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 겨울의 입구 20231121
강아지들이 며칠 사이에 하나둘 옷을 입었습니다. 고양이들이 아늑한 양지쪽을 찾습니다. 겨울이 코앞에 왔다는 증거입니다. 계절이 바뀜은 자연을 보고 알 수도 있지만 동물을 통해 낌새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자, 사람처럼 두꺼운 옷을 입었습니다. 홀쭉한 개들이야 두꺼운 옷에도 둔하다는 느낌이 없는데 뚱뚱한 것들을 보면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가뜩이나 맹꽁이처럼 불룩한 몸집이 볼썽사나워졌습니다. 다리만 감춘다면 공 굴리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잠시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한 강아지가 검은 빛 스웨터를 입었습니다. 파란 꽃무늬, 노랑꽃무늬, 빨강 꽃무늬, 알록달록해서 촌스럽다고 느껴지기는 하지만 몸의 색깔과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굵은 올을 보니 내 어릴 적 스웨터가 떠오릅니다. 고모는 수놓은 솜씨뿐만 아니라 뜨개질도 잘했습니다. 시집갈 나이가 되자 할머니와 함께 몇 년 전부터 혼수 마련을 했습니다. 이불 홑청, 베개 마구리에 수를 놓았습니다. 입동이 되면서부터는 뜨개질을 시작합니다. 나는 산촌에 살았지만, 동네 친구들과는 달리 겨울에는 동생과 함께 스웨터를 입었습니다. 털실이 귀한 시절이었습니다.
어느 날 삼촌이 서울을 다녀왔는데 털실로 짠 양말을 열 켤레나 가져왔습니다. 작은할머니가 집안 식구들이 겨울을 따뜻하게 잘 지내라고 선물로 주었습니다. 하지만 식구들이 양말을 신기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미군들이 신는 양말이라는데 너무 커서 문제입니다. 잘라서 신어야 할까, 아니면 실을 풀어 양말을 다시 짜야 할까 망설이다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고모의 생각입니다. 두세 켤레 정도면 스웨터를 짤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옷을 짜기에 실이 괜찮을지 모르겠다며 한 올 한 올 풀었습니다. 모아 놓고 보니 얽히고설킨 라면 발 같습니다. 실을 감아 삶았습니다. 이렇게 손질하여 스웨터를 짰습니다. 앞자락이 막힌 회색 옷이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시도해 본 일이지만 눈썰미가 좋다는 말처럼 내 몸에 잘 맞았습니다.
“벗어.” 그냥 입기에는 색이 겨울에 어울리지 않는답니다. 남동생 옷을 만들었습니다. 여동생 옷을 만들었습니다. 재미가 있는지 아니면 조카에게 빨리 입히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열흘 동안 세 벌을 만들었습니다. 장날이 되자 검정 물감을 사 와 물을 들였습니다. 색이 흐리다며 몇 차례 반복하자 검정 스웨터가 되었습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세 명이 옷을 입고 나란히 벽에 섰습니다. 옷만큼이나 뒤에 비치는 그림자도 검습니다.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옷을 처음에는 좋아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싫었습니다. 따뜻해서 좋기는 한데 앞자락을 풀 수가 없습니다. 뛰어놀다 보면 땀이 목덜미로 흐르는데 닦기가 불편합니다. 어느 날 불평을 하자 복에 겨워하는 투정이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맞는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학교에서도 스웨터를 입은 아이들은 몇 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고모의 솜씨는 인정합니다. 포근한 사랑을 기억합니다.
초등학교 하면 아직도 잊히지 않는 일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이중 스웨터에 관한 일입니다. 한겨울에는 스웨터를 입고 겉옷을 입었는데 봄이 되자 한 꺼풀 벗었습니다. 월요일 운동장 조회 시간입니다. 햇살이 비치자 몸이 따뜻해졌습니다. 좀 더 지나니 땀이 납니다. 스웨터를 벗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검은색이니 햇살을 더 잘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몸이 슬근슬근 가렵기 시작합니다. 손이 자꾸만 겨드랑이로, 목덜미로, 등으로 갑니다.
뒤에 있는 아이가 갑자기 말했습니다. “이가 나왔어.” 이도 더웠을까요. 스웨터의 실올 사이를 비집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검은 옷에 붙었으니, 눈에 잘 뜨일 수밖에 없습니다. 두 마리나 잡아 나에게 내밀었습니다.
“야, 장난치지 마, 네 이를 잡아서 내민 거야.”
주위에 서 있던 친구들이 다 같이 내 몸에서 나온 것이랍니다. 순간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 시절 내 몸에만 이가 있었던 게 아닙니다. 대부분 사람이 겨울이면 이를 몸에 지니고 살았습니다. 집에 와서 말하자 이 기회에 이를 소탕하자며 모두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벗은 옷은 가마솥에 들어가 한동안 펄펄 끓어야 했습니다. 빈대, 벼룩, 이는 우리 몸에 기생하는 삼대 기생충이었습니다. DDT가 환영받던 때입니다. 요즘 갑자기 빈대 이야기로 떠들썩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물리면 고통스럽습니다. 빈대 때문에 초가삼간 태운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올해도 날이 추워지자, 스웨터를 꺼냈습니다. 이번에는 아내가 떠준 것입니다. 결혼했던 겨울 배운 솜씨를 발휘하겠다고 정성을 들였습니다. 조금 투박하기는 해도 따뜻합니다. 한동안 입지 않고 장에 모셔두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헐렁하던 옷이 이제는 딱 맞습니다. 복지관에 입고 갔더니 주위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스웨터 참 멋집니다. 어디서 샀어요?”
아내의 솜씨라고 했습니다. 주위의 칭찬 한마디에 평범한 스웨터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근사한 옷으로 바뀌었습니다. 올해는 이 옷이 내 마음을 훈훈하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