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기억 20220102
삼계탕을 먹으러 갈까 했는데 그만두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식구들이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식구래야 모두 세 명이니 단출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누구라고는 말할 수 밝힐 수는 없지만 한 사람이 예방접종을 미루다가 며칠 전에 접종했습니다. 이차 접종한 사람만 식당을 출입할 수 있답니다. 마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규정이 적용되는 것은 내일부터라는데 말들이 분분하다 보니 시기를 놓쳐버렸습니다. 시간이 너무 늦었습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접종 후 14일 경과부터라니 때를 조금 미루는 것뿐입니다.
사위가 처가에 오면 씨암탉을 잡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금이야 잊히는 말이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자주 듣던 말입니다. 그때만 해도 닭이 그리 흔하지 않던 시절입니다. 시골에서는 집집이 몇 마리씩 키웠습니다. 먹을거리가 귀하던 시절이니 원기보충을 위해 키우던 닭들을 잡아먹었습니다. 오죽하면 약병아리라는 말이 있을까요. 식구 중에 몸이 허약해졌을 경우나 병의 회복을 위해 몸보신용으로 어미 닭에 이르기 전의 중병아리를 잡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병아리가 약 성분으로 가장 좋은가 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 부부는 가끔 삼계탕집을 찾습니다. 몸이 허한 것 같으니, 단백질을 보충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닭고기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가성비로 따지면 이만한 것도 없는 듯싶습니다.
참 좋은 세상입니다. 요즘은 돈만 있으면 웬만한 것은 곧 해결됩니다. 구태여 찾아가지 않아도 됩니다. 배달 문화가 발달하다 보니 집에서 전화 한 통이면 잠시 후 문 앞에 대령입니다. 그렇다고 나는 음식을 배달시키는 일이 아직 없습니다. 특별히 하는 일이 없으니 배달이 필요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음식을 먹고 싶다면 음식점을 직접 찾아갑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치울 필요가 없습니다. 요리한 즉시 먹으니, 맛이 날아갈 리도 없습니다.
‘배달료 무료.’
얼마 전부터 휴대전화에 종종 문자가 뜹니다. 하지만 공짜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집에서 남의 눈치 보지 않아 좋기는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는 재미도 있지 않습니까.
‘닭 한 마리’
잔치 못지않은 날입니다. 늘 푸성귀를 먹고 지내던 어린 시절 닭 한 마리로 인해 집안의 분위기가 밝아집니다. 닭고기 한두 점, 국물 한 그릇. 입술이 오랫동안 부드럽습니다.
“내가 닭을 잡아도 될까.”
어른들이 닭의 숨통을 끊는 것을 눈여겨보던 어느 날이 눈에 선합니다. 왜 그렇게 해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수탉의 날개를 움켜쥐고 죽지 밑을 있는 힘껏 눌렀습니다. 작은 손이 닭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공중에서 땅바닥을 향했습니다. 오랜 시간 날갯죽지 아래를 눌렀습니다. 손의 힘이 점차 빠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닭도 함께 힘을 잃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고개를 떨어뜨렸습니다.
닭다리, 날개, 발, 목, 가슴살, 똥집, 위……. 식구들의 숫자대로 나뉘었습니다. 닭다리와 닭똥집은 어른들의 몫입니다. 날개도 마찬가지입니다. 날개를 먹으면 바람이 난다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몫은 솥 안의 적은 국물뿐입니다. 식구들에게 나눠주다 보면 정작 자신의 몫은 남기지 못했습니다. 요즈음이라면 그렇지 않겠지만 그 시절은 그랬습니다.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닭뿐이겠습니까. 식량이 모자라던 시절이니 일상의 식생활이 그러했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하면 효도해야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입니다. 나를 먼저 생각하는 사이에 어머니는 하느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독립을 한 후 어머니께 삼계탕이나 닭곰탕 한 그릇 대접한 기억이 없습니다. 이런 겨울철 날씨에는 어머니께 따끈한 닭곰탕 한 그릇 배달시키고 싶습니다. 그저 마음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