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282. 다방 20231127

by 지금은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고향 친구가 점심을 사겠다고 했습니다. 약속 장소를 보고 미리 짐작했습니다. 그는 이 음식점을 애용합니다. 약속 시간에 맞추어 도착했는데 초만원입니다. 안과 밖을 살펴보니 곧 자리가 날 것 같지 않습니다. 친구가 난처한 표정을 짓습니다.

우리가 잠시 다방에 가 있을 테니 자리가 나면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발길을 옮겼습니다. 어느새 두 친구가 와 있습니다. 시골에 사는 친구입니다. 모임 장소가 멀어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는 때가 있답니다. 약속 시간보다 너무 이르다 싶으면 이 다방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다방’ 다소 낯선 느낌입니다. 젊어서는 다방이 지금의 카페만큼이나 친근감이 있었는데 어느새 이름이 바뀌면서 분위기도 달라졌습니다. 노인들만의 공간이 된 느낌입니다. 남녀, 젊은이와 늙은이를 구별할 것이야 없지만 카페는 주로 젊은 층이 이용하니 나이 든 사람들의 공간이 줄어들었습니다.

이를 알아차린 듯 없어졌던 다방이 어쩌다 눈에 뜨입니다. 이 다방은 오래전부터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나무에 새겨진 퇴색된 간판입니다. 그렇지만 외관이나 내부의 모습을 보면 최근에 개업한 기분입니다. 분위기를 바꾸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기며 실내 장식이 새롭습니다.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찻잔과 물 잔입니다. 새것이기는 해도 젊은 시절에 보던 모습입니다. 종업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여인의 얼굴이 우리의 얼굴보다 약간 젊어 보일 뿐입니다. 대하는 표정도 옛날 손님을 접대하는 것처럼 나긋나긋합니다. 사람들이 드나들 때마다 입구까지 와서 맞이하고 전송합니다. 고향에서 어렸을 때 정경이 떠오릅니다. 손님이 왔을 때 집안 모든 식구가 반갑게 맞아들이고 떠날 때는 동구 밖까지 배웅하던 기억입니다.

카페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내가 왕이라도 된 느낌입니다. 카페에서는 영혼 없는 인사를 받았는데 여기에서는 가식이라면 가식이겠지만 표정이나 말씨가 다정다감합니다. 쉼터를 제대로 찾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휴일이기는 해도 머리가 하얀 사람들이 많습니다. 잠시 담소를 나누고 쉬어갈 수 있는 장소입니다. 종업원의 말투와 행동이 옛날의 ‘마담’을 연상케 합니다.

“쌍화차, 커피, 뭐로 하실까요. 커피는 어떻게, 프림, 설탕 몇 술씩 넣을까요?”

담소를 나누는 동안 옆에 붙어 앉아 추임새를 넣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눈치를 살핍니다. 오빠, 말을 구수하게 하시네, 저에게 차 한 잔 사주시면 안 될까요? 응석을 부리듯 옆 친구의 손을 잡아 팔짱을 끼며 은근슬쩍 강요 아닌 강요를 합니다. 여러 차례 왔던 친구의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냉큼 쌍화차 한 잔을 들고 옆자리를 지킵니다.

아직도 사업을 하는 친구가 말했습니다. 종로에도 다방이 있답니다. 그의 말을 빌리면 옛날부터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 노인들의 만남의 장소가 이용됩니다. 종로에서 만날 때 가보기로 했습니다. 다소 침침하고 허술해 보이기는 해도 옛날 그대로입니다. 인천에도 그와 비슷한 다방이 있습니다. 석바위 시장 옆 큰 길가에 있는데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니 세월의 무게를 잘 견뎌온 느낌입니다. 주변은 고층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몇 개의 건물만 2층을 유지한 채 세월을 견디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곳을 떠난 지 퍽 오래되었지만, 젊은 시절에는 만남의 장소로 친근했습니다. 카페가 없던 시절이니 젊고 늙고의 문제는 되지 않았습니다. 이 다방은 세월의 흐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의 모서리는 닳고 닳아 가운데 부분이 파였습니다. 통로가 좁아 한 사람이 겨우 오르내릴 수 있습니다. 마주치는 사람이 있으면 한쪽은 상대를 위해 잠시 머물러야 합니다. 다른 집기들은 낡아서 교체된 흔적이 있지만 카운터만큼은 옛날 그대로입니다. 덧붙인 것이 있다면 전자 단말기입니다. 현금으로 계산하던 시대를 벗어나 이제는 카드로 음료의 값을 계산합니다.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도 바뀌었습니다. 세월의 변화는 어쩔 수 없습니다. 종업원도 바뀌었습니다. 전에 있던 사람은 세상을 달리했거나 건강상 어쩔 수 없이 일손을 놓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식사가 끝났지만, 담소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종업원의 눈치가 보입니다. 우리는 다시 다방으로 향했습니다. 늦게 온 친구가 궁금하답니다. ‘가봐야 별거 아니야’ 하면서도 못다 한 말을 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종업원이 쪼르르 문 쪽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어서 오세요, 여기가 좋기는 좋은가 봐.”

“당신 보고 싶어서 또 왔지.”

눈웃음과 함께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연통이 달린 무쇠 난로가 온기를 전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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