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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

329. 모과를 바라보는 눈 20231227

by 지금은

‘까치밥도 아니면서 끈질기기는 쇠심줄만큼 질기기라도 한 거야’

요즘 어른에게 안부 인사라도 하는 양 자주 눈길을 보내는 곳이 있습니다. 집 밖 화단입니다. 화단에는 키 작은 사철나무와 회양목이 푸른 마음으로 겨울을 견디고 있습니다. 그 중간에 돋보이는 모과나무 한 그루가 이 층 건물을 가까이 한 채 하늘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옆의 감나무는 기운을 잃었습니다. 추위에 떨고 있는 듯 몸이 검게 변했습니다. 모과나무와 견주어보면 다 같이 앙상한 가지를 가지고 있지만 더 힘이 없어 보입니다. 겨우내 간직하고 있을 것만 같던 까치밥이 보이지 않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반쯤 남아 햇살에 몸을 녹이던 모습이 사라졌습니다. 밤새 안녕이라고 하더니만 저녁노을 속에서도 자리를 지켰는데 아침에는 흔적이 사라졌습니다. 까치의 소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어제 보이던 한 마리의 까마귀, 그도 아니면 오목눈이, 범인이 없다면 반달이라고 해야겠습니다. 밤늦게까지도 창밖으로 보이던 모습이 의심스럽습니다. 배를 불리기 위해 삼켜버렸는지 모릅니다.

오늘 아침에도 밖에 나가자 의식적으로 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아홉 개의 모과가 불규칙적으로 가지에 매달려 있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한 개도 아니고 그 많은 열매가 가지를 붙들고 있습니다. 까치밥이 되겠다고 서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제 분수를 알아야지. 아무나 까치밥이 되나.’

아무리 잡숴보라고 애원을 해도 사람이 아니니 까치가 다가서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느새 눈을 네 차례나 맞았습니다. 영하 15도의 모진 추위도 겪었습니다. 체감온도 운운하며 외출을 삼가는 사람들과 달리 모과나무는 모과를 매단 채 꿋꿋하게 서있습니다. 벽의 보호를 받기는 해도 모진 바람도 맞았습니다. 주위의 다른 모과나무들은 열매를 떨어뜨린 지 이미 오래입니다. 바닥에 떨어진 열매들은 어느새 고향을 찾았고 모습을 보이는 것들은 거무스름한 색을 띤 채 삭아지고 있습니다.

고개를 반짝 들고 열매를 살핍니다. 샛노랗던 빛깔이 짙어졌습니다. 밝은 노랑이 아니라 다소 칙칙해 보입니다. 나무 밑으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무가 얼면 겉모습이 변하듯 모과도 추위에 얼었을까요. 내 눈에는 동상을 입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하지만 하나같이 아직은 견딜 만하다는 듯 햇살에 알몸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직도 가지에 매달린 산수유는 붉음을 유지하고 있지만 거죽은 노인의 피부처럼 주글주글합니다. 그동안 가뭄은 없었는데 추위에 견디기가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이들도 나무에 따라 상태는 제각각입니다. 빨간 열매를 나무 가득 간직하고 있는 게 있는가 하면 다 떨어뜨리고 몇 개만 품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매달려 있는 것도 힘들어 보입니다. 바람이나 손이라도 닿으면 곧 떨어질 것만 같은 자태입니다.

저 모과들, 평소 마음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저 것들이 추위에, 이 바람에도 견디고 있으니 다른 모과에 비해 약효가 뛰어날 거야 하는 추측입니다.

‘차로 끓여 먹으면 좋겠지, 특히 감기에 좋다고 했는데.’

나무 밑을 살핍니다. 떨어진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고개를 꼿꼿이 들었습니다. 하나둘……. 모두 아홉 개입니다. 어제와 같이 개수의 변화가 없습니다. 조금 전과 같습니다.

내가 모과를 좋아한다는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아들의 친구가 지난해에 모과를 한 자루나 주었습니다. 늘어놓고 보니 집안에 모과 천지입니다. 며칠 지나자, 색이 변합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검게 변해 모두 버려야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리기로 했습니다. 튼실해 보이는 것만 골라 썰어 널었지만 거실 가득합니다. 향이 거실과 주방을 물들입니다. 잘 말랐다 싶어 양파망에 넣어 벽에 걸었습니다. 은은한 모과 향이 거실에 감돌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일부는 병에 넣었습니다. 차를 끓여 마시기로 했습니다. 얼마 후의 일입니다.

‘이를 어쩌지요.’

병에 습기가 찼습니다. 덜 말랐나 봅니다. 식탁에 놓아두었는데 어느새 곰팡이가 보입니다. 아까운 것을 버리게 된다니, 시큼 떨떠름한 맛을 좋아하는 나의 입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봅니다.

모과가 감기에 좋다는 말은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민간요법 중의 하나입니다. 어느새 나무둥치에 봄이 오는 듯 보입니다. 얼룩진 껍질을 손으로 어루만집니다. 차가움이 묻어나옵니다. ‘까치밥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면 나에게 선물하면 아니 되겠니?’

봄이 어서 오기를 바라며 따스한 온기를 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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