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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

320. 한 해를 보내며 20231222

by 지금은

저녁에 생선을 먹다가 문득 낯선 생각이 들어 젓가락을 멈췄습니다. 물고기들은 저 바늘 같은 가시를 몸에 지니고 어떻게 살 수 있을까. 굳어있는 살과 뼈를 눈여겨봅니다. 딱딱해서 그렇기는 하겠지만 불편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가시가 몸의 모양을 지탱해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로 인해 부자연스러운 일도 있을 것입니다. 좁고 굴곡이 심한 곳을 다니기에는 불편을 각오해야 되지 않을까 합니다. 문어나 꼴뚜기라면 어떨까. 잡다한 생각이 꼬리를 뭅니다. 이게 뭡니까. 선인장이 눈앞으로 다가옵니다. 가시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니 더운 사막지대의 선인장은 실로 대단합니다. 집에서 화초로 키우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합니다. 내 키의 몇 배나 됩니다. 몸통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시도 몸집만큼이나 길고 뾰쪽합니다. 송곳대신 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늘이 아프겠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사막의 선인장은 자라면 나무 같아서 집을 지을 수 있는 기둥으로 쓸 수 있다는 이야기에 설마 하고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말씀하신 선인장을 실제로 본 일이 없고 그림으로라도 대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식물들의 생태를 설명하시면서 우리들의 호기심을 끌어내기 위한 이야기려니 했습니다. 며칠 전 사진작가가 멕시코와 볼리비아를 여행하면서 사막의 선인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선인장 가까이 다가가자 그늘이 그를 감쌌습니다. 큰 나무기둥 앞에 서 있는 모습입니다.

선인장은 더위를 피하느라 힘들어 하느님께 항의의 표시로 가시를 내밀고 있겠지, 물고기는 자신의 어려운 속내를 감추기 위해 몸속에 가시를 숨기고 있겠지. 자연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변모된 것임을 알면서도 추측의 꼬리를 이어갑니다. 나는 생각하는 사람인지, 공상가인지 분별이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내 몸속에도 가시가 있을까. 추측해 보건대 이런 것은 없습니다. 내 몸이나 남의 몸이나 생김새가 같으니 하는 말입니다. 인간의 골격을 나타낸 그림을 보면 뼈가 살 속에 숨겨 있지만 생선이나 선인장의 가시같이 날카로운 것은 없습니다. 대신 우리는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가시 하나쯤은 숨기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남을 시기하고, 때에 따라서는 마음의 상처가 되는 말을 하고, 서로에게 해를 입히기도 합니다.

선인장이나 가시가 있는 식물들은 남에게 먼저 해를 끼치는 일은 없습니다. 자기가 살아가기 위한 방어의 수단이라고 해야겠습니다. 더위에 살아남기 위한 변모입니다. 또한 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나는 엄나무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가시가 많기로 치면 이만한 나무도 드뭅니다. 온몸이 가시투성이입니다. 오죽하면 예로부터 귀신의 침입을 막고 질병이나 전염병을 예방하는 데 사용해왔겠습니까. 한방에서는 관절염을 치료하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새순은 식용으로, 나무의 껍질은 약재로 사용합니다. 잎은 섬유질과 미네랄, 비타민C 등이 풍부하여 체내 독소와 노폐물 제거에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간 기능 회복 등 많은 이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어릴 때입니다. 어른들은 일찍이 이런 효능을 알고 있었나 봅니다. 나무를 잘라다 벽에 걸어놓기도 하고 삶은 물을 먹기도 했습니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엄나무를 만지다 찔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억센 가시만큼이나 내 피부가 쓰리고 아렸습니다. 탱자나무 가시와 견주어도 막상막하입니다.

살아오는 동안 나는 이것들만큼이나 많은 가시들을 마음에 지니고 살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의 행동이 괘씸하다고 밀쳐내기도 하고 멀리 달아나기도 했습니다. 누군가의 말에 마음의 상처를 입고 며칠 몇 날을 끙끙댔던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들보다 더 많은 가시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요 근래에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상대의 얼굴 표정을 어둡게 하고, 눈물을 쏟게 한 일도 있습니다. 다 늦은 나이에 철들었다고 할까요. 사과를 하고 싶은데 어느새 세상을 떠난 사람이 있습니다. 보고 싶은데 찾을 수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까이 두고도 선뜻 사과를 할 수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몸으로 부딪쳐보는 겁니다. 말 대신 자주 보면서 화해의 손짓을 합니다. 이해가 다 가고 있는데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서서히 풀어가야겠습니다. 그보다 앞으로는 상대에게 가시를 내미는 일은 삼가야겠습니다.

최소한 생선이 몸속에 가시를 품고 있지만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처럼, 선인장이 가시를 가지고 있지만 오로지 자신을 보호하는 것으로만 사용하는 것처럼 나 또한 그렇게 지내기로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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