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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

327. 사라지지 않는 감기 20231235

by 지금은

갑자기 아들이 쿨럭쿨럭 기침합니다. 공휴일 늦은 밤입니다. 병원에 갈 수도 없고 약국 문도 닫힐 시간입니다. 무심코 책을 보다가 잦은 기침 소리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합니다. 느낌이 이상하면 미리 조처할 것이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밤새 고생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자정을 넘길 시간입니다. ‘맞아’ 하는 생각 떠올랐습니다. 그 생각을 왜 하지 못했는지 모릅니다. 냉장고 문을 열었습니다. 쌍화탕이 한 병 있습니다. 저번에, 학습관에 갔을 때입니다. 강사분이 추운데 드시라며 하나 주었는데 마시기가 싫어 가방에 넣어서 왔습니다.

커피 주전자에 물을 끓였습니다. 목이 긴 물컵에 쌍화탕 병을 넣고 물을 채웠습니다. 뚜껑을 덮었습니다. 5분 여가 지나서 꺼내보니 따끈한 기운이 돕니다. 방문을 노크했습니다. 책상에 앉아 아직 무엇인가에 열중입니다.

“따뜻한 쌍화탕 마셔봐.”

“웬 거예요.”

비상용이라며 내밀었습니다. 따뜻하다며 이유를 묻기에 중탕했다고 했습니다.

요즘은 코로나 감기가 물러간 대신 독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병원에 독감 환자가 많이 찾아온답니다. 심하면 폐렴으로 전이된다며 조심하라고 합니다. 코로나를 예방하기 위해 마스크를 오랜 기간 착용한 결과랍니다. 급한 둑을 막으니 다른 둑이 터지는 현상이 나타났나 봅니다. 무조건 조심해야 하는 게 상책입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마스크를 쓰려고 주머니에 넣고 예비로 가방에도 넣어서 다닙니다.

유럽 여행을 마치고 비행기에 탑승했을 때입니다. 아내 옆 좌석에 앉으려고 신청했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중앙에 나는 몇 미터 거리의 창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떨어져 있기는 해도 활동이 자유롭습니다. 복도 쪽이니 화장실을 다니기는 물론 긴 여행에 중간중간 일어나 스트레칭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잘됐다 싶었습니다. 아내까지 옆자리라면 더 좋겠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보니 어쩔 수 없습니다.

비행이 시작된 지 한 시간 남짓 지났을 무렵입니다. 아내가 상기된 얼굴로 나를 찾아왔습니다.

“큰일 났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심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옆자리에 앉은 승객의 기침이 예사롭지 않답니다. 쉬지 않고 콜록대는 통에 시끄럽기도 하지만 전염이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메르스 감기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무렵 메르스가 번져 온 세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나와 그 사람이 자리를 바꾸면 좋겠답니다. 기침이 심해 힘들겠다며 넌지시 말을 걸었습니다. 창가 복도 쪽이 트여서 여행하는 데 좀 낫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며 증세를 물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시작된 기침이어서 아직 결과를 모르겠답니다. 다행히 우리나라 사람이라 말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꼭 끼어있어 답답하다는 말과 함께 자리를 바꿔주는 것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내가 아내 옆으로 다가가 앉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밝은 얼굴로 환영했습니다. 그 사람이 앉아있는 옆 사람과 앞뒤 사람은 반대의 표정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비행기에 머무는 동안 그 사람이 메르스에 걸린 것이 아니기를 빌었습니다.

내가 여행에서 돌아온 후 안과 진료기록을 보험사에 제출하려고 병원을 찾았을 때 몇 시간 동안 생각지 않은 일로 붙잡혀 있어야 했습니다.

“중동지방 여행 하셨어요?”

“아뇨.”

하지만 여행 기록이 나와 있다며 나를 격리시켰습니다. 두바이에서 비행기를 갈아탄 게 문제였습니다.

병원의 한 구석 외딴곳입니다. 방호복을 입은 사람이 내내 나를 지켰습니다. 여행지가 다르다는 것이 판명되기까지 여러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러는 동안 서류는 그들의 손에 의해 작성되고 내 손에 들려졌습니다. 착오가 있었다며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풀려났습니다.

다음에는 사스라는 전염병이 나라를 뒤흔들었습니다. 그다음으로는 우리가 최근에 겪은 코로나19 전염병입니다. 1377년부터 몇 년 사이 유럽을 휩쓴 페스트 이래 최악의 전염병으로 일컬어집니다. 코로나의 기세는 지구의 인류를 멸망시킬 것 같은 공포를 불러왔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인류는 서로의 거리를 띄워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전염되어 사망하고 아픔에 신음했습니다. 우리 식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모두 한 차례씩 전염되어 홍역을 치러야 했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해도 새로운 현상 앞에는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고 새로운 병원균을 막아내게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세균에 의해서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당하고 마는 현실입니다.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전염병은 앞으로도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다가올지 모릅니다. 늘 평소에도 준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크리스마스이브입니다. 눈이 내립니다. 내일까지도 날릴 거랍니다. 모든 것이 눈에 덮이듯 전염병도 흰 눈에 덮여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새해에는 걱정거리가 찾아오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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