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 뭐든지 써본다. 20231217
해가 바뀌면 소설가로 데뷔한 지 15년 차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동안 쓴 에세이는 약 5백 편이라고 합니다. 그는 늘 새로운 소재를 다루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글감을 찾는다는 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번 호를 기점으로 끝을 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직업 작가고 그럴 수는 없는 모양입니다.
3·4년 전에 이미 더 이상 못 쓰겠다고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데 그런데도 2백여 편 정도를 더 썼답니다. 어찌 쓸 수 있었을까. 글을 쓰기 어려워질 때는 욕심이 앞서는 경우라고 합니다. 이제 경력이 붙었으니 좀 더 잘 익은 글을 쓰고자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포기했던 마음을 잡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쓰고 보는 거야’ 글이 엉망이면 나중에 고치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머릿속에서 고민하던 생각들이 모여지고 발전해 속사포처럼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부끄러운 글이 되기는 했지만, 안 쓴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휴지나 다름없는 원고를 매만지고 다듬다 보면 신문의 지면이나 책의 장을 메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써놓은 기억과 생각의 축적이 빚어낸 결과입니다. 시시하고 보잘것없는 글감도 써보면 놓쳐버린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기막히게 풀릴 때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적어도 글쓰기의 세계에서는 완벽한 계획보다 어설픈 실천이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작가가 말했습니다.
‘우선 쓰고 봐야 한다.’
습관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나는 매일 다섯 문장 쓰기에 도전합니다. 도서관에서 글쓰기 강의를 들은 후 수강생들이 모여 글쓰기 동호회를 만들었습니다. 한 달간 하루도 빠짐없이 홈페이지에 각자의 글을 올리기로 약속했습니다.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꾸준히 이어가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나도 이중 한 사람입니다. 성이 차지 않아 버릴지언정 시도라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글을 올리고 보면 오자, 탈자, 어색한 문장들이 보입니다.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남이 잘못된 것을 지적해 주기도 하지만 스스로 발견한 것을 정정해 올립니다. 때에 따라서는 마음에 들지 않아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올린 글을 다시 매만져 봅니다.
비록 부족하고 덜 익었을지라도 시작하지 않는 것보다야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처음에는 자발적이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충동적으로 시작을 했지만, 함께 하는 동안에 경쟁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들의 글을 보면서 내게 필요한 것을 찾아내고 또 소재를 얻기도 합니다.
글쓰기가 점점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입니다. 매일 소재를 떠올린다는 게 생각같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올해는 생각 외로 여러 편의 글을 쓰게 됐습니다. 내용이야 어떠하든 글쓰기의 습관이 정착되었다는 게 큰 수확입니다. 시작은 ‘에세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시작했지만 그동안의 글을 읽어보면 ‘글쎄요’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 글을 읽을 때가 있습니다. 글쓰기 강의 중 과제물이거나 동호회, 그밖에 글이 실린 잡지나 책입니다. 글을 소개할 일이 있으면 되도록 에세이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산문이라고 말하든가, 또는 잡문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왠지 에세이라는 외래어가 낯선 모습으로 다가서기 때문입니다.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의 표현입니다. 내용이 동화적 요소를 담고 있답니다.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에세이의 범주를 벗어나는 게 아닙니까? 나는 아직도 그 경계를 모릅니다. 명확히 구분을 짓기가 어렵습니다. 글쓰기의 시작이 동화였기 때문일까요. 좋게 말해주는 사람들은 서정적인 내용이 깃들어 있다며 내 얼굴을 보기 전까지는 여학생의 글이라는 느낌이 들었답니다. 나는 시와 산문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산문시를 쓰는 사람들을 보면서 에세이와 동화의 경계를 허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어느새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송년회의 모임 소식이 들려옵니다. 글의 소재를 찾기 위해 머리가 분주히 움직입니다. 독서하기도 하고, 밖으로 나가자고 발걸음을 재촉하기도 하고, 신문이나 인터넷을 뒤지기도 합니다. 올해의 목표는 초과 달성했습니다. 건강을 위해 내년의 목표는 올려 잡지 말아야겠습니다. 올해만큼이면 좋겠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와의 약속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뭐든지 써본다.’ 그동안 써놓은 글을 손보는 일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