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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

325. 올해를 되돌아보며 20231224

by 지금은

화이트 그리스마스가 될 거라고 하더니 밤새 흰 눈이 내렸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 있었더니만 늦잠이 들었나 봅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날이 환하게 밝았습니다. 9시가 넘었군요. 눈 때문인지 방안이 더 환하게 밝습니다.

스마트 폰을 켰습니다. 여기저기서 음악이 도착했습니다. 문자가 차지하던 날과는 달리 음악이 차지했습니다. 축하의 인사입니다. 특별히 축하를 받을 일은 없지만 금년을 무사히 지냈다는 의미라 여겨집니다. 인사에 앞서 보내준 음악을 들어봅니다. 경쾌한 음색에 앞날이 밝아질 것만 같습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환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고맙습니다. 나를 아는 사람을 비롯한 모두에게 마음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올 한 해는 무난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별히 내세울 것은 없지만 몸이 불편하다 불편하다 하면서 신경 쓰다 보니 더도 덜도 아닌 고만큼의 건강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움직이는 만큼 앞으로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합니다. 어느 해보다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냈다고 생각합니다. 마구잡이 그림이기는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백지 공책을 가득 메웠습니다. 사진도 많이 찍었습니다.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화면이 좋아 보인다 치면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림책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글도 많이 썼습니다. 가치로 따진다면 뭐라고 말할 수 없어도 나름대로 하루에 한편을 쓰도록 노력했습니다. 때로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흐름이 괜찮았습니다. 골짜기의 물이 계곡을 지날 때 몸부림을 쳤는데 강에 이르러서는 그냥 몸을 맡기듯 말입니다. 어느 정도 쓰기의 부담에서 여유가 생겼다고 말해야겠습니다.

시간의 흐름은 시간의 축적으로 인식된다는데 내 글쓰기가 여기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크지는 않다고 해도 결과물이 쌓여갑니다. 에피소드가 많을수록 시간이 길게 느껴지고 재미있는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이 더 건강하고 오래 살 확률도 높아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화자찬이지만 내가 이에 속하지 않을까 합니다. 부지런히 달려온 때문입니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나 자신에게 감사의 선물을 해야겠습니다. 낡은 책가방을 바꾸고 싶습니다. 글이 늘어날수록 에피소드가 알알이 숨어듭니다.

오랜만에 식구들과 외식을 하러 갔습니다. 길게 늘어선 식당가에는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로 붐빕니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쏟아져 나왔다는 느낌이 듭니다. 매서운 추위가 다소 풀려서일까 아니면 코로나 19가 물러난 영향인지 모르겠습니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번화가가 썰렁했습니다. 명동이, 남대문 시장이, 종로 거리가 한적했습니다. 눈에 잘 뜨이지 않던 대형 크리스마스트리도 늘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식구들과 떨어졌습니다. 읽어야 할 책을 빌리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습니다. 평소보다 사람이 적습니다. 크리스마스 전날입니다. 일요일과 겹쳤습니다. 내일까지 이틀이나 쉬게 됩니다. 즐거운 시간을 갖기 위해 영화관이나 카페로 갔거나 야외로 눈을 돌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잠시 빌린 책의 머리글을 읽어봅니다. 앞문장입니다. 느림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이다. ‘성격이 아니라 선택이다’라는 흥미로운 글귀에 끝까지 읽었습니다. 정해진 시간을 앞당기지 말고 시간에 쫓겨 허둥대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재촉과 압력에 따르는 사회에서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하루빨리 시작할 과제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만의 속도에 맞추어 살아야 한답니다. 하지만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니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좀 더 미루어 놓고 생각해 볼 일이라 생각합니다.

나는 오늘도 아내에게 지적을 받았습니다. 나만의 시간을 갖겠다고 했더니만 오랜만에 함께 나왔는데 잠깐도 못 참느냐고 합니다. 이제는 한 박자, 아니 반 박자 쉬는 삶은 어떻겠느냐고 합니다. 식사를 끝내고 커피숍에서 차를 한 잔 마실 동안입니다. 디저트가 나왔는데 재빨리 내 목을 먹었습니다.

“더 드세요.”

고개를 저었습니다. 서두르는 게 탈이랍니다. 젊어서의 습관이 몸에 밴 탓입니다. 대충 먹고, 아니 후다닥 먹고 출근해야 합니다. 출퇴근 거리가 멀고 교통편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 살며 시골로 출근하다 보니 생겨난 일입니다. 가면 오는 생각 오면 가는 생각을 하며 살았습니다. 이제는 출근할 일이 없으니 느긋해도 되겠지만 맘 같지 않습니다. 나는 상황을 잘 느끼지 못하지만 아내는 성급한 내 행동이 종종 마음에 쓰이는 모양입니다.

밖으로 나오니 공원에 사람들이 많이 나와 눈을 즐깁니다. 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나도 이들 틈에 끼어 풍경과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언덕에서 눈썰매를 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미끄러지고 뒹구는 모습이 내 어린 시절을 보는 듯합니다.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의 표정을 보며 함께 웃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눈과 놀다가 왔어요.”

내년에는 좀 느긋한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내일부터, 아니 지금부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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