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20231217
어제 그제 눈이 내렸습니다. 첫눈처럼 요란을 떨었습니다. 첫눈이 내리던 날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려는 듯 시작된 눈발은 거침없이 하늘을 흐렸습니다. 그때와 비슷한 광경입니다. 폭풍에 흙먼지가 날 듯 한동안 시야를 흐렸습니다. 기대가 컸습니다. 눈 사진을 제대로 찍겠다는 생각에 밖으로 내다보며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가야겠습니다. 모자와 목도리 장갑을 챙깁니다. 하지만 눈은 언제 내렸냐는 듯 곧 물러갔습니다. 바닥으로 떨어진 눈은 흔적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기온이 높은 탓인가 봅니다.
대형 마트에 갔습니다. 이것저것 식료품을 고르는데 한 사람이 눈썰매를 카트에 싣습니다. 두 사람이나 보였습니다. 첫눈이 내리던 날도 눈썰매를 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 곁에서 물건을 이리저리 살피고 만져보았습니다. 무게가 가볍습니다. 무릎만 구부린다면 누워도 될 만큼 크기가 큽니다. 손잡이도 있습니다. 살 것도 아니면서 호기심에 앞면이며 뒷면을 만져보았습니다. 플라스틱 재질입니다. 내가 어릴 때 타던 눈썰매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나는 이런 썰매를 타본 일이 없습니다.
어릴 때입니다. 이맘때쯤이면 온 산과 들이 눈에 쌓였습니다. 눈이 녹았다고는 해도 개울이나 논은 얼음으로 덮였습니다. 내가 타던 게 눈썰매지, 지금 만지고 있는 것은 움직이는 미끄럼틀이라고 해야 할까, 눈이 있는 비탈길에서 타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눈이 없어도 되겠습니다. 잔디가 있는 평평한 경사면이라면 탈 수 있겠습니다. 우리 고장에는 해를 거듭할수록 눈이 내리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환경변화에 따른 이상기후 때문입니다. 올겨울 내가 머릿속에 넣은 썰매는 받침대 밑에 두 가닥의 철사나 쇠붙이의 날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겨울방학이면 방학 책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겉표지에 있는 그림과 같습니다. 썰매장에는 팽이를 치는 모습도 곁들여 있습니다. 어릴 때는 눈이 많이 오고 추위도 매서웠습니다. 생각해 보니 지금도 추울 때야 그때 못지않겠지만 덜 춥게 느껴지는 이유는 겨울 채비를 단단히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툼한 옷에 털모자, 털장갑, 털목도리 등 완전무장입니다. 방학 내내 썰매를 타고, 팽이를 치고, 연을 날리고, 제기를 차고, 딱지치기를 하며 지냈습니다.
집을 나설 때는 온몸을 달달 떨며 발걸음을 옮기지만 들어올 때는 초여름이라도 만난 양 앞섶을 풀어헤쳤습니다. 놀이에 열중했다는 증거입니다. 썰매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나는 변변한 썰매가 없었습니다. 주로 남의 것을 얻어 탔습니다. 썰매를 만들 줄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포기했습니다. 재료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중심이 되는 철사나 날이 되는 쇠붙이가 없었습니다. 관심이 있는 부모는 장날 대장간에 가서 칼날을 만들어와 썰매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지금의 스케이트 날과 닮았습니다. 이런 썰매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겨울의 우상입니다. 너도나도 빌려 타고 싶어 합니다.
나라고 썰매를 만들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남에게 보여줄 정도가 되지 못했습니다. 어디서 가느다란 철사라도 손에 넣으면 시도를 했지만, 고정할 못이 없습니다. 식구 중 누구에게 부탁할 처지도 아니고 보니 시작은 했지만, 중도에 그만두기를 반복했습니다. 대신 친구의 썰매를 얻어 타는 대신 집까지 들어주는 일을 했습니다. 친척 집에라도 가는 날이면 내 것처럼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에는 눈썰매를 몇 차례나 탈 수 있을까 가늠해 볼 수가 없습니다.
초겨울이면 해마다 마을에서 제일 넓은 논에 물을 가두었습니다. 우리들의 놀이터입니다. 신나는 날이 있습니다. 겨울 중 하루는 동네 청년들이 썰매장에 모입니다. 썰매를 모두 모으고 긴 사다리도 준비했습니다. 상을 주는 일은 없지만 팽이치기와 썰매 경주를 시킵니다. 기차놀이도 합니다. 몇 개의 썰매에 사다리를 올려놓고 묶습니다. 멋진 기차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올라탑니다. 청년들이 사이에 앉습니다. 모두 송곳을 들었습니다. 기차 썰매가 원을 그리며 썰매장의 가장자리를 돕니다.
도시에 살면서는 썰매를 타본 일이 없습니다. 대신 두꺼운 비닐 포대를 가지고 집 앞 언덕에서 미끄럼을 탄 일이 있습니다. 오늘 본 눈썰매와 기능이 같다고 해야겠습니다.
요 며칠 사이에 우리나라에서 겨울 스포츠를 열었습니다. 늘 관심을 두는 숏 트랙 스케이트 경기입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의 기량이 대단합니다. 세계 무대에서 늘 선두를 질주합니다. 저 선수들처럼 젊다면 나도 한몫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은 예전만 못하지만, 한동안 스케이트에 빠진 일이 있습니다. 스케이트장에 가면 잘 탄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코로나 발생 전까지만 해도 우리 고장에 야외 스케이트장을 열었는데 이후로 볼 수가 없습니다. 잠자는 스케이트를 깨워볼 요량인데 둘러봐도 보이지 않습니다. 추워진 날씨에 고향에 가서 썰매라도 얻어 타야 할까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