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 달을 보았다니까요 20231128
“정말이에요, 달을 보았다니까요. 정말이라니까요.”
“호들갑 떨지 말아요. 뭐 달 못 본 사람이 있을까.”
“그런 게 아니고요…….”
몸을 뒤로 돌리려는 사람을 잡아끌었습니다. 함께 보자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그는 시큰둥한 마음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자주 보는 달이 뭐 그리 대단하겠습니까. 자주 볼 수 없는 일식이나 월식 또는 개기일식이라면 모르겠지만 반달이나 보름달이 특이하게 느껴질 리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특이한 하루가 될 게 분명합니다. 보름달을 보았습니다. 초승달이나 그믐달을 좋아하지만, 보름달을 본 게 어디입니까. 나는 운이 좋게도 이사할 때마다 달을 가까이할 수 있었습니다. 사용하는 방의 창문이 달과 마주할 수 있는 방향이었습니다. 아파트에 살 때는 아예 베란다의 창이 통유리라서 날씨만 좋다면, 뜨고 지기까지의 전 과정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럿이 보름달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지만 그보다 홀로 달과 마주하는 시간이 나에게는 더 의미 있는 시간입니다. 달과의 대화, 침묵이어도 좋습니다.
섬에서의 달맞이 밤은 신비의 시간입니다. 신선의 세계에 닿았다면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동네에서도 동떨어진 산등성이에 자리 잡은 남향받이의 집, 구름만 없다면 눈비만 없다면 일 년 내내 얼굴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파도 소리, 풀벌레 소리, 바람 소리, 나뭇잎 소리, 눈 내리는 소리, 침묵하는 소리, 뭐 자연의 소리란 소리는 달과 함께했습니다.
이곳에 온 지 10여 년이 흘렀지만, 집 안에서 달과 마주칠 기회가 없었습니다. 보고 싶으면 날짜를 짚어 밖으로 나가야만 했습니다. 날짜를 잘 확인했어도 날씨가 좋지 않으면 눈을 가린 것처럼 볼 수가 없습니다. 일 년에 몇 차례나 볼 수 있을까요. 기억할 수는 없지만 손가락이 남을 것입니다.
‘달을 보았다니까요!’
콜럼버스의 마음을 읽을 수는 없지만 그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만큼이나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는 데 몇 년이나 걸렸을까요. 내가 창문을 통해 달을 바라본 게 10년 만의 처음입니다. 이 집에서는 해나 달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북동향의 집이라서 집 안으로 직접 햇빛이 들어오는 일은 드뭅니다. 여름 한철 그것도 잠시뿐입니다. 더구나 우리 집을 두고 몇십 미터 떨어진 양옆으로 높이가 같은 건물이 서 있기 때문입니다.
사용한 수건을 빨아 창가에 널려고 다가갔는데 건물 사이로 둥근 물체가 빛을 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누구네가 굵고 큰 전등불을 밝힌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빛깔이 다릅니다. 좀 더 바라보자, 보름달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옆에 있는 달력을 보니 오늘이 보름입니다. 며칠 전에 밖에서 초승달을 보고는 그믐달인가 혼동이 되어 엄지손톱을 살핀 일이 있습니다. 아직도 어릴 때의 공부가 남아있다는 생각에 치매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달을 바라봅니다. 대화를 나눌 사이도 없이 곧 사라졌습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가 좁아 얼굴을 보이는가 싶었는데 곧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이 창가에서는 영원히 못 볼 것 같았던 달이 슬며시 나에게 얼굴을 보였습니다. 이제는 날짜만 잘 기억할 수 있다면 잠깐이지만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사라지고 나서도 달과 마주했던 지난날의 추억이 머릿속에 맴돕니다. 고향에서의 밤, 수건 돌리기, 강강술래, 달집 태우기, 숨바꼭질, 자치기, 중고등학교 사춘기 때 턱을 고인 채 달을 마주하고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밤을 새우던 시간, 졸업 후 기관차 승무원 시절 운전석에 앉아 달과 함께 긴 철로를 달리던 생각, 시골 벽지 학교 기숙사에서 홀로 생활할 때면 운동장에 나와 여선생과 함께 이슬을 맞아가며 속삭이던 밤, 섬에서 간조 시간을 맞아 달과 함께 갯벌을 거닐며 야광충과 별빛 무리 속에 섞여 물고기를 찾던 일.
건물과 건물 사이로 빠끔히 얼굴을 내밀고 사라졌지만, 추억만큼은 산더미만큼이나 내 가슴에 안겨 주었습니다.
‘또 찾아올게.’
뒷말을 남기지 않았지만, 늘 가는 길목을 찾았으니 다시 재회의 기쁨을 나눌 수 있겠다 싶습니다. 눈이라도 내리는 날에 찾아온다면 두툼한 외투를 걸치고 방한모를 쓰고 마중을 나가야 합니다. 달이 추우면 안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