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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어느 날

3. 그림책 20220102

by 지금은

한 달 동안 그림책에 미쳤습니다. 정말 미친 것 같습니다. 틈만 나면 그림책 구상에 몰두했습니다. 내가 처음 그림책을 만든 것은 우연입니다. 평소에 책을 발간하고 싶은 생각은 있었지만, 그림책은 의외입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나는 가끔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도서관의 동정을 살피곤 합니다.


어느 날 시니어를 대상으로 그림책 자서전을 만드는 강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림책의 세계가 궁금했습니다. 곧 수강 신청을 했습니다. 처음이고 보니 나는 시행착오를 많이 거쳤지만, 지도하는 사람도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담당자도 서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실수를 거듭하는 가운데 일정보다 늦게 책이 발간되었습니다. 나는 아마추어입니다.. 그림은 초등학생 수준입니다. 내용도 그러했습니다. 방향 설정이 제대로 잡히지 않다 보니 뒤죽박죽입니다. 줄거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수정을 거듭했습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있는 모양입니다. 책을 마주하고 보니 아이들에게 괜찮은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그림책보다는 수필집이나 동화, 아니면 동시집, 동화책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글을 꾸준히 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몇 차례 작품을 이곳저곳에 응모했는데 동화, 수필, 시가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평생학습관에서 함께 글쓰기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내가 글을 잘 쓰는 줄 압니다. 내가 응모한 대회에 참가한 사람이 발표를 확인하고 당선 소식을 알렸기 때문입니다. 자랑을 늘어놓으려는 것은 아닙니다. 강의 시간에 각자 써온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알아가고 실력을 가늠해 보기도 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다른 분야의 책을 발간하지 못했지만 내 이름의 그림책은 세 권이나 됩니다. 비록 남에게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나중을 생각해서 몇 권 안 되는 책을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때가 되면 세상에 펼쳐놓을 생각입니다.


두 번째 역시 도서관의 그림책 만들기 수강과정에서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같은 도서관은 아니라 내가 사는 곳과 가까운 도서관입니다. 이번에는 수월했습니다. 지도를 해주는 분은 나이가 어리기는 하지만 경험이 많았습니다. 나도 한 번 시행착오를 겪고 보니 흐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그림이 아닌 사진 편집을 무기로 도전했습니다. 사진을 전문적으로 생각해 본 일은 없지만 휴대전화를 활용했습니다. 기회가 좋았습니다. 운 좋게도 복지관에서 사진을 편집할 수 있는 간단한 지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기 위해 수없이 같은 배경을 찍고 장소를 수시로 옮겼지만 힘든 줄 몰랐습니다. 결과는 만족입니다. 보는 사람들마다 좋다고 합니다.


세 번째는 복지관에서 그림책 만들기에 도전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수강 신청 날짜를 이틀이나 넘겨버린 상태였습니다. 알림판을 소홀히 본 때문입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전화를 했습니다.


“그림책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데 지금이라도 할 수 있을까요.”


물어보기를 잘했습니다. 마침 한 자리가 비었답니다. 신청했던 사람이 과정을 확인하고 자신이 없다며 포기를 했다고 합니다. 막상 신청을 하고 나니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자신 있다는 뜻을 내비쳤는데 남들에게 뒤처지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미리 구상을 해야겠다는 마음에 생각에 몰두했지만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수강 첫날입니다. 수강생들을 보니 아는 사람도 있습니다. 글쓰기 반에서 함께 활동하는 분입니다. 강사의 수업 계획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만들어 준 틀을 알려주었습니다. 시간이 촉박하니 숙제는 아니지만 미리미리 구상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내 생각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들은 집에 있는 사진을 활용하여 자서전을 만들 생각입니다. 다음 시간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강의실에 갔기에 슬그머니 운을 띄워보았습니다.


“전에 만든 다른 사람의 자서전 그림책을 볼 수 있을까요?”


강사가 앨범 속의 사진을 왜 가져오라고 했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열 장 정도의 사진과 수업증 활동 모습을 담겨있는 책입니다.


나는 색다른 그림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열심히 구상을 했습니다. 직접 연필로 도화지에 마음속의 그림을 담았습니다. 간단한 말도 곁들였습니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떠오르지 않던 생각들이 줄을 이어졌습니다. 다음 시간에 내가 만든 것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칭찬이 이어지자 주위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림에 솜씨가 있으시군요.”


처음 듣는 말입니다. 수강생들은 그림을 접해 본 일이 많지 않기에 신기하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화가를 해도 되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또 다른 소재의 내용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진보다 손 그림으로 그림책의 내용을 메우는 것이 좋겠군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내 모습을 찍기를 싫어하는 나 자신에 관한 사진이 별로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마지막 수업 날 그림책을 받았습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다’는 말이 맞습니다. 받아 드는 순간 실망이 컸습니다. 그렇다고 내색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우미는 대학생입니다.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르바이트로 참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책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오자와 탈자가 몇 군데 있습니다. 내 경력에도 오타가 있습니다. 그림이 너무 작아 조잡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짝이 말했습니다. 자신의 책자를 보여주며 오자와 탈자를 말했습니다.


“빨리 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어요.”


“옆 사람 것도 틀린 것이 있더구먼.”


도우미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버렸습니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순간 기분이 상했습니다.


‘나를 무식한 늙은이로 본 거야?’


엎지른 물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얼굴을 붉힐 수 없는 노릇입니다. 수고했다는 말로 지나쳐버렸습니다.


그림책 자서전을 기획한 사람, 진행하는 사람들 모두가 마음이 성급했습니다. 시간의 여유를 두고 수강생과의 의사 교환을 통해 교정의 기회를 마련했더라면 실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끝나는 날까지 분위기는 좋았지만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위안이 된 것이 있다면 이 기간에 그림책에 대한 소재를 찾아 많은 구상을 해놓은 것입니다. 두드리면 열린다는 격언이 떠오릅니다. 관심은 좋은 재산이 된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한순간입니다. 언젠가는 내 초고들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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