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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

308. 그림책 받는 날 20231214

by 지금은

기다리던 날이 돌아왔습니다. 내 그림책이 완성되어 선보이는 날입니다. 아침 일찍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립니다. 우산을 펼칩니다.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몇 걸음 걷다가 되돌아섰습니다. 어제 밖에 내놓은 포인세티아가 밤새 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비가 온다기에 오랜만에 바깥바람을 쏘여주고 싶었습니다. 내년에 그림책을 만들게 된다면 포인세티아를 바탕으로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 중입니다.

강의실이 텅 비어 있습니다. 너무 일찍 도착했습니다. 시작되려면 30분이나 기다려야 합니다. 텅 빈 강의실에서 누군가가 서성입니다. 나까지 두 사람입니다. 자신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책을 빨리 받아보고 싶어서 일찍 왔답니다. 비매품이지만 책 뒷면에 바코드를 넣었다는군요. 1,000만 원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책이니 그 정도의 값은 매겨야 하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아직도 십여 분이 남았습니다.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지금 막 도착을 할 예정입니다. 강사의 메시지입니다. 다른 사람도 자신의 위치를 알립니다. 눈을 들어보니 막 강의실 출입문을 들어서고 있습니다. 드디어 강의실이 채워졌습니다. 책상은 30여 개인데 사람은 모두 합쳐 7명입니다. 수강생, 강사, 직원입니다. 그동안 강의실에는 9명의 수강생이 있었습니다. 10명을 모집했는데 다 채우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4명입니다. 그림 그리기가 어렵답니다. 갑자기 건강이 좋지 않답니다.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있답니다. 나가고 들어가기를 반복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채워지고 또 다른 사람이 채워지고,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4명입니다. 나는 이 중 한 명입니다. 나는 한번 시작하면 종료될 때까지 포기하는 일은 드뭅니다.

강의 주제는 ‘자서전 그림책 만들기’입니다. 하지만 나는 자서전 그림책을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둘째 강의 날 강사에게 넌지시 내 의향을 말했습니다. 자서전 빼고 내 나름의 그림책을 구상해도 되겠느냐고 했더니만 괜찮다고 했습니다. 동화처럼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주 1회 10주 시작되는 동안 몇 개의 줄거리를 만들었습니다. 둘은 서로 다른 겨울 이야기입니다. 내용을 간단히 말하면 하나는 유아기의 아이가 눈 내리는 아침 밖을 보고 나서 엄마와 눈놀이하는 내용이고, 또 다른 하나는 눈 내리는 날 공원, 호수, 스케이트장을 돌아보고 형의 학교에 가서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하는 이야기입니다.

몇 주가 지나자, 강사에게 그림을 슬며시 보여주었습니다. 눈이 반짝 빛났습니다.

“어떻게 동화적인 생각을 하셨어요.”

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가끔 동화의 세계에 빠져 있다는 말을 듣고 했습니다.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은 나를 보기 전에는 17세의 소녀가 쓴 글이라고 착각했답니다. 며칠 전 도서관에서 편지 에세이 쓰기가 있었는데 발표하자 이구동성으로 같은 말을 했습니다. 할아버지의 머리에서 어떻게 서정적인 장면이 실처럼 술술 풀려나오느냐며 신기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강사가 만들어진 책을 주인에게 호명하며 하나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책입니다. 몇 권을 만들어 주었으면 했지만,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나만의 책이기에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내가 받은 책은 앞에서 말한 내용이 아닙니다. 중간에 바꿨습니다. 초등학교 때 소풍 생각이 났습니다. 예쁜 여선생님과 함께 가을 소풍을 갔는데 단풍이 아름답기도 했지만, 선생님의 모습 멋져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를 소재로 ‘가을 소풍’이라는 제목으로 글씨 없는 그림책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동물과 함께 소풍을 가는 내용입니다. 각각의 동물들이 선생님의 복장 색깔에 맞추어 옷을 입었습니다. 목적지에서 장기 자랑을 하고 가을에 맞게 패션쇼도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알록달록 울긋불긋 화려합니다.

다른 세분은 자신의 일생을 특징 있게 꾸몄습니다. 살아온 과정과 한 일이 다르니 그림이나 내용이 특별합니다. 자세하게 나타낼 수는 없지만 간략한 개인의 역사가 되는 셈입니다. 처음으로 그림책 자서전을 완성하고 보니 어렵지만 해냈다는 기쁨이 얼굴에 가득합니다. 한동안 각자 자신의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자식 손자에게 자랑하고 싶은 생각에 마음이 들떠있습니다. 서로 고맙다는 인사를 나누는 동안 손은 어느새 펼쳐놓았던 마음을 가방에 주섬주섬 챙깁니다. 나이가 제일 많은 사람이 말했습니다.

“내년에 또 하게 되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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