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280. 탐났어요. 20231126.

by 지금은

어제 본 무가 눈에 선합니다. 갓 나은 아이기의 몸통만큼이나 튼실했습니다. 어제 상가에 달걀과 우유를 사러 갔습니다. 입구부터 이 물건 저 물건 둘러보는데 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싸다고 생각했는데 세일까지 합니다. 적혀있는 문구를 보니 회원 카드를 이용하면 더 저렴합니다. 막 사려고 했는데 읽는 순간 그냥 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다고 말하고 왜 망설이는 거야.”

아내는 할인 카드를 놓고 왔다며 내일 사야겠답니다.

입동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아직은 김장철입니다. 잊고 있었는데 마트 입구에 쌓여있는 무와 배추, 대파, 총각무 등을 보고 실감합니다. 예전에는 이맘때가 되면 무 배추를 집으로 나르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근래에는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그만큼 김장하는 가정이 줄었나 봅니다. 아니 절인 배추를 배달받아 담그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요즘은 김장하는 집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김장한다고 하면 특별하다는 느낌입니다. 점차 사 먹는 것에 길드는 것 같습니다.

어제 보아둔 무를 사려다 그만두었습니다. 물건을 담기 위해 구석에 있는 카트를 가지러 갔다가 무더기를 발견했습니다. 무와 배추 다발이 벽에 기대어 내 키보다 더 높이 쌓여있습니다. 다발로 묶인 무 다섯 개가 4,980원, 배추 세 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에 있는 작은 무는 세일이라고 해도 한 개에 1,280원입니다.

아내의 마음이 변했습니다. 김장하지 않는데 무라도 사서 김치를 담아야겠답니다. 섞박지, 깍두기 담그고, 나머지는 가늘게 썰어 무말랭이 만들고, 뭇국을 끓이면 좋겠다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무 다발을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무겁습니다. 내 동작이 힘들어 보였는지 아내가 다발을 들었습니다.

“안 되겠어요. 너무 무거워서.”

인정하면서도 호기를 부렸습니다. 뭐 이 정도쯤이야 들고 갈 수 있다고 했지만 만류합니다. 포기하고 나머지 물건을 사려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것저것 사고 계산대를 향하는 줄 왜 진작 생각을 못했냐며 아내가 팔을 끕니다. 김장 무가 쌓인 곳입니다. 카트에 무를 실었습니다. 코앞이 집인데 잠깐 쓰면 되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고개를 저었습니다. 손잡이에 밖으로의 이동은 안 된다고 쓰여 있습니다. 가끔 이곳의 카트와 가까운 곳의 카트가 아파트 복도와 쓰레기장에 보일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 사용하고 반납하지 않은 때문입니다. 며칠씩이나 자리에 있는 게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카트를 자기 물건처럼 사용하기도 합니다. 집에서 버릴 물건을 싣고 와서 쓰레기와 함께 방치하기도 합니다.

몇 년 전입니다. 김장 무와 배추가 싸다는 말을 듣고 집에서 20여 분 거리의 마트에 간 일이 있습니다. 배추 다섯 개 묶음 다발을 사서 집으로 왔습니다. 오는 내내 힘이 들었습니다. 중간마다 쉬기를 반복했지만, 허리에 이상이 생겨 몇 달 동안 물리치료를 받은 일이 있습니다. 이후로는 물건이 좀 무겁다는 생각이 들면 옮기기를 주저하게 되었습니다.

점원에게 잠깐만 사용해도 되겠느냐고 허락받았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 사람들이 많아 카트를 싣지 못하고 잠시 시간을 보냈지만 지하통로를 이용하여 집까지 힘들이지 않고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내가 무를 주방으로 옮기는 사이 아내는 어느새 카트를 가지고 문밖으로 사라졌습니다.

무를 씻었습니다. 무청을 잘랐습니다. 베란다의 빨래걸이에 걸었습니다. 시래기가 되어 우리의 입맛을 돋울 것입니다. ‘무청을 말리면 시래기, 배춧잎을 말리면 우거지’ 도시에서 자란 아내는 아직도 구별이 잘 안 되나 봅니다. 이것도 시래기, 저것도 시래기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쑥과 씀바귀, 민들레, 고들빼기를 알려줄 때처럼 말입니다. 아내가 깍두기를 담기 위해 큰 함지박을 가져왔습니다. 저 무를 다 손질하기에는 힘이 들겠다 싶습니다.

“내가 뭐 할 게 없을까.”

칼과 도마를 식탁에 올렸습니다. 생각처럼 무채로 썰어야 합니다. 큼직하게 몇 등분하여 잘게 잘랐습니다. 채가 너무 굵어요, 쉬 마르지 않을 것 같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채를 반으로 잘라 보였습니다. 한 번 더 자르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대단한 김장이라도 하는 양 두 개의 칼 소리가 주방을 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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