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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

310. 내 인생의 전환점(2) 20231216

by 지금은

70세에 한글을 깨치고 84세의 여인이 올해 대학 수학능력고사를 봤습니다. 미용사 자격증입니다. 32번의 도전에도 좌절하지 않고 33번째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숙직을 하던 선생님이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일 년간 식물인간으로 지냈습니다. 의사가 사망진단을 내렸지만 어머니의 지극한 보살핌으로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이밖에도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건강이나 재정적 어려움으로 힘들어했던 시기를 극복한 사례들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삶의 전환점은 대부분 충격적인 일이 있고부터입니다. 내 삶의 전환점은 언제일까요. 잠시 생각을 해보았지만 뚜렷한 계기를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초등학교를 졸업한 해입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나는 친구들과는 달리 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했습니다. 그 시절 우리나라의 가정 살림은 일부 계층을 제외하고는 빈곤했습니다. 산촌에서 태어나 자란 우리들은 일부의 아이들만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고 나머지는 부모의 일을 돕거나 외지로 나가 회사나 공장에서 종업원 노릇을 했습니다. 여자의 경우는 입을 하나라도 덜어보려고 식모살이를 하기 위해 도시로 떠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웃집 친구의 누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루는 나무를 하러 산에 갔다가 낫을 잘못 다루는 바람에 손을 크게 다치고 말았습니다. 변변치 못한 가정형편이라 병원에 가서 다친 부분을 꿰매고 나서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손가락 몇 개가 아직도 부자연스럽습니다. 이때 나는 할머니와 삼촌내외, 동생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어머니는 형님을 공부시키겠다는 일념으로 할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을 박차고 나가셨습니다. 서울의 이모님 댁에 기거하며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내가 심하게 다쳤다는 소식을 뒤늦게 아신 어머니가 오셨습니다.

“조금만 더 참아라. 서둘러 데려가마.”

다음 해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어머니의 헌신으로 학업을 계속하고 직장도 얻었습니다. 성인이 되면서 초등학교 동창들이 모임을 갖습니다. 수도권에 사는 친구들입니다. 이제는 여덟 명뿐입니다. 몇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학력의 차이는 있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는 도토리 키 재기입니다. 집을 나설 때 그만한 각오가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모두가 한눈을 팔지 않고 자신의 생각한 바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나는 남과 다르게 특이한 생각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가 나왔는데 학교에 가기 싫다고 떼를 썼습니다. 할머니가 왜 학교에 가기 싫으냐고 물었을 때 소가 좋아 떨어질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정말 소와 친했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 지냈습니다. 오후가 되면 소를 끌고 냇가나 들판으로 가서 풀을 뜯겼습니다. 소가 순해서 좋기도 했지만 어른들의 칭찬이 컸습니다. 이런 이유로 한 달이나 늦은 후에야 억지로 이끌려 학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소 생각에 일 년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소를 보기 위해 집으로 달렸습니다. 초등학교에서의 공부는 소홀했습니다. 책보자기를 방안에 던져놓고 홀로 들로 산으로 쏘다녔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공부의 맛을 알았습니다. 일 년의 공백 기간과 어머니의 고생스러운 모습은 나를 변화시켰습니다.

나는 세 번의 전환점이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기관차 승무원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더 공부하고 싶은 생각에 학교를 떠날까 고민을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퇴직 후에는 사서교사로 도서관에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무엇을 하고 지낼까요. 배움입니다. 시작하고 보니 끝이 없습니다. 독서를 꾸준히 하고 지속적인 글쓰기를 합니다. 일상이 되었습니다. 동화와 그림책에 관심을 갖다 보니 그림을 공부하며 그림책 만들기에도 도전합니다. 올해는 내 글이 실린 책을 세 권이나 받았습니다. 그림책을 두 권이나 받았습니다. 그럭저럭 내 이름의 책이 쌓여갑니다. 숨겨놓은 글들이 컴퓨터에 차곡차곡 저장됩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잊을 수 없어 아직도 배움터를 찾아갑니다. 내 손의 상처가, 어머니의 헌신이 내 삶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문해교육 전시회가 열리는 갤러리를 찾아갔는데 마음에 드는 시가 있어 소개합니다. 딸이 외국에서 살려고 공항을 떠나는데 배웅을 못했답니다. 글씨를 읽을 수 없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딸이 떠났습니다. 한을 풀어야겠지요. 공부의 시작입니다.

황금 열매/ 김00

한자 배워 꿈의 씨앗 심어졌고/ 두자 배워 꿈의 씨앗 돋아났다./ 세자 배워 소망 꽃이 피고 나고/ 네 자 배워 황금 열매 익어가리/ 칠순 넘어 허무하던 내 인생에/ 무지갯빛 황금 열매 익어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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