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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

326. 크리스마스 선물 20231225

by 지금은

몰래 감추었다 보여주고 싶었을까요. 크리스마스이브의 아침입니다. 일찍 일어났는데 밖이 하얗게 물들었습니다. 밤새 흰 눈이 소복이 쌓였습니다. 지붕은 물론 나뭇가지도 새하얗습니다. 내리는 눈을 보고 싶었는데 미련이 남습니다.

도서관을 간다는 핑계로 공원을 거닐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눈사람을 만드는 엄마, 산타클로스라도 된 양 아이를 태우고 눈썰매를 끄는 부모, 짝을 지어 눈을 밟는 젊은이들의 불규칙적인 발걸음, 나는 휴대폰을 들고 멋진 모습을 담고 싶어 범인을 찾듯 그들의 모습을 엿봅니다.

너무나 열중한 나머지 한 소리 들었습니다.

“찍지 마세요. 초상권 침해입니다.”

두 모녀가 눈사람을 만들고 있습니다. 다정해 보이기에 뒤로 다가섰습니다. 휴대폰을 꺼냈습니다. 휴대폰을 켤 사이도 없이 회침이 찾아왔습니다. 순간적으로 움찔했습니다. 목소리가 너무도 강렬했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멀찌감치 물러났습니다. 모습을 찍지는 않았지만 말을 나누다 보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 같습니다. 사진 기술과 휴대폰의 사진 기능이 발달하면서 초상권에 대한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사전에 의향을 물어봐야 했었는데 손이 보다 급했나 봅니다.

크리스마스 날에는 전국적으로 눈이 제법 내릴 거라고 했습니다. 침대 속이 따뜻해서 엉기적거리다 늦게 일어났는데 밖에 바람이 날려 먼지라도 날리는 듯 희뿌옇습니다. 창밖을 내다봅니다. 눈발이 흩날립니다. 눈이 내리는 게 아니라 공중부양을 하면서 아파트의 벽을 따라 다시 오르고 있습니다. 눈이 내린다고요, 아니 오르고 있습니다. 눈앞의 모습입니다.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종종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눈뿐이겠습니까. 비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람이 거센 날은 떨어지던 빗방울이 다시 하늘을 향해 솟아오릅니다. 바람이 세찬 날입니다. 우리 집은 옆집에 시야가 가려있습니다. 기역자의 형태로 벽이 꺾여있습니다. 바람이 심한 날에는 공기가 앞집 벽에 부딪쳐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상승합니다. 고기비늘 같은 눈이 너풀너풀 나비처럼 날아오릅니다. 손으로 받아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통유리로 되어 있으니 손을 내밀만한 곳이 없습니다. 빈 공간에 손바닥을 내밀어 눈을 받아보는 흉내를 냅니다. 입을 벌려 혀를 내밀었습니다. 어렸을 때 눈이 내리면 종종 하던 짓입니다. 눈발이 내 혓바닥에 내려앉습니다. 차가운 느낌이 듭니다. 재빨리 혀를 거두었습니다.

나는 지금 동심에 갇혀 있습니다. 밖으로 나가야겠습니다. 집 앞에 있는 중앙공원을 한 바퀴 돌아야 합니다. 낮이지만 크리스마스 날이니 보트장을 비롯하여 유엔 광장에는 트리의 불빛이 반짝이지 않을까 합니다.

‘낮에도 별이 내린 거야? 아니, 밤새 내린 별이 트리의 불빛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르지 못했을지도 몰라.’

어젯밤 벗어놓은 긴 양말을 집어 들었습니다. 묵직한 느낌이 듭니다. 선물이라도 하는 생각이 듭니다. 초등학교 일 학년 때입니다. 크리스마스 무렵이 되자 학교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착한 아이에게는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가지고 온단다. 집으로 돌아와 선물을 받고 싶은 생각에 목이 긴 양말을 찾았지만 없습니다. 할머니께 말하자 산촌에 그런 양말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산타할아버지 이름을 들어본 일이 없다고 하시면서도 대신 새 버선을 내주셨습니다.

“서울처럼 잘 사는 동네면 모르지만 이거라도, 혹시라도 아니!”

크리스마스 날 일찍 버선을 열어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 동네는 너무 멀어 산타할아버지가 오시려면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주일이나 기다려봤지만 버선은 늘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목이 긴 양말, 혹시라도 하는 동심에 겉면을 만져보았습니다. 각저 있습니다. 딱딱합니다. 초콜릿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내가, 아들이, 그 누군가……. 손을 쑥 넣었습니다. 낯익은 느낌입니다. 내 휴대폰이 들어있습니다. 누가 넣은 걸까, 내가 아니지.

“누가 내 양말에 휴대폰을 넣어놨어요?”

“내가 넣었지요. 찾지 말라고.”

밤늦게 거실 창가에 놓여있었답니다. 밖을 내다보다 무심코 내려놓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스마트 폰을 켰습니다. 밤새, 이른 새벽 문자와 크리스마스 노래가 한가득 담겼습니다. 친구, 친척들이 보낸 것들입니다. 동호회에서 보낸 것도 있습니다. 아침도 잊은 채 하나하나 챙겨봅니다. 꺼내고 꺼내어 보아도 양말 가득 맘에 드는 선물입니다.

“나 밖으로 나갑니다. 공원 다녀오겠습니다.”

“잠깐만요.”

아내의 말소리가 뒤를 따릅니다. 아직도 화이트크리스마스 선물이 도착합니다. 눈이 녹지 않았습니다. 눈발이 풍선처럼 하늘을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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