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281. 댕강나무 20231126

by 지금은

누군가의 글을 읽다 보니 서두에 댕강나무 이야기를 합니다. 세상에 ‘댕강나무’가 있나 궁금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나무라서 국어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인동에 속한 낙엽 활엽 관목, 높이 2m 정도이고 가지의 속은 흰색입니다. 5월에 연한 붉은색 꽃이 피며, 열매는 9월에 익습니다. 씨는 하나이고 관상용으로 정원에 심습니다.

조금 더 읽어가니 지금 찾은 댕강나무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다른 나무를 말합니다. 흔히 ‘플라타너스’라 불리는 나무 이야기입니다. 나무의 정식 한국명은 ‘양버즘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한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심는 가로수였습니다. 빨리 자라면서 맹아력이 좋고, 환경오염과 병충해에도 강합니다. 여름에는 큰 잎으로 그늘을 잘 만들고, 겨울에는 잎이 지기 때문에 햇볕을 가리지 않습니다. 양버즘나무의 잎은 대부분 사람 얼굴보다 큽니다. 요즘 그 큰 잎들은 갈색으로 변한 채 길거리에 많이 떨어져 있지만, 11월 말인 지금도 아직 녹색을 띠고 나무에 달린 잎을 보면 우리나라의 평균 기온이 올라갔음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이 나무를 ‘방울 나무’로 불린답니다. 열매가 동그란 방울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먼저 살던 동네는 양버즘나무가 가로수입니다. 이사를 했지만, 다리를 하나 건너면 도달하는 가까운 곳이기에 종종 이곳을 들립니다. 심은 지 몇십 년이 되다 보니 잘 자라 아름드리나무가 되었습니다. 여름이면 터널을 만들어 더운 날에도 길을 걷기에 좋습니다. 숲 속을 거니는 기분입니다.

그러나 이 나무는 이삼 년 주기로 수난을 겪습니다. 잘 자라다 보니 가로수 전정 작업의 주요 표적이 됩니다. 어찌나 바짝 가지를 잘라놓는지 나무에 미안할 때가 있습니다. 빨리 자라는 나무이다 보니 잘라야 하는 주기가 짧아서 되도록 바짝 자른 것이겠지만, 앙상한 가지 몇 개만 남고 나머지 가지는 잘려 나갑니다. 팔이 잘린 모습을 보면 나무가 너무 초라해 보여 미안하기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빨리 자란다고 가로수로 심어 놓고, 또 빨리 자란다고 잘라냅니다. 사람의 시야를 가리고 전선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입니다. 나무는 가지를 뭉텅 잘렸어도 봄이 되면 또 열심히 새 가지와 잎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그늘을 선사합니다.

오늘은 어제 바람이 많이 불어서인지 길거리에 양버즘나무잎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잎을 밟았을 때 나는 소리가 잎의 크기에 따라 달라서 듣는 재미에 계속 밟고 갔습니다. 길 한쪽에서는 환경미화원들이 떨어진 잎을 모아 발로 눌러가며 종량제 봉투에 담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이기심은 끝이 없습니다. 양버즘나무가 가로수로 좋지 않았다며 이를 잘라버리고 한동안 은행나무를 심었습니다. 수명이 길다는 이유입니다. 은행나무의 가지도 양버즘나무만큼이나 가지가 잘리는 아픔을 겪습니다. 열매가 열려 떨어지면 고약한 냄새가 난다는 시민들의 항의에 암나무를 제거하고 수나무를 심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렇다고 수나무의 가지가 온전할 수는 없습니다. 잘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또 다른 냉대를 받습니다. 은행잎이 잘 썩지 않는다고 불평입니다. 말해야 할 게 또 하나 있습니다. ‘메타세쿼이아’입니다. 키가 너무 커서 위험하다는 이유로 내가 살고 있는 공원의 가로수 윗부분이 잘렸습니다. 뭔가 어울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요. 획일적이던 가로수가 지역마다 다른 특색을 지니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고장은 배롱나무, 또 다른 고장은 단풍나무, 우리 고장은 이팝나무를 심었습니다. 나무의 몸집이 크지 않아서일까요. 아직 댕강 잘리는 수난은 겪지 않았습니다.

앞서 본래의 댕강나무 이야기를 했으니 좀 더 살펴보아야겠습니다. 댕강나무의 이름이 재미있습니다. 나무줄기가 말라 부러뜨리면 엿가락 부러지듯 댕강 부러집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꽃의 모양은 초롱을 닮았고, 꺾꽂이로도 잘 자랍니다. 꽃 피는 기간이 6개월 정도나 됩니다. 이런 이유로 울타리 주위나 길옆에 심기도 합니다. 관상용으로 좋은 꽃입니다. 화분에 키울 수도 있습니다.

어느새 겨울로 접어들었습니다. 낙엽수가 그러하듯 양버즘나무의 잎이 다 떨어지면 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양버즘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잎의 크기와 모양과 색깔을 변화시키면서 우리에게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내년에는 양버즘나무가 다른 나무와 혼동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댕강나무가 아니라 플라타너스 또는 양버즘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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