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늘은 2023

322. 나이를 먹는다는 게 20231222

by 지금은

어느새 연말이 되었습니다. 오늘이 동지입니다. 밤의 길이가 일 년 중 제일 긴다는 절기이고 보면 내일부터는 태양이 서서히 봄에게 손짓을 하지 않을까 합니다. 노루 꼬리만큼 줄어들던 낮이 초승달이 차오르듯 조금씩 늘어날 것입니다. 동지에 얽힌 여러 가지 이야기를 찾다 보니 나이에 관한 말도 있습니다. 나이 듦을 좋아하는 사람의 생각인지는 몰라도 설날보다 앞서 한 살을 더 먹는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라면 이 말이 좋았을 겁니다. 빨리 성장하고 싶었습니다. 어른이 되면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가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뒷맛이 좋지 않게 느껴져 팥죽을 싫어했지만 나이가 늘어나는 것에는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낯선 장소에서 친구들을 사귈 때는 엉뚱하게도 그들보다 한두 살 높여 말하곤 했습니다. 나보다 한 수 더 뜨는 친구도 있습니다. 성인이 된 후의 일입니다.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처음으로 참석했을 때입니다. 고향을 떠나 한동안 헤어져 살다 보니 서로의 얼굴을 까맣게 잊고 지냈습니다. 30여 년이 지난 그들의 얼굴은 많이 변했습니다. 이름이 가물가물 친구도 있습니다. 그들은 나를 용케도 알아보았습니다. 어릴 때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답니다. 맨 앞자리에 앉아있다 보니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키가 작았던 만큼 나이도 자신들보다 어려 보였나 봅니다. 모두들 형님 행세를 하려고 합니다. 첫날이니 그러려니 하고 지났지만 자주 만남이 이어지자 예전처럼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형님한테 까불면 안 되지.”

농담 삼아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나라고 해서 그냥 넘어갈 수야 있겠습니까. 다음에는 선수를 쳤습니다.

“제수씨는 잘 있고.”

6·25 전쟁이 끝난 몇 년 후라 나라의 사정이나 가정 형편이나 어려울 때입니다. 제 나이에 학교에 입학을 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동창 중에는 형과 나이가 같거나 그보다 더 위인 사람도 있습니다. 철 모르는 시절이니 같은 학년이라고 너니 나니하고 지냈지만 철이 들고부터는 말을 놓는 게 마음에 걸립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나이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형님 같은 친구, 누나 같은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꼽습니다. 여자가 셋, 남자가 다섯이나 됩니다. 중학년 때 입학해서 함께 공부를 했지만 연장자 중에는 여섯 살이나 많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 동창은 삐쳤습니다. 철이 들어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때가 됐는데도 어른대접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동창회에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농담 좋아하는 친구가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답니다.

나는 고향에 자주 가지 않는 관계로 그곳의 친구들을 잘 모르고 지냅니다. 수도권에 살고 있는 동창들과 소통을 하며 지냅니다. 하루는 한 친구가 시비 아닌 시비를 겁니다. 자신이 나이가 더 많으니 형님대접을 받아야 한답니다. 함께 있는 친구들 중에 나이가 가장 낮습니다. 나를 지목한 이유는 동창 중에 제일 어릴 것이라는 짐작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나이를 꼭 따지고 싶어 하는 눈치이니 내가 먼저 말했습니다.

“나 소띠인데 너는.”

“무슨 호랑이 띠 정도는 되겠지.”

의심이 가면 신분증을 함께 내놓고 확인하자고 했습니다. 도토리 키 재기입니다. 그래도 내가 몇 달은 앞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친구의 표정이 변했습니다. 탄로가 났습니다. 같은 나이지만 또래 중에 막내로 확인되는 순간입니다. 몇 사람도 준비한 신분증을 슬그머니 감춥니다.

“형아들한테 까불면 안 돼요.”

등을 두드렸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이 듦이 부담으로 느껴집니다. ‘나이 값은 해야지 않겠어.’ 어른이 된다는 게 좋았는데 이제는 어린이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내 행동, 내 말씨에 부담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실수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제대로 처신하고 있는지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기에 자주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나잇값의 뜻풀이는 ‘나이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을 낮춰 부르는 말’입니다. ‘나잇값을 한다’와 같이 긍정적으로 쓰일 때도 있지만 ‘나잇값도 못하는 주제에’ 등 부정적인 말로 쓰일 때가 더 많습니다. 비호가 단어에 ‘나잇살’도 있습니다.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이’하며 혀를 끌끌 차면 다음의 말은 어떻게 전개될지 뻔합니다.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대답하기가 싫습니다. 얼버무리는 때도 있습니다. 낮춰서 말할 때도 있습니다. 상대편이 내 얼굴을 바라봅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을.”

나이를 그의 외모에 맞게 낮췄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봐도 오라버니쯤 될 거랍니다. 빙그레 웃는 것이 대답입니다. 함께 늙어가는 처지인데 꼭 따져야겠습니까. 어려서야 몇 개월의 차이가 크다지만 지금은 일 년의 빛이나, 그 이상의 빛이어도 그게 그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득도는 하지 못했어도 그냥 어울림이 중요한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 나이를 따질 사람은 아내밖에 없습니다. 살가운 마음입니다.

“당신도 내 나이 돼 봐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오늘은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