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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어느 날

4. 새해의 첫 수영 20220103

by 지금은

4. 새해의 첫 수영 20220103


잠을 설쳤습니다. 눈을 떠보니 3시 반입니다.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어쩌지, 잠이 쉽게 들지 않을 태세입니다. 이럴 때는 무조건 일어나는 것이 상책입니다. 거실을 왔다 갔다 하다가 주방의 식탁에 앉았습니다.


첫 소풍이라도 되는 거야, 아니면 첫 운동회라도 되는 거야. 초등학교 때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들뜬 마음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깨어난 것은 분명합니다.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보았습니다. 온통 먹구름입니다. 비라도 오면 어쩌지.


오늘은 새해 들어 처음으로 수영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작년에 수영했고 재작년에도 수영했을 터인데 뭐 그리 야단법석을 떠느냐고, 아닙니다. 수영하지 못한 지 두 해가 되었습니다. 내 잘못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잘못도 아닙니다. 오로지 코로나 전염병 때문입니다. 전염병 확산으로 수영장 문이 닫히자, 궁금증에 서너 차례 전화했습니다. 노인회관의 안내자는 정부의 시지가 있을 때까지 무기한 연기랍니다. 그 후로는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다른 수영장은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노인회관의 수영장을 선호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노인입니다. 연배가 비슷하니 서로 어울리기가 수월합니다. 그동안 회관에서 이것저것 배우니 안면 있는 사람도 만납니다. 수영하기도 좋습니다. 수영의 속도가 서로 비슷해 힘에 부치지 않습니다.


수영이 익숙해졌을 무렵 몇 차례 일반 수영장을 간 일이 있습니다. 젊은이들 사이에 섞이다 보니 그들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수시로 길을 비켜주었습니다. 그들에게 불편을 준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수영은 자전거나 스케이트와 같은 거야.”


언젠가 문학 강의를 함께 듣던 동료가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한 번 배워두면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나는 자전거와 스케이트를 탈 수 있습니다. 자전거는 자주 타니 별 무리가 없지만 스케이트는 일 년에 몇 번, 아니 몇 년에 몇 번 탈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좀 익숙하지 않지만, 대여섯 바퀴 돌고 나면 무리 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수영이라고 별다른 것이 있겠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 년이나 쉬었으니 은연중에 제대로 될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가방을 둘러멨습니다. 낯설고 먼 길을 떠나는 양 아내가 배웅하기를 기다립니다. 현관 문소리가 나지 않자, 아내가 다가왔습니다.


“뭐 해요, 늦지 않았남.”


“물에 빠져 죽지는 않을지 모르겠네.”


“별소리를, 걱정하지 말아요.


“별소리를 들으려면 밤이 되어야 돌아올 것 같군.”


회관 수영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습니다. 개장 시간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줄을 서서 회원증을 내밀었습니다.


“3차 접종증명서를 보여주셔야 하는데요.”


“지난주에 수영 비를 낼 때 함께 접수했습니다.”


창구직원은 인적 사항을 확인하더니 회원증에 접종 확인 스티커를 붙여주었습니다.


수영장에 들어온 것이 얼마 만이냐. 준비운동을 하고 수영장 레인을 따라 한 바퀴 돌았습니다. 다음 자유형으로 물살을 갈랐습니다. 팔과 다리의 동작이 좀 어설프다는 느낌이 듭니다. 천천히 한 바퀴 돌았습니다. 호흡도 괜찮습니다. 함께 수영하는 사람이 나에게 앞서가기를 권합니다. 그는 전부터 내가 자신보다 빠르다는 것을 압니다. 그 사람을 뒤로하고 천천히 물살을 가릅니다.


지금은 웃으며 지내지만, 그와 나는 한동안 어색했습니다. 내가 수영강습을 받고 사람들 틈에 끼자, 그는 나를 업신여기고 불편한 말을 했습니다.


“거치적거리지 말고 비켜요.”


한 달이 지났을 때는 무리 없이 그들 틈에 낄 수 있었습니다. 내 체력이 좋았기 때문일까. 서서히 무리를 추월하게 되었습니다. 욕심을 부렸나 봅니다. 그 후 병이 나서 한동안 고생을 했습니다. 동네의 이웃과 함께 부부 동반 외국 여행을 가기로 날짜를 정했는데 함께 가지 못하고 연기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내가 앞서자, 그가 따라왔습니다. 골인 지점에 다다랐을 때도 그만큼의 거리가 유지되었습니다. 내 체력이 어느새 약해진 걸까. 아니면 그가 꾸준히 수영한 덕택인가 모르겠습니다. 수영이 줄지 않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는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 지난해 12월에도 수영했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차 한잔해야지요.”


“다음에요.”


회관의 커피숍이 닫힌 지 오래되었다 합니다. 코로나가 사람의 접근을 막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공포가 무섭습니다. ‘지구를 떠나거라.’ 하고 마음속으로 외쳐봅니다.


같은 취미나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은 즐겁습니다. 이야깃거리가 있습니다. 익힌 것도 그동안 잊지 않았습니다. 잘하는 것은 좋지만 건강에 만족해야겠습니다. 오늘의 수영은 스스로 이십여 분 일찍 끝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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