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민아
눈이 밤새 내리더니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겨울이 시작되자 난로를 교실에 놓았습니다. 명자, 동주 아버지는 애들이 몹시 추울 거라고 생각됐나 봅니다. 장작을 한 짐씩 학교에 가져다주었습니다. 호야네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호야가 난로 당번이라서 날씨가 춥고 미끄러워도 장작을 짊어지고 학교에 가야만 했습니다.
“내일 가져가면 안 되니?”
“오늘 꼭 가지고 가야 해요. 안 가지고 가면 혼이 나요.”
아직 장작을 가져가지 않았다고 혼이 난 아이는 없습니다. 당번 날짜를 어긴 아이들도 없습니다. 혼이 날지 안 날지는 모르지만, 괜히 혼이 날 것만 같습니다. 엄마 물음에 호야 생각대로 말했습니다.
엄마는 뒤꼍에 있는 마른 장작을 새끼로 꽁꽁 묶어서 등에 얹어 주었습니다. 동구 밖에서 기다리던 동주와 정은이는 벌써 학교에 갔나 봅니다. 아이들의 발자국이 눈 위에 차례로 찍혀 있는 것을 보면 짐작이 갑니다. 어제 나무를 묶어 놓을 걸 그랬나 봅니다. 호야는 부지런히 눈 위를 달려갑니다. 어쩌면 중간에 동주와 정은을 만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조금만 기다리다 가지 저희끼리만 갈게 뭐람.’
숨이 차도록 달려가지만 보이지 않습니다. 산 고개를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 맺힙니다. 벌써 몇 번을 미끄러져서 넘어졌는지 모릅니다. 만복골 앞 내의 징검다리는 얼어서 햇빛에 반짝입니다. 여기를 건너갈 수가 있을까? 보통 때 같으면 ‘펄쩍’ 뛰어서 건너가던 다리입니다. 미끄러우니 건너뛸 수 없습니다. 잠깐 망설이다가 그냥 건너가기로 했습니다. 펄쩍 뛰고 움츠렸다 또 펄쩍 뛰었습니다. 하지만 징검다리는 호야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징검다리는 호야를 받아주지 않고 냇물로 빠뜨렸습니다. 미끈하고 발이 미끄러졌습니다. 장작을 등에 진 채로 냇물에 주저앉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갈까?’
돌아가기에는 너무 멉니다. 학교가 훨씬 가깝습니다. 집을 나설 때부터 발이 시렸는데 학교가 가까워질수록 내 발이 아닙니다. 양말도 신발도 바지도 동태가 되었습니다. 귀도 코도 얼어서 사과가 되었습니다. 너무 추워서 눈물이 납니다. 콧물 한 방울이 신발을 향해 떨어졌습니다. 옷소매로 닦았습니다. 교실에는 정은이도 동주도 없습니다. 학교 앞에 사는 친구들이 벌써 와 난로 주위를 차지했습니다.
‘불 좀 쬐자.’
친구들은 비켜 줄 생각이 없습니다. 나쁜 놈입니다. 내 젖은 옷과 발을 보면서도 비켜 주지 않습니다. 할 수 없이 창가의 책상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발을 들어 햇볕을 쬈습니다. 이빨이 덜덜 부딪칩니다. 두 발끝이 가만히 있어도 떨려서 흔들립니다.
드르륵하고 갑자기 교실 문이 크게 소리를 내며 열렸습니다. 안 봐도 민아입니다. 내 곁으로 다가와서 제 책상에 책보를 내려놓고 쳐다보았습니다.
“야, 너 불도 안 쬐고 왜 그래, 화났니. 그런데 양말과 바지가 왜 그래?”
대답하지 않는 나를 내버려 두고 손을 비비며 난로 가로 갔습니다.
“불 좀 쬐자.”
아이들은 들은 척도 안 하고 난로를 막고 비켜 주지를 않습니다.
“불 좀 쬐자. 불 좀.”
나를 다시 돌아보고는 다가와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나쁜 자식들.”
난로 가에 둘러앉아 있는 아이들의 등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난로 바깥쪽을 향해 밀어붙였습니다. 나머지 아이들은 슬금슬금 물러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바보 멍청이, 너 내가 말할 때까지 꼼짝 말고 있어.”
민아는 내 손을 끌어다 난로 앞에 세웠습니다. 말괄량이 민아는 키가 크고 힘이 셉니다. 남자 친구들이 함부로 덤비지 못합니다. 화가 나면 붙들어서 내동댕이칩니다.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셨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자리에 앉아 책을 펴놓았습니다. 난로 가까이 다가오신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호야는 왜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지?”
고개를 숙였습니다. 내 모습을 보신 선생님은 말없이 교탁으로 가셨습니다. 둘째 시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귓속말로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리로 돌아가야지.”
선생님을 한 번 쳐다보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세 시간째입니다.
“자리로 들어가야지.”
“또 쳐다보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네 시간째
“이제는 그만 들어가 공부해야지.”
김이 무럭무럭 나던 바지가 이미 말랐습니다. 양말도 말랐습니다. 해가 나자, 교실이 따스해지고 난로 옆은 더워서 땀이 납니다. 이마에도 코에도 목에도 땀이 납니다. 등에도 배에서도 땀이 납니다. 교실에 들어올 때처럼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넷째 시간이 끝나고 선생님이 소리쳤습니다.
“집에 안 가니? 들어가서 책보 싸야지.”
그렇지만 책 보는 풀지도 않았습니다.
‘민아가 말할 때까지 꼼짝 말라고 했는데.’
선생님보다도 더 무섭습니다. 그렇지만 민아는 말도 없이 책보를 허리에 매고는 교실을 나섭니다.
‘나는 언제 집에 가라고, 하루 종일 교실에서 있으라는 것일까.’
선생님이 다가오셔서 책보를 어깨에 매 주었습니다. 신발을 신겨 준 후 교실 밖으로 떠밀었습니다. 호야는 떠밀리자 그대로 집을 향해 달렸습니다. 바짓가랑이에서 나던 김이 이번에는 코에서 입에서 나옵니다. 명식이네 누렁소의 콧김보다도 더 셉니다. 만복골 징검다리에서 동주와 정은이가 같이 가자고 했지만, 그냥 달렸습니다. 넘어지면서도 달렸습니다. 멈추면 눈물이 신발에 떨어질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