, 나아가 한국 식품 자체에 대한 불신이 더해졌습니다. 동물성 기름과 식물성 기름의 차이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동물성 기름은 식물성 기름에 비해 사람에게 해롭다는 이유입니다. 동물성 기름은 식물성 기름에 비해 불포화 지방산이 많습니다. 포화지방산이 우리 몸에 쌓이면 심혈관 질환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지나치게 많이 먹지 않으면 해가 없다고 합니다.

라면이 인체에 해롭다는 인식이 퍼지자, 직장에서 함께 생활하던 동료가 말했습니다. 맛은 있지만 초등학생 딸이 있는데 결혼하고 출산을 끝내기까지 라면을 먹지 않기로 했답니다. 후세를 위한 일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라면을 좋아하는데 결심이 대단하다고 여겼습니다. 이후 해롭지 않다는 판정이 내려졌는데도 약속이 잘 지켜졌는지는 모릅니다.

60여 년 전 라면이 시중에 나와 막 홍보를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형님이 군대에 가기 전날 밤입니다. 어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눕니다. 어머니가 어디서 소문을 들으셨는지 남들이 맛이 좋다기에 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특식을 먹게 생겼습니다. 나도 함께 먹겠다 싶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가정 형편상 딱 하나뿐입니다. 새벽이 되자 라면을 끓였습니다. 그릇에 담긴 라면은 짙은 노랑 파마머리처럼 밝은 전등에 빛이 납니다. 국물 위에 떠 있는 기름이 반짝입니다.

맛을 본 형은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어머니가 맛을 보았습니다.

“버려야겠다. 밥 굶겨 보내게 생겼네.”

내가 맛을 볼 사이도 없이 수챗구멍에 부어버렸습니다.

그 후 국민의 입에 맞추기까지는 큰 노력과 시행착오를 거듭했습니다. 회사는 다양한 맛을 만들어 내기 위해 힘썼습니다. 부족한 식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해 시작한 것이 드디어 국민의 식품이 되었습니다. 세계인의 다양한 입맛을 맞추려고 각기 다른 제품을 만들어 지구의 곳곳으로 수출하고 있습니다. 유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현지 공장을 만들어 직접 만들어 냅니다.

이 모든 것들은 라면 회사만의 노력이 아닙니다. 한국의 문화와의 합작품입니다. 한류에 힘입어 발전한 결과입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하면서 세계 속에 위상을 높여갑니다. 10대 교역 국가가 되었습니다. 어느새 식품의 한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라면의 수출 증가만큼이나 많은 물품이 해외로 이어집니다.

라면요, 나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몸에 좋고 나빠서가 아닙니다. 기호일 뿐입니다.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습성이 있어 이 식품을 잘 먹지 않았습니다. 지나고 보니 나는 편식을 하는 편이었습니다. 늘 배탈에 고생하다 보니 새로운 음식에는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건강이 좋아져 다양한 먹을거리를 좋아합니다. 라면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이 먹는 것만 봐도 싫어했던 그때와는 달리 한 달에 몇 개쯤은 먹습니다. 기름기가 비교적 적고 담백한 것입니다. 라면을 먹을 때면 혼잣말하기도 합니다.

‘나 같은 사람만 있었다면 회사가 망할 거야.’

세상은 공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각각의 생각만큼이나 각각의 입맛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함께 살아가는 게 아닐까. 라면을 비롯한 우리의 많은 식료품들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기를 바랍니다. 계속 우리의 한류가 쑥쑥 커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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