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 아직도 선생 20231129
늘 나의 삶은 어수선합니다. 마음이 불안합니다. 때로는 하는 일에 갈팡질팡 어쩔 줄을 모르는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루해가 지나고 또 일 년이 지났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해의 뒤처리는 운동장을 깨끗이 하는 일로 끝을 맺었습니다. 티끌이 하나 없는 촉촉이 젖은 운동장입니다. 아이들이 뛰놀기에는 그만입니다. 하늘은 날 도우려 했나 봅니다. 밤새 이슬이나 안개가 내렸는지 모릅니다. 차갑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안개가 찾아왔다 물러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날인데 게으름을 피웠습니다. 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 망설이다 느지막이 학교로 향했습니다. 아이들은 이미 집으로 돌아간 상태입니다. 삼 층 복도를 올려보았습니다. 알고 있는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합니다.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지난해의 일입니다. 아이들 때문에 무척이나 속앓이 했습니다. 행동이 천방지축입니다. 다른 반 아이들과 대비가 됩니다. 통제되지 않는 아이들이 제멋대로 굴다 보니 다른 반 선생님이나 아이들의 눈 밖에 났습니다. 아이들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늦게나마 깨달은 것이기는 해도 내 지도 방법이 문제입니다. 때로는 엄하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 반은 교실을 여러 차례 옮겼습니다. 처음에는 출입구에서 복도의 맨 안쪽이었는데 점차 밀려났습니다. 드디어 출입구의 앞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수업 중에도 소란스럽지만, 시작종과 끝나는 종이 울릴 때 문제가 있습니다. 운동장을 먼저 차지하려고 달립니다. 더 놀고 싶은 마음에 시작종이 울리고서야 허둥지둥 발걸음을 옮깁니다. 자연 복도가 시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 밖에도 크고 작은 말썽을 부립니다. 자주 싸움을 하고 왕따를 시키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눈치가 생각보다 빠릅니다. 내가 마음이 여리다는 것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아이가 행동보다는 말로 상황을 모면합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맞습니다. 아이들이 나보다는 다른 반 선생님의 꾸지람을 받는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면 「일그러진 영웅」의 내용이 머릿속을 스치기도 합니다. 시골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하여 반 친구들 사이에 군림하는 엄석대라는 인물을 통해 권력의 속성과 무기력한 대중들의 모습을 알레 고릿적으로 보여준 작품입니다. 한국 사회와 역사, 권력의 속성,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의 관계를 그려낸 작품이다.
텅 빈 교실을 지나 휴게실로 갔습니다. 내가 올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담당 선생님이 은색의 동그란 표를 떼서 나에게 내밉니다. 학급 배정이 끝났나 봅니다. 어떤 아이들일까. 사실 나는 학급 담임은 물론 교사 임용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개학 첫날부터 늦게 출근했습니다. 하지만 교장과 교감은 내가 올 것을 확신하고 있었나 봅니다. 지난해에 기간제 교사를 했으나, 올해에는 다시 임용될지 장담을 할 수 없었습니다. 서로 간에 새 학년이 되면 계속할 것인지 그만두어야 할지에 대한 언급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서울 어느 초등학교 교실에서 한 교사의 죽음이 사회화되었습니다. 학생의 부적절한 행동이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에 편승한 부모의 지나친 간섭이 부른 결과입니다. 학교와 사회에서 학생의 일탈이 문제가 된 것은 오늘만의 일은 아니지만 한 교사의 죽음을 기회로 사회적 반향을 불러왔습니다. 아이가 강제 전학을 하게 되고 누리꾼들에 의해 학부모의 신상이 털리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학교에서의 사고가 아직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은 가운데 시시비비를 두고 법정 다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사회적으로 부각된 것은 근래이지만 조짐은 전부터 있었습니다. 단지 수면 아래 숨겨져 있었을 뿐입니다.
물 위로 떠 오른 것은 학생인권조례가 정해지면서부터입니다. 학생 편을 지나치게 부각하는 법규는 교사들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설 자리를 위태롭게 했습니다. 교권이 추락했습니다. 이에 실망한 많은 교사가 교단을 떠나고 몇몇 교사는 죽음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단지 알려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참고 있던 교사들이 한 교사의 죽음을 기회로 거리로 나섰습니다.
내가 퇴직하자 옆의 학교에서 아이들을 지도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기간제 교사입니다. 일 년간 체육 교사로 아이들을 맡았습니다. 교육과정에 맞추어 지도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많이 배운 학부모는 학교에 간섭이 많을까요. 불만만큼이나 요구도 많았습니다. 학군이 좋다는 소문처럼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과 민원을 넣는 학부모도 많았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학교입니다. 학부모들의 학력 수준이 높다고 합니다. 자기 자식만을 금쪽이로 대우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 자식만을 특별히 봐달라는 도 넘은 요구와 무질서한 행동이 학교는 물로 사회를 어지럽게 만듭니다.
꿈을 꾸었습니다. 교직을 떠난 지 어느덧 1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학부모에게 회초리를 들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