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동네 작은 아이

3. 편지

by 지금은

함박눈이 펑펑 쏟아집니다. 밤새도록 내렸습니다. 아침에도 내립니다. 산과 들과 동구 밖이 온통 눈 속에 묻혔습니다. 고구마를 먹는 점심때가 되었습니다. 함박눈이 또 내립니다. 고구마를 먹고 있는 뜰 가장자리에도 눈이 수북이 쌓입니다. 너무너무 많이 쏟아져 앞산이, 동구 밖이, 건너편 친구네 마을이 보이지 않습니다. 싸리문만 보입니다. 담장에 기대선 눈사람의 얼굴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눈과 코와 입과 귀가 눈에 묻혔습니다. 뒤편에 있는 대나무밭 새들은 소리를 멈추고 모습을 숨겼습니다. 우리 식구들 빼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집안이 쥐 죽은 듯 조용합니다. 고구마 먹는 소리와 김칫국 마시는 소리가 들립니다. 후룩 후루룩 소리만 들립니다. 가끔 우리 누렁 어미 소의 고갯짓에 워낭이 딸랑거립니다.


갑자기 싸리문이 후드득후드득하고 흔들립니다. 쌓인 눈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습니다. 집안 식구들의 눈이 모두 싸리문으로 향했습니다. 눈사람이 들어왔습니다.

“편지요.”

눈사람의 몸은 온통 눈으로 뒤덮였습니다. 모자, 가방, 장갑, 신발도, 눈썹과 검은 수염에도 눈이 매달렸습니다. 집배원 아저씨는 호야에게 엽서를 한 장 건네주고는 돌아갑니다.


호야에게!

잘 있었니?

포성이 멈출 줄 모르는 전선에는 오늘도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단다. 시끄럽게 고막을 때리는 소리가 잠시 멈추었지. 숲 속에는 눈꽃이 활짝 피어났어. 잠자리에 놀라 깼던 산새들도 모처럼 눈 속에 묻혀 잠을 청하고 있단다. 오랜만에 침낭 속에 몸을 감추고 편안한 마음으로 펜을 들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건강하겠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는 산타 할아버지가 너에게 띄우는 편지를 보내 주마. 고지에 세운 태극기도 내리는 눈에 보이지 않고 너보다도 열 배나 큰 눈사람이 산마루에 서 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구나. 삼촌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 오늘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선을 열심히 지키고 있단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면, 네가 무척 보고 싶구나, 삼촌이 휴가 때 만들어 준 썰매는 잘 타고 있겠지? 건강하고 씩씩하게 지내렴, 눈이 쌓였다고 방안에만 있지 마라. 다음 휴가를 가면 새총을 만들어 줄게.

내 친구 김 상병이 귀여운 너를 보고 싶다는구나. 힘들어 잠깐 쉬었던 함박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고향에도 지금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겠지.

호야 안녕!

1952. 12. 5

너를 사랑하는 삼촌이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작은 동네 작은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