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 개 같은 인생 20231227
별로 마음에 드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개는 만만했습니다. 소, 말, 돼지, 닭 등에 비해 대접받지 못했습니다. 대접은커녕 화풀이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복날에 사람들의 원기 회복의 산물로 쓰였습니다.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개만도 못한 놈’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그만큼 우리 주위에서 업신여기는 동물 중의 하나였습니다.
읽은 책 중에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생각납니다. 견유학파입니다. 견유학파를 키니코스라고 하는데 그리스어의 ‘개’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말로 개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견유학파 철학자들은 실제로 반나체의 상태로 거리를 활보했답니다. ‘신은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디오게네스의 생각입니다. 이러니 필요한 것이 적을수록 신에게 가까워진다고 생각한 그는 실제로 집도 없이 통 속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과의 일화입니다. 소문을 듣고 디오게네스를 찾아갔습니다. 내가 그대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겠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디오게네스는 태연스레 햇볕을 가리고 있으니 좀 비켜달라고 말했습니다. 제아무리 대단한 왕이었어도 그에게 해줄 것이 없었습니다. 디오게네스가 필요로 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알렉산드로스가 아니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이밖에 대낮에 등불을 들고 다니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잠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요즘 애완견들이 사람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개라는 비속어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개 같은 세상, 개 같은 인생, 개 같은 소리, 개 같은 놈, 개새끼, 개만도 못한 놈’ 사람들 사이에 격한 감정을 나타낼 때 개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수치스러운 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쌍욕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아무리 막돼먹은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개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이 듭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생일파티를 하는 가족을 봤습니다. 부부와 자녀 등 일가족이 생일 현수막과 축하 풍선을 내걸고 케이크와 간식으로 생일상을 차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주인공은 귀여운 반려견입니다. 가족들은 주인공을 가운데 두고 손뼉 치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부릅니다. 나에게는 이색적인 모습으로 비치는 반려견인의 가족 행사입니다. 아이 낳기를 싫어하는 세태를 보며 씁쓸한 생각이 듭니다.
통계에 의하면 열 집 중 두세 집이 반려 가구랍니다. 우리 아파트를 보면 통계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엘리베이터에 개를 안고 오르는 사람이 전체의 반도 넘는 것 같습니다. 월평균 양육비는 병원비를 포함해 약 15만 원이 든다고 합니다. 반려 산업도 호황입니다. 점점 세를 늘려갑니다. 반려동물 학교나 병원, 장례업에는 물론 산책 대행 전문 업체가 성업 중입니다. 전용 공간을 둔 커피전문점이나 식당도 늘고 있습니다.
나는 종종 아파트 단지 내를 비롯하여 공원을 거닐 때면 유모차를 슬며시 보는 일이 있습니다. 어느새 아이를 태운 유모차보다 개를 태운 유모차를 더 많이 보게 됩니다. 유모차의 용도가 바뀌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강아지용으로 더 많이 팔렸답니다. 꼬리를 흔드는 반려동물이 유모차의 주인이 된 셈입니다.
반려견을 비롯한 반려동물은 늘어나는데 아이의 출산은 점점 줄어듭니다. 인구의 증가를 염려하던 70·80년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의 구호가 무색해졌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가 없어진다. 두 명만이라도 낳아보자. 나라가 모든 책임을 진다’는 대대적인 캠페인이라도 벌여야겠습니다.
이민청이 생겼습니다. 부족한 인구를 늘리기 위해 부족한 인력을 위해 하는 일입니다. 백의민족이라고 자부하던 시대는 어느덧 지났습니다. 국민의 구성으로 보면 이제는 다민족 국가라는 말이 어울립니다. 저출산은 사회적으로 많은 것들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유치원과 산부인과 병의원, 결혼식장이 사라진 자리에 반려동물 학교, 요양병원, 장례식장이 들어선다고 합니다. 지하철이 임산부석이 텅 비어있습니다. 유모차가 ‘견모차’로 바뀌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입니다. 가장이 개보다 서열에서 밀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개를 키우지 않는 나로서는 농담이겠지 하면서도 씁쓸한 기분이 듭니다. 어찌 됐든 인간이 개만도 못한 대접을 받는 사회는 되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