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 택배의 시간 20231223
현관문을 열어봅니다. 두 번이나 열었습니다. 바닥을 둘러봅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곧 도착할 것이라는 택배 문자가 떴는데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럴 거면 알림을 하지말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너 시간이 지나서야 물건을 들여놓을 수 있었습니다. 꼭 정해진 시간은 없지만 알림 문자가 뜨면 기다려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탁구를 하고 아파트 아래층 현관을 들어서려는데 저만치 끌차가 보입니다. 두 대에 짐을 가득 실었습니다. 겨울이라 바람막이 문이 작동을 합니다. 잠시 기다렸다가 문을 열었습니다. 택배 기사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습니다. 어제오늘은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 될 거라고 하더니만 기상 예보관의 말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우리 고장의 기온이 영하 14도나 되었습니다. 눈이 내린 터라 빙판길 사고가 연이어 보도됩니다. 낙상사고도 있지만 자동차 사고가 주를 이릅니다. 전국적으로 미끄러짐 사고로 크고 작은 인명피해를 보았습니다. 닭을 싣고 가던 화물차가 중앙분리대에 부딪치며 넘어져 3천여 마리의 닭이 길에 흩어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택배 기사들의 일상이 심심찮게 뉴스에 오르내립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쉴 틈 없는 고된 노동이라고 합니다. 여름에는 여름대로 겨울에는 겨울대로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여름에는 더위로 고생을 하고 겨울에는 추위로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삶을 위한 배달 일이라 수월한 게 아닙니다.
특히 오토바이로 음식을 배달하는 기사들은 촌각을 다투는 일이다 보니 사고가 많습니다. 신호위반을 하거나 인도나 차도를 구분하지 않고 다니는 통에 일반인들의 위험도 있습니다. 며칠 전에 어린이 놀이터 옆에서 공을 가지고 운동을 하고 있는데 음식을 배달하는 오토바이 기사가 앞을 쌩하고 내달려 놀이터를 지나갑니다. 인도이고 아이들이 수시로 왕래하니 오토바이나 자전거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문구와 보호대 설치가 인도를 일정 부분 막고 있지만 어떤 기사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빠르게 지나가서 제지하거나 말할 틈이 없습니다. 잠시 후 되돌아오는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들려 길을 가로막았습니다.
“글씨를 읽을 줄 모르시나 봐요.”
손가락으로 가림 막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급해서 그렇답니다. 거리낌 없는 표정입니다. 며칠 전에 사고가 있었다며 주위를 당부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나쳐갑니다. 그의 사정으로 보아서는 이해가 가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건 아니다 싶습니다.
우리 아파트 단지는 울타리가 없는 개방형입니다. 출입구가 사통팔달입니다. 가끔 아파트 홈페이지에 문자가 뜹니다. 단지 내 오토바이 출입으로 위험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단속을 하자고 하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정해진 시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보면 지킴이가 있어야 하는데 여러 면에서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음식을 배달시키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역시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두가 내 마음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에서는 여태껏 음식을 배달시킨 일이 없습니다. 내 방식대로 한다면 굳이 오토바이의 통행을 막기 위한 문구나 시설물을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배달을 시키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각각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 저러고 배달 일을 하는 사람들이 미끄럽고 추운 날씨에 아무런 사고 없이 지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의 일입니다. 설날을 앞두고 아랫집에 사는 삼촌의 부탁입니다.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 나들이를 해야 하니 방앗간에 가서 가래떡을 만들어 왔으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눈이 무릎까지 쌓였습니다. 추위가 매섭습니다. 어제오늘만큼 이나 추었습니다. 아침에 세수를 하고 문고리를 잡았는데 물 묻은 손이 쩍 달라붙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깜짝 놀라 재빨리 손을 떼었습니다. 시루를 지게에 지고 방앗간을 향해 나섰습니다. 목도리로 얼굴을 감싸고 눈만 내놓았지만 바람은 나를 미워하기라도 하는 듯 눈으로 사정없이 휘갈겼습니다. 오고 가는 길은 평소보다 몇십 배나 멀어 보였습니다. 지루한 시간이었습니다. 동상이 걸릴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몸을 녹이는데 전신이 저리고 아팠습니다.
배달도 심부름의 일종입니다. 이들뿐만 아니라 추위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야외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 분들입니다. 다치거나 동상에 걸리는 일 없이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엘리베이터의 멈추는 소리가 들립니다. 재빨리 문을 열었습니다. 얼굴을 익힌 사이이니 인사를 나눕니다. 물건을 받아 들었습니다.
“추위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일회용 종이컵에 든 커피를 내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