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얄미운 토끼
“토끼 새끼 낳으면 한 마리만 줄래?”
명식이네 토끼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호야는 토끼를 갖고 싶습니다. 구경했는데 너무나 귀엽고 예쁩니다. 명식이는 토끼를 줄 생각이 없습니다. 호야의 말에 콧방귀만 뀝니다.
“토끼가 얼마나 비싼데 그냥 주냐?”
“그럼?”
“삼십오 원은 줘야지.”
“내가 돈이 없는 걸 알잖아. 친구끼리 뭐 돈을 내고 사야 하나 그냥 한 마리 주면 되지.”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그렇지, 그러면 너는 뭐를 줄래?”
호야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줄 만한 게 없습니다. 한참 생각하다가 머리만 긁적거렸습니다. 우리 집이 가난한 것은 명식도 압니다.
“돈은 없고 그럼 네가 해 달라는 것을 해줄게.”
“정말?”
약속으로 봄에 토끼가 새끼를 낳을 때까지 호야는 명식이가 시키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울화가 치밀고 기분이 상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잘 참았습니다. 추운 겨울에 책보자기를 매일 들어주었습니다. 냇가를 건널 때는 업어서 건너 주었습니다. 또 봄이 되어서는 버들피리를 백 개도 더 만들어 주었습니다. 호야가 친구의 책보자기를 들고 학교에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시고 명식이 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왜 명식이의 책보자기를 매일 들고 다니니?”
명식이가 말했습니다.
“내가 시키는 것을 하면 토끼 새끼를 한 마리 주기로 했거든요.”
“야 이 녀석 봐라, 친구끼리 뭐 하는 짓이야. 네 것이기는 하다 만, 친구인데 한 마리쯤 그냥 주 어도 되겠구먼.”
명식이 아버지도 우리 집 사정을 모를 리 없습니다.
늦은 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호야는 명식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드디어 토끼 새끼를 한 마리 얻을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미루고 미루던 끝입니다. 물론 암놈입니다. 이왕 키울 것이면 암놈을 키워야 합니다. 새끼를 낳게 하여 명식이 토끼 수보다 더 많이 늘리고 싶습니다.
“야, 호야야. 오늘 공부 끝나고 우리 집에 가자.”
“왜?”
“책보자기 들고 가야지. 그리고 풀을 뜯어야지.”
오늘따라 바람도 심한데 토끼풀까지 뜯어 달라고 합니다. 속이 상해 호야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토끼를 얻어야 합니다.
‘나쁜 놈, 몹시 나쁜 놈.’
명식이네 집을 지나칠 때입니다. 그가 빙그레 웃으며 어깨를 툭 쳤습니다.
“토끼 새끼 가져가. 제일 예쁜 놈으로 고르는 것 알지.”
호야는 기뻐서 토끼를 얻자마자 언제 집으로 돌아왔는지 모릅니다. 한달음에 돌아왔습니다.
“고모, 나 토끼 얻었다.”
자랑했지만 고모, 삼촌, 엄마, 할머니 모두 시큰둥합니다.
“병아리라면 몰라도, 병아리는 알이라도 낳지. 토끼는 키워서 뭘 한담 힘만 드는데.”
호야는 닭보다 토끼가 더 좋습니다. 순하고 귀엽습니다. 하는 짓이 예쁘기만 합니다. 하지만 막상 토끼를 키우려니 토끼장이 없습니다. 호야는 토끼장을 만들려고 톱을 가지고 뒷동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만들기에 알맞은 나무를 베어 왔습니다.
‘못이 없어서 어떻게 하지?’
못 통을 찾아보니 다섯 개밖에 없습니다. 어림잡아 보니 토끼장을 만들려면 못이 백 개는 있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생각 끝에 결정을 내렸습니다. 새끼로 토끼장의 나무를 묶기로 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 만들었습니다. 토끼를 넣으니 멋져 보입니다. 토끼는 호야가 생각 한 대로 귀엽고 착하게 잘 자랍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명식이와 토끼풀을 열심히 뜯습니다. 한 달 후입니다. 집으로 왔는데 토끼가 없어졌습니다. 토끼장의 새끼줄을 끊어 버리고 밖으로 나간 게 분명합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습니다. 이틀이 지났습니다. 뒷동산을 보니 토끼가 돌담 위에 앉아 있습니다. 호야가 잡으려고 쫓아갔지만, 대숲으로 달아납니다. 숲 속을 뒤지자, 뒷동산으로 도망칩니다. 며칠 동안 숨바꼭질을 합니다. 붙잡으려고 했지만 잡지를 못했습니다. 담배밭으로 도망갑니다. 쫓아가면 앞산으로 달아납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누구네 토끼가 나왔지? 못 보던 토끼인데.”
그럴 때마다 호야는 말했습니다.
“내 토끼인데 놓치고 말았어요.”
이런 말을 해야 누가 잡아도 찾아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동네 사람들도 우리 집토끼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웃집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집토끼가 산으로 가면 산토끼가 된다는데.”
서리가 내리고 들국화가 한창 예쁜 늦가을입니다. 토끼의 생각을 거의 잊어 갈 무렵 닭 모이를 주기 위해 닭장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입니다. 토끼가 담장 밑으로 내려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때는 이때다 하고 잡으려고 살금살금 쫓아갔습니다. 힐끗 호야를 본 토끼는 닭장 모퉁이를 돌았습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한참 동안 요리조리 찾았습니다.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포기하고 돌아섰습니다. 겨울이 다가오는데 걱정입니다.
‘혹시 얼어 죽지는 않을까, 굶어 죽지는 않을까?’
그 후로도 몇 번 토끼를 발견했습니다. 때마다 잡으려고 쫓아다녔습니다. 어찌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잡을 수가 없습니다. 멀리는 도망가지는 않습니다. 집 둘레에서만 맴도는 것이 신기합니다.
버들강아지가 활짝 피어 꽃가루를 날립니다. 개나리의 꽃망울이 통통해질 무렵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명식이가 나에게 자랑했습니다.
“조금만 있으면 우리 토끼, 새끼 낳게 된다. 네 토끼도 새끼들일 때가 되었지? 우리 집으로 와. 새끼 들여 줄게.”
“으음”
“싫어?”
“그런 건 아니고.”
잃어버렸다고 말하기가 싫습니다.
“언제든지 가져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면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또 물어보면 무엇이라고 변명해야 할지 걱정입니다. 땅만 보며 터덜터덜 길을 따라서 돌아왔습니다.
“야, 호야. 나 토끼 새끼 한 마리 잡았다.”
“어디서요?”
“대나무 숲에서, 그렇지만 호야, 네 것은 아니니까 염려하지 마라. 아주 작은 새끼니까. 작년에 네가 얻어 온 새끼만 하단다.”
“그래?”
“잡고 보니 산토끼는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집토끼라고 해야 할지”
이웃집에 사는 준식 형이 말합니다.
참으로 속이 상하는 일입니다. 호야의 토끼가 지금 있다면 어미 토끼가 되었을 것입니다. 새끼도 낳을 수가 있는데 말입니다. 준식 형이 자랑하고 돌아갔습니다. 토끼를 다시 찾아보기로 하고 뒷동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대나무 숲을 살펴보았습니다. 등성이와 골짜기도 살펴봤습니다. 담배밭과 앞산 기슭도 찾아보았습니다. 보이지 않았습니다. 겨울 동안 얼어 죽었든지 굶어 죽었든지 아니면 짐승에게 잡아먹혔을지 모릅니다.
집으로 돌아와 닭장에서 달걀을 꺼내서 나오는데 뒷담 밑에서 하얀 토끼가 보입니다. 이제는 놓치지 말아야지 하고 살금살금 다가갔습니다. 토끼가 또 보이지 않습니다.
‘토끼 귀신일까? 아니면 잘못 본 것일까?’
두리번거리며 다시 살피는데 바위틈으로 귀가 살며시 보였습니다.
“요 녀석이 여기에 숨어 있었구나.”
중얼거리며 호야는 달려가 바위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아니!’
어미 토끼를 잡아 닭장에 넣었습니다. 새끼들이 따라서 나왔습니다.
한 마리, 두 마리,…… 여덟 마리.
호야는 아무 말 없이 할머니 손을 잡고 닭장으로 왔습니다. 할머니의 눈이 왕방울처럼 커졌습니다.
“어디서 났니?”
“붙잡았어요.”
“어디서?”
“닭장 뒤에 있는 바위굴에서요.”
“할머니 못 좀 구해주세요. 닭장이 비좁아요. 닭들이 토끼 새끼를 귀찮게 해요.”
다음 장날 호야는 삼촌을 따라 장터로 향했습니다. 달걀 한 꾸러미를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